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오픈액세스 운동

학술지 구독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학무위원회는 지난 2012년 높은 구독료 때문에 적어도 2개 대형 출판사와의 계약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고, 서울대는 지난 1월 예산 부족으로 교보문고 스콜라를 구독 중단한 바 있다. 서정욱 교수(의학과)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중앙도서관의 단행본 구입비는 2배 정도 증가한 반면 학술지 구독료는 4배 이상 늘어 현재 서울대가 학술지 구독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연간 100억원에 이른다. 학술지의 지나친 상업화 때문에 경제적 부담 능력이 미약한 기관이나 개인은 학술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학술지가 연구자 간 학술적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학술지의 가격상승은 학술적 교류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픈액세스 운동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했다. 200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BOAI(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 선언에서 처음 사용된 ‘오픈액세스’ 개념은 논문에 대한 접근비용장벽과 허가장벽을 제거하는 것, 즉 누구나 논문을 보고 특별한 허가절차 없이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BOAI 선언으로 시작한 오픈액세스 운동은 지난 12월 네이처퍼블리싱그룹이 “네이처퍼블리싱그룹이 출판하는 모든 논문에 대해 무료로 접근할 수 있다”며 동참하는 등 그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오픈액세스로 가는 두 가지 길

오픈액세스는 크게 두 가지 방법, ‘셀프아카이빙’(Self Archiving)과 ‘오픈액세스 학술지’(Open Access Journal)를 통해 이뤄진다. 먼저 셀프아카이빙은 저자가 임의의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을 게재한 뒤 논문을 별도의 개방된 논문 저장소에도 업로드해 자유 열람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자신이 논문을 등재한 학술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전 세계 학술지의 색인을 제공하는 SHERPA/RoMEO 데이터베이스에 현재 등록된 1,813개의 학술지 중 76%가 셀프아카이빙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 MIT와 하버드대를 비롯한 해외 많은 대학이 각자의 개방된 논문 저장소를 가지고 있고, 국내에도 KAIST의 KOASAS와 서울대의 S-Space 등 많은 대학이 개방된 논문 저장소를 운용하고 있다.

다른 방법인 오픈액세스 학술지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구독비용이 없는 학술지다. 이를 채택한 출판사는 독자로부터 구독료를 받지 않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출판처리 비용을 마련한다. 대한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오픈액세스 학술지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의 홍성태 편집장은 “출판에 필요한 비용 중 75% 정도는 저자의 논문 게재료로, 나머지는 대한의학회의 지원으로 마련한다”고 밝혔다. 다른 오픈액세스 학술지로는「eLife」,「PLOS ONE」(Public Library Of Science ONE)가 잘 알려져 있으며, 홍 편집장은 “국내 의학 학술지 중 90% 정도가 오픈액세스 학술지”라고 밝혔다.

이렇게 접근비용 장벽을 제거한 논문 저장소와 오픈액세스 학술지는 허가 장벽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CC(Creative Commons) 라이선스’를 채택한다. 이는 ‘다음 조건을 만족하면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효과를 내며, 저작자 표시(BY), 비영리(NC, NonCommercial), 변경 금지(ND, No Derivative works) 등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학술지가 CC-BY-NC 라이선스를 채택한 경우 독자는 저작자를 표시하면 상업적 목적이 아닌 한 별도의 허가 없이도 학술지의 내용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개방을 향한 각계각층의 발돋움

별도로 논문을 업로드하는 번거로움을 거치고, 오픈액세스 학술지 등재에 필요한 논문 게재료를 부담하면서까지 연구자들은 왜 오픈액세스 운동에 동참하는 걸까? 오픈액세스를 통하면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높아지며, 이것이 연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픈액세스 논문은 접근에 제한이 없는 만큼 일반적으로 유료 학술지의 논문보다 많이 인용된다.

연구자는 오픈액세스로 연구 성과도 올리고 학술적 교류도 활발히 할 수 있는 한편 대학과 도서관은 학술지 구독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서정욱 교수는 “오픈액세스 논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굳이 유료 저널을 사서 볼 필요가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픈액세스의 확장은 유료 학술지 출판사의 입지를 좁게 해 지나친 학술지 가격 인상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학술지 출판사는 오픈액세스를 채택하면 학술지의 권위와 수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2010년 오픈액세스 학술지로 전환한「JKMS」가 일례로, 「JKMS」는 2010년 0.834이던 피인용지수를 2012년 1.249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출판사가 영리단체라면 우선 오픈액세스를 통해 학술지의 권위를 높인 뒤 논문 저자에게 받는 게재료를 점차 인상하면 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친 게재료 인상은 연구자에게 부담이 되므로 학술적 교류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오픈액세스의 취지에 어긋난다.

국내 많은 기관은 오픈액세스의 이런 장점들을 인식하고 오픈액세스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연구자 간 교류가 상대적으로 잦은 의학 분야에서 오픈액세스 운동은 활발하다. 서울대 의학도서관과 계약을 맺은 출판사 ‘바이오메드 센트럴’에서 발간하는 오픈액세스 저널에 서울대 연구자는 30% 할인된 가격으로 논문을 게재할 수 있다. 또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는 의학 분야 오픈액세스 학술지들의 논문을 한 곳에서 검색할 수 있게 하는 ‘시냅스’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서울대 논문 저장소인 S-Space는 연구자가 쉽게 오픈액세스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서울대 연구자는 연구처에 자신의 연구실적을 보고하면서 논문을 S-Space에 공개한다는 동의만 하면 별도의 절차 없이도 오픈액세스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연구자의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에서 셀프아카이빙을 허용하는지 확인하고 논문을 S-Space에 업로드하는 과정까지 모두 중앙도서관 측에서 진행해 주기 때문이다.

관(官)이 오픈액세스 운동을 주도하기도 한다.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되는 한국연구재단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게재된 논문 100만개 중 30만개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연구재단은 연구비를 지원한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해선 그 논문을 KCI에 기탁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학회에 ‘원문공개 동의서’를 요구하고 있다. 또 학술지 지원사업의 선정 기준에 원문 무료공개 여부를 추가함으로 오픈액세스를 유도하고 있다.


위로부터의 운동, 우려되는 점은?

하지만 한국연구재단의 활동을 비롯해 관 주도로 오픈액세스를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지난 2일(월) 국회의원회관에선 설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조정식 국회의원이 주최한 ‘학술논문 무상공개,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가 열려 오픈액세스에 대한 찬반토론이 진행됐다. 토론회에선 현행 오픈액세스 정책의 문제로 크게 두 가지, 저작권 침해와 학술DB업계의 피해가 제기됐다. 토론회에 참여한 임상혁 교수(숭실대 국제법무학과)는 “한국연구재단이 논문 원문공개 동의서를 요구하는 건 사실상 학자에게 저작권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연구자들이 오픈액세스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허선 교수(한림대 의학과)는 “원문 공개 동의는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학회와 연구자도 논문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보단 더 많이 인용되길 바라고 있다”고 반박했다.(「오마이뉴스」 2015년 3월 5일자)

DBpia를 운용 중인 누리미디어를 비롯한 학술DB업계(업계)는 자신이 유료로 판매 중인 논문이 KCI에서 무료로 공개되니 수입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업계 측은 논문을 유료로 판매해 연구자에게 돌아갈 몫을 키우자는 입장인 반면, 한국연구재단은 논문 공개가 국내 학계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유리하고 업계도 단순 ‘논문 장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토론회에서 누리미디어 최순일 대표는 “앞으로 논문 판매 수익을 학회뿐 아니라 연구자 개인에게도 지급하겠다”며 “KCI도 원문 공개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공기금을 받고 작성된 논문이 유료로 배포될 경우 납세자인 국민은 이중으로 비용부담을 지게 되므로 공공 연구성과물은 무료로 공개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다. 실제로 서정욱 교수는 “미국과 영국에선 세금으로 생산된 연구 성과는 무료로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선 공공 연구성과물의 ‘역수입’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세금으로 생산된 국내 연구자의 SCI급 논문 50% 이상을 해외에 비용을 지불해 구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공공 연구성과물에 대한 공개는 필요하지만 일시에 전면적으로 논문을 공개할 경우 업계의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업계의 피해가 학회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학회에서 생산한 논문을 독자에게 판매하고 저작료를 학회에 지급하는데 상대적으로 자금 규모가 작은 인문사회과학 학회의 경우 수입의 적잖은 부분을 업계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새로 출판된 논문에 대해선 유예기간(embargo) 후에 논문을 공개하는 방식을 한국연구재단이 채택한다면 학회가 처하게 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다. 김규환 교수(전주대 문헌정보학과)가 그의 논문 「국내 학회의 오픈액세스 수용과 추진방식에 대한 제안」에서 “엠바고 기간이 짧을수록 오픈액세스 정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고 평한 것을 볼 때, 논문 공개 유예기간은 점차 짧아질 필요가 있다.

미국 IUPUI 대학의 도서관장 데이비드 루이스는 2020년 학술지의 90%가 오픈액세스 학술지일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논문 저장소와 오픈액세스 학술지의 규모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술 교류를 막는 장벽을 세계 각국이 허물어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들과 어울릴 준비가 됐는지 되돌아볼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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