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인터스텔라」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다. 우주는 너무나 넓기에, 자신의 별을 벗어나 다른 별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머나먼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별들이 서로 무관한 존재는 아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서로를 밀고 당기는 힘으로 이어져있다. 별은 사람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기에, 그곳에서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홀에 들어가는 ‘나’와 나오는 ‘나’는 같지 않다. 블랙홀은 사랑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블랙홀」은 90년대 초반에 나온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빌 머레이는 매일 반복되는 시공간에 갇혀버린다. 무엇을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망은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반복되던 세상은 빌이 앤디 맥도웰과 사랑을 이룬 순간 변화한다. 그런데 그 사랑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몰입의 차원은 아니었다. 마냥 지옥처럼 느껴졌던 곳에 사람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빌은 욕망과 사랑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지평 속에서,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87년, 한 대학생이 국가로부터 고문을 받은 뒤 사망했다. 당시 그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했던 담당 검사가 얼마전 대법관 후보가 되었다. 어쩌면 87년의 ‘민주화’는 그 무엇도 바꿔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수십 미터 상공 조그만 공간에서 기약 없이 반복되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40여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좌절한 멧 데이먼의 광기는 이해가능하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파괴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들에게, 자신에게 폭탄이 던져져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칼은 손쉬운 유혹일 것이다.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쩌면 폭력은 유일하게 가능한 '비쥬얼'이다. 제국주의 폭력에 맞선다는 명분과는 달리,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관련 없는 개인에 대한 참수를 택하는 세력이 세를 넓혀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세상은 한쪽에 일베와 다른 쪽에 IS만이 보여지는 곳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계가 조작되었건 말건 해고는 경영진 마음대로라는 판결 앞에서도, 수십명이 죽었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찾아 굴뚝에 올라간 이들이 존재한다. 굴뚝은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의 외로운 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굴뚝이 등대가 된다면 섬과 섬을 이을 수 있다. 촛불 하나가 수많은 촛불이 되듯, 촛불이 모여 어둠을 몰아내듯.

쿠퍼가 우주로 향한 것은 딸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자기 눈앞에 두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었다. 우주에서 쿠퍼의 사랑은 다른 사랑과 접촉한다. 혈육에 대한 사랑은 동료의 사랑에 대한 존중으로 그리고 인류를 위한 희생으로 나아간다. 딸은 그 사랑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유모차와 함께 했던 어머니들을 기억한다.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존재가 있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들, 자신의 소중한 존재가, 더불어 모두가 더 좋은 미래를 가지기를 염원했던 이들. 그 사랑이 폭력에 맞서고 폭력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해도 5차원은 존재하듯. 무한할 것만 같은 별과 별의 거리가 블랙홀 속에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듯.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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