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중국 충칭의 경제적 성장

▲ 충칭의 최대 중심가인 지에팡베이(解放碑)의 화려한 야경과 강 건너 우측 불이 꺼진 개발지구의 풍경이 대비된다.

사진: 최정윤 전임기자 bearly12@snu.kr

요즘 '핫'한 그곳

충칭에서 한국인을 보긴 쉽지 않았다. 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관광지도 적고 자연환경이 유독 뛰어난 것도 아니며 날씨는 햇빛을 잘 보지 못할 정도로 흐린 날이 대부분이라 여행객들에겐 ‘딱히 볼 것 없는 곳’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현지 고등학생들은 “한국인을 처음 본다”며 무척 신기해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한국인에게 충칭은 꽤 친숙한 도시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자취가 여전히 남아있고,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에도 등장하며 『삼국지』속 유비가 창엽했던 촉(蜀)나라의 배경이 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한국과 충칭의 경제적 관계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대규모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올해부터 연간 30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공장의 착공에 들어가며, 포스코는 충칭강철그룹과 투자 협약을 맺어 제철소를 세우려고 계획 중이다. 한국타이어 또한 첫 내륙 거점으로 충칭을 선택했으며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이다. 최근에는 CGV, 불고기 브라더스 등 영화, 외식 업체들도 충칭으로 향하고 있다.

베이징, 상해 등 연안 도시만큼 화려하게 발달하진 않았지만 충칭에선 성장 중인 도시만이 가지는 생경한 풍경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중심가 어디를 가든 대형 크레인과 건설 중인 빌딩을 볼 수 있었고, 기차역은 상점가가 아닌 공사장 한복판에 있었다. 곳곳에 헐릴 예정인 오래된 아파트들이 고층빌딩과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충칭을 가로지르는 장강 주변은 아직 인공적인 손길이 미치지 않은 듯 정비가 덜 되어 있었고, 어두운 밤이 되어서도 빌딩의 불이 켜지지 않는 곳이 있어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야경도 듬성듬성 보일 따름이었다. 계속해서 불이 꺼지지 않는 크레인들만이 몇 년후 충칭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정부가 선택한 그곳, 충칭

왜 기업들은 충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충칭이 중국 서부 시장을 대표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충칭은 최근 몇 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타격을 받았던 동부 연해 지역에 비해 충칭의 GDP 증가율은 중국 평균 증가율을 넘어섰고 2009년 GDP증가율은 서부지역 1위였다. 대우인터내셔널 충칭지점의 나정수 주재원은 “이전 대우 지사가 주로 상해, 북경, 청도, 대련 등 연안지역에 있어 내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충칭지사가 설립되었다”며 “충칭은 중국정부에서 지정한 신 경제특구인 만큼 새로운 개발의 중심도시로 향후 발전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고 말했다.

충칭의 성장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홍규 교수(동서대 국제학부)는 “충칭의 성장은 균형을 강조하는 중앙정부 정책과 수로, 육로 운송수단을 갖춘 지역적 우위, 그리고 중국경제의 발전단계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해왔다. 사회주의적 정책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함에 따라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지역 간 불균형 또한 못지 않게 심각해졌고 중국정부는 더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동부 연안 지역은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수출제조업을 동력으로 삼았지만 충칭시는 기존의 중국 대도시들의 성장 모델과는 다른 노선을 택했다.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 발달된 중국 자체의 기술로 생산된 부품 등을 국내서 충당하고 있으며, 생산한 제품도 주변 내륙 시장을 목표로 공급하고 있다. 이로써 충칭과 인접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또한 충칭은 장강과 자링강이 합류하고 산이 이를 둘러싼 지역이기에 수로 교통의 요새이며 동부 지역에 비해 유럽과의 운송 거리가 가까워 철도로 물류 이동이 가능하다.

'충칭 모델'은 과거의 사건일 뿐인가

2007년 보시라이 전 충칭 당서기가 집권한 시기에 ‘충칭 모델’이라 불리우는 신조어가 생겨남에 따라 ‘충칭 모델’은 그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보시라이 숙청 사건 이후로는 ‘충칭 모델’이라는 단어가 그를 연상시킨다며 오늘날까지 금기시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에 ‘충칭 모델’은 신뢰를 잃었다는 여론이 일었으며 ‘혁명가요 부르기’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적 특성만이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충칭 모델’의 핵심은 보시라이의 영향력 이전에 후진타오 시기의 ‘조화로운 사회’라는 정책 기조를 충칭에서 먼저 실험했다는 데 있으며 이는 현재 시진핑 정부에서 이어받아 확장, 구체화하고 있는 중이다. 즉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요소를 보다 조화롭게 하여 시장 경제와 국유 기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2014년 중국 정부는 충칭시가 가장 먼저 실시했던 도농통합 정책을 타지역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충칭 인근 농민들도 도시 호구를 가질 수 있게 도농 호구를 통합함에 따라 도시에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던 농민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었다. 이 정책 안에는 토지지표거래제도 포함되어 있는데 농민공이 도시로 넘어온 후 남은 농촌 토지의 용도를 변경할 수 있도록 충칭농촌토지거래소를 설립했다. 이는 주변 토지 뿐만 아니라 전국의 토지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였다.

비록 보시라이가 내세운 ‘충칭 모델’은 과거의 것이 되었지만 충칭을 비롯한 서부지역을 개발하려는 중국 중앙정부의 보다 큰 밑그림과 투자는 여전히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량장신구(兩江新區)’라는 내륙 최초의 신구를 지정해 법인세 우대를 연장하는 등의 혜택을 마련, 기업 유치에 힘쓰고 있다. 항일전쟁시기 국민당이 거점으로 삼은 시기부터 전통적으로 중공업이 발달한 것에 더해 특히 IT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정영록 교수(국제대학원)는 “충칭 지역의 값싼 인건비, 땅값 등 요소비용의 이점,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합해져 오늘날과 같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젠 두 개의 축을 바라보아야 할 때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충칭 장베이 공항의 자그마한 국제선 항공에서였다. 여느 도시와 달리 여행객만큼이나 많은 수의 사람이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출 중인 도시 중 하나인 충칭의 특징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충칭을 비롯해 시안, 쓰촨은 더 이상 진시황의 병마용과 매운 요리만으로 기억되진 않을 것이다. 중국 서부지역의 대표 도시인 이들은 세계의 ‘공장’이 아닌 세계의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칭은 수출가공기지는 아니지만 중국 내륙 시장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그 뒤에는 계속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경로를 찾으려는 중국 정부의 고민이 녹아있다.

2013년 충칭시의 소비시장 규모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이어 네 번째로 컸고 2013년까지 5년간 평균 성장률은 전국의 평균보다 높았다. 중국의 또다른 한 축의 톱니바퀴가 서서히 돌아가고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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