위기의 한국경제, 장기적 구조 개혁과 제도혁신으로 돌파구 찾아야
위기의 한국경제, 장기적 구조 개혁과 제도혁신으로 돌파구 찾아야
  • 이승엽 기자
  • 승인 2015.03.08 0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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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2015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2015년 한국경제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암울하기만 하다. 갈수록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위축되는 소비와 투자, 불어나는 가계부채, 디플레이션 우려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어떤 경제학자는 현재 한국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초기 상황과 흡사하다며 이 위기를 타파하지 못할 경우 장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 사진: 장은비 기자 jeb1111@snu.kr

이에 한국경제학회는 ‘한국경제 어떻게 해야 되살릴 수 있는가?’를 주제로 지난달 24, 25일 이틀간 연세대학교에서 ‘2015 경제학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경제학회의 정기총회를 겸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총 59개 경제 관련 학회가 참가하고 대한민국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모두 모여 2015년 한국 경제 전망과 함께 다양한 경제학 관련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또한 둘째 날 전체회의에서는 ‘미국 금리인상과 한국의 정책 대응’을 주제로 대외적 위험요인으로 금융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전체회의에서 발제를 맡은 한국경제학회 회장 김정식 교수(연세대 경제학과)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는 제도경제학의 입장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제도경제학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을 진단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논의의 중심으로 선택된 이론인 제도경제학은 저성장의 정체를 분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이론으로, 인간이 만든 제도가 경제성장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학 조류다. 기존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제도나 법을 외생적 요인으로 판단하여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데 반해 제도경제학은 여건의 변화에 따라 적합한 제도 혹은 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경제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신제도학파 경제학은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여러 제도가 이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제도경제학은 시장을 합리적이고 완벽하다고 여기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시장의 위기를 설명함으로써 주류경제학의 하나로 주목받게 됐다.


제도 변화의 실패,
한국경제 저성장과 양극화의 악순환의 고리에 빠뜨려

학술대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김 교수의 발제에 따라 경제상황 변화와 그에 따른 제도 선택을 중심으로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을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부터 저성장국면으로 들어간 한국경제가 고성장 시기에 미리 복지·연금제도를 완비하지 못해 양극화가 저성장을 촉진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김 교수의 발제에 동의했다. 김 교수는 폴 로머 교수(뉴욕대 경제학과)의 추격경제학을 바탕으로 한국의 저성장을 풀이했다. 추격경제학이란 기술선도국을 추격하는 기업이나 국가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으나 추격을 마치고 추격을 받는 기업이나 국가로 변하게 되면 그 상황에 적합한 제도를 구축하지 못해 성장이 정체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김 교수는 제도변화 실패에 따른 양극화가 저성장을 촉진하는 현 상황을 분석했다. 그는 “추격 받는 국가로 변화하는 기간에 복지와 연금제도를 완전히 마련하지 못한 한국은 노동자가 퇴직 후 자금 마련을 미리 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며 “이에 따라 인건비가 상승해 노동생산성이 하락하고 노사분규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런 낮은 생산성과 잦은 노사분규는 기업의 투자와 정규직 신규고용을 막는 경제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및 대우 격차는 제도 보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근로의욕을 낮추고 사회분열을 유발해 생산성을 크게 낮출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학술대회 특별강연을 맡은 정운찬 전(前) 국무총리는 김 교수와는 다른 관점에서 저성장이 반복돼 양극화가 심화되는 경제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60년대 이래 선성장 후분배에 입각해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성장주도식 경제정책에 의존해왔다”며 “90년대 이후 성장률이 감소하고 낙수효과가 미미해지면서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은 중소기업의 육성과 기술 혁신을 막고 불공정 거래를 유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가속화한다”고 지적했다. 성장 정책의 변화 실패가 저성장과 양극화를 유발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단기적 경제문제 해결 통해
경기 악순환의 촉매제 제거해야



이렇게 위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단기적 문제로 떠오른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 악순환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위기를 막고,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제로에 가까운 저금리 정책을 실시해왔다. 이를 통해 미국정부가 시장에 자금을 풀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한 결과 미국경제는 2014년 3분기부터 다른 선진국이 아직도 주춤하고 있는 사이 나홀로 경기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0월에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금년 하반기 금리를 인상해 금리 정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기준금리가 정상화될 경우 금리가 낮은 한국시장에서 금리가 높은 미국시장으로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일형 원장은 “금리인상의 시기와 정도에 따라 국내 외국 자본이 유출될 위험이 있으며 가계부채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자본이 유출될 경우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저성장 구도가 지속되고 가계부채 부담 증가는 양극화를 심화시켜 악순환의 고리가 깊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제도적 처방으로 전문가들은 금리정책과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책을 제시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실장은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와 속도에 따라 한국은행의 시기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통화정책을 강조했으며, 이일형 원장은 “저소득층에 가계대출 부담 지원을 통해 충격부담을 금융권에서 안아야 피해를 상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뿐 아니라 복지수요 증가에 따른 정부의 재정 적자도 눈앞에 직면한 큰 문제다. 정부부채 증가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복지정책을 막아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며 경제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다. 이에 대해 이제민 교수(연세대 경제학과)는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위협, 복지제도 자금 확충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이 공공요금을 인상할 적기이며 제도 변화를 통해 세수를 확충하고 디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단기적 제도 처방만으로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반드시 장기적 구조 개혁과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전문가 집단은 경제상황 변화에 적합한 장기적 경제구조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구조적 위기는 산발적으로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제구조 개혁과 혁신만이
경제의 장기적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해결책


학술대회 후반부에서 경제 전문가들은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의 고리를 다시 잇기 위해 장기적 구조 개혁과 제도 혁신을 강조했다. 저성장을 해결하기 위한 중소기업 육성과 신성장동력을 찾는 제도의 혁신이 제시됐고, 양극화 차원에서는 고용 및 임금구조 개혁이 대안으로 나왔다. 정운찬 전 총리는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와 교육제도 개선을 제시하며 “지금까지 한국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은 인적 자원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교육열이었다”면서 “해외로의 인적 자원 유출을 막고 교육제도 개선을 통해 사회적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는 저성장국면을 벗어나는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그는 또한 초과이익공유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대기업은 돈이 많은데 투자할 곳이 없고, 중소기업은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이 없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이익을 나눠 다양한 산업에 투자를 유도해 경제의 동반성장을 유도할 것을 촉구했다. 초과이익의 재분배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확대를 저지하면서 다양한 산업 분야에 투자를 늘려 성장 속도를 촉진할 수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성장과 재분배를 연결하는 경제 선순환의 핵심 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 이인재 원장은 양극화에 주목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고용구조의 혁신을 촉구했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근로기준, 임금, 사회보험에서 현격한 차이가 발생해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 줄어드는 단층적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며 “혁신적인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제도를 개선할 경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이중고용구조의 해소는 미래의 복지수요를 감소시켜 정부 재정지출을 축소를 유발하고 이에 따라 증세 없이도 복지제도 개선이 가능해 양극화 해소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구조 개혁은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소통이 전제,
정부의 실천적 노력이 필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장기적 경제구조 개혁은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까지 포괄한다. 정책 설계와 실행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 구조 개혁은 실행과정에서 이익집단의 반발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의 공공선택이론에서는 소수로 구성된 결속력이 강한 이익집단은 로비로 제도 변경을 저지한다. 이로 인해 제도나 법의 변경이 어려워져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된다. 초과이익공유제의 경우 대기업들의 반대와 좌파적 제도라는 비난으로 변화의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며 정규직ㆍ비정규직 이중고용제도의 경우 제도 개혁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대두됨에도 노사의 첨예한 갈등으로 변화에 어려움이 크다.

이제민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제도 변화는 결국 정치 문제이고 사회적 강자와의 싸움”이라며 “이익집단의 반발로 제도의 개선이 어려운 경우는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반발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국민적 합의를 유도해서 제도를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회복은 전 국가적인 문제로서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 이해관계 조정에 힘쓸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대표적 제도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또한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경제제도 변화는 학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의 범위에서 풀어야 할 난제이다. 정부는 경제이슈에 대한 단기적 처방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학계 및 국민과의 꾸준한 논의를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로써 제도 혁신과 장기적 경제구조 개혁을 이끌어내 한국경제 선순환 고리 만들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날 정부관료 대표로 참가한 기획재정부 주영환 제1차관은 “건전한 토론이 세계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며 학계의 조언을 구하고 “정부는 강도 높은 정책을 통해 경제구조의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그저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결과로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연방준비제도: 국가의 통화금융정책을 수행하는 미국의 중앙은행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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