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수 교수
철학과

“나는 내 자신을 실재론자라고 생각해. 철학적 용어를 써본다면 염세론자라 할 수 있겠지. 인간의 의식이란 건 진화과정의 비극적 실패작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너무나 자신을 의식해. 우리는 각자 자신이 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만 말이지, 사실 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거거든.”

요즘 인기 절정 미드 ‘트루 디텍티브’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매튜 맥커너히가 내뱉는 대사이다. 약간 삐딱하고 매사 시니컬한 이 형사는 매일 부딪치는 악(惡)의 현장 속에서 인간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을 여과가 없이 내뱉는다. 이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인기 폭발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인간의 자의식은 인간에게 내린 저주이고, 자아는 분노와 원한이 돛을 내리는 장소가 되어서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만든 감옥, 그의 표현을 빌면 일류젼(illusion) 속에 산다는 것이다.
이 대사가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불교철학에서 말하는 무아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만난 몇몇 학생들과의 상담 때문이다. 그들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많은 상처를 입었고 또한 그것이 현재까지도 그들의 삶에 아주 무거운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어려서 겪은 트라우마는 평생의 인생을 지배한다고 한다. 과거의 고통은 과거로 끝나지 않고 과거에 발생한 상처의 기억과 거기에서 파생된 각종 부정적 심리 상태가 마치 버추얼 리얼리티 속의 사건들처럼 반복적으로 자신을 겨냥해온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심리적 고통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자아 보호 본능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그러한 강화의 중심에 바로 자아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명상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이럴 때 자신에서 벗어나 보라고 권한다. 즉 자기를 놓아 버리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 컬럼비아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Evan Thompson의 『Waking, Dreaming, Being』이라는 책은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톰슨 교수는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의 철학교수로, 책 제목이 말하듯이 인간 존재가 지닌 조건으로서의 자기 강화(이것을 꿈이라고 표현한다)와 그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달라이라마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말한다. 인간이기에, 자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조건과 삶에 불만족을 느끼며, 또한 그것을 극복하려고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아(無我)라는 것은 자아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자신에 속한 것에 대한 집착의 관점에서 벗어날 때 더 크고 대범한 시선 속에서 자기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약간 물러나, 자신을 너그럽게 보아주고, 마치 남에게 하듯이 대견하다고 칭찬도 해주고,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나서 그 속에 자신을 녹여 일체가 되어 볼 때 나는 새로운 자신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큰 사람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보다 자비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업을 하다보면 옆 사람의 시선에 잔뜩 눌려 불행하고 움추러든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는 학생들을 가끔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스스로 만든 ‘나’라는 인식 속에서 만들어 낸 세상(perceived world)에서 벗어나 그 울타리를 훌쩍 넘어 보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벗어버리고, 결국 진정한 만족은 자기 자신에게서 온다는 것을 믿어보시라고 말이다. 이제 새 학년을 시작하면서 자기 혁신을 위해 심기일전 한번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조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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