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농성

▲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가로 5m, 세로 1m. 고공농성 중인 두 비정규직 인터넷·IPTV 설치·수리기사가 32일째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난달 6일 LG유플러스 전남 서광주 고객센터 소속 강세웅 씨와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인천계양행복센터 소속 장연의 씨는 서울 중구 중앙우체국 옆 20여미터 높이의 광고전광판 위로 올라갔다. 원청인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에 비정규직 장기파업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광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LG, SK 통신 비정규직 장기 파업 해결하라’ ‘진짜 사장 LG, SK가 통신 비정규직 책임져라’ 등 농성자들의 절규를 대변한 플래카드 네 장이 부대끼고 있었다. 전광판 아래에선 강세웅 씨와 장연의 씨가 속한 희망연대노동조합(희망연대) 소속 노숙농성자들 20여명이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제는 홀로 남은 단식농성자도 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희망연대는 소속 기업과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으로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돼있다.

강세웅 씨와 장연의 씨는 궂은 날씨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꽃샘추위에 바람이 거셌던 지난 4일(수) 오전 장연의 씨는 『대학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 오늘따라 전광판이 많이 흔들린다”고 현기증을 호소하면서도 “이렇게 올라와야 세상은 눈길을 준다”며 농성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다. 온종일 비가 내렸던 전날엔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강세웅 씨는 “춥다고 비 온다고 농성을 안 하겠어요?”라며 “우리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전달되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보고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주 서 있으려 한다”고 전했다.

‘희망연대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지난해 11월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사측과의 교섭에 진전이 없자 강세웅 씨와 장연의 씨는 고공농성을 결단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임금이 아예 나오지 않아 조합원들의 생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강세웅 씨는 “점심값은 고사하고 농성장에 나올 교통비가 없어서 못 나오는 조합원들도 많다”며 “사태를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높고 위험한 곳에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기사들이 장기 파업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혹독한 근로조건이 있었다. 장연의 씨는 “일주일에 70시간 정도 일한다. 점심시간도 없이 밤 11시까지 일할 때도 있다”며 일상화된 장시간 노동 실태를 비판했다. 이렇게 일하더라도 그들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기대할 수 없다.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정산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업무에 필수적인 자재비까지 기사들이 부담하는 것이 관행인 탓이다. 이에 반발하면 일감이 주어지지 않는다. 강세웅 씨는 “기사들에게 꼭 필요한 차를 유지하는 비용과 고객들께 전화하는 데 드는 통신비를 급여에서 제하면 실질적으로 남는 게 없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짚었다. 중간의 하청업체가 많아질수록 현장에서 일하는 기사들의 몫은 줄어들고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서로 회피하게 된다. 이에 비정규직 기사들은 △다단계 하도급 금지 △고용안정 △근로기준법 준수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며 노조와의 교섭에 원청이 직접 나서기를 주장하고 있다. 장연의 씨는 “재하도급업체인 각 지역의 센터들은 교섭 권한과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며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의 사용 권한이 있는 SK가 나와서 교섭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원청이 기사들을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어서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현행법상 원청은 교섭 책임이 없다. 그러나 하청업체들 역시 원청의 눈치를 보면서 교섭과 노동환경 개선에 소극적인 실정이다. 이에 국회에서도 법 개정을 통해 원청이든 하청업체든 사용자 대표와 노조 간 안정된 교섭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원청이 직접 나서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강세웅 씨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살기란 너무 힘든 일”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서글픔을 대변했다. 전광판 위를 바라보며 고공농성자들의 건강을 우려하던 정종문 연대팀장은 “노사가 차츰차츰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이날 오후 현장을 지나던 시민 김충현 씨는 “저 곳에서 농성하시는 분들이 우리들의 인터넷을 설치해주시던 분들이 아니냐”며 응원의 눈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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