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시절, 『대학신문』을 읽고 있던 필자에게 자신이 『대학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를 말해준 선배가 있었다. 학내 자치언론들은 대부분 챙겨보던 그는『대학신문』이 “조금도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안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신문』기사들의 “소재와 접근방식이 기성언론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내용이 아니면 시간 내서 읽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본부로부터 받는 많은 지원이 아까울 정도로 『대학신문』은 재미없는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다수의 학내 언론들이 학생들에게 차갑게 외면 받는 오늘날, 『대학신문』이 학생들이 즐겨 읽는 신문으로 다시 태어나 학내 공론을 주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필자는 『대학신문』이 앞서 말한 선배처럼, 매력적인 기사라면 얼마든지 읽을 준비가 돼있는 학내 언론 구독층부터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읽고 싶어 하는 이들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언론이 어떤 것도 읽을 마음이 없는 이들을 공론장으로 이끄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대학생 기자들이 만드는 대학언론’으로서 기성언론과 차별화되는 『대학신문』만의 매력에 대한 치열한 고민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호의 관정관 특집기사는 분명 좋은 기사였다. 다른 언론들이 관정관의 규모와 시설에 감탄하는 기사들을 내보낼 때, 학교 내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시선을 통해 관정관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기사였다. 이는 소수자들과 함께 학교에서 생활하고 관정관을 이용할 대학생 기자들이 그들과 동행하며 만든 기사였기 때문에 기성언론에 비해 『대학신문』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십분 발휘된 근사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에서는 『대학신문』만의 매력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국민연금 관련 기사의 내용에 공감하면서 이 기사가 청년층의 관심을 유도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느꼈던 것은 기사 전체가 ‘재미없는 리포트’ 같았기 때문이다. 생계가 불안정한 자신이 왜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는지에 대해 청년 노동자들이 근본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기사에서는 이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문제와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몰두하다보니 정작 청년층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은 뒷전이 됐다.

해외면에 실린 충칭 관련 기사는 더 실망스러웠다. 기사의 대부분이 충칭에 직접 다녀오지 않아도 자료조사를 통해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또한 충칭의 경제 성장이 한국사회와 대학생들에게 특별히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을 수도 없었고 관점이 참신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학내 언론 『대학신문』이 해외취재를 다녀와 이 기사를 싣는지 의아했다.

이상의 기사들을 보면서 필자는 『대학신문』이 큰 욕심을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기성언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거대 담론과 이론적 논의들 대신, 대학사회와 청년 및 대학생들의 시선부터 기자들이 고민하기 시작할 때 『대학신문』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을 독자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 기자들이 가까이서 보고 듣는 이야기들에서『대학신문』만의 매력은 드러나는 것이다. 앞으로 독자들에게 더 ‘매력적인’ 언론으로 거듭나는 『대학신문』을 매주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김경수

서양사학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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