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최근에 개봉한 영화 「소셜포비아」는 인간 내면의 은밀하고도 뿌리 깊은 스토리텔링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지웅과 용민은 ‘우연히’ 민하영이라는 악플러를 처단하기 위한 ‘현피’에 참여했다가 해당 악플러의 자살을 목격한다. 이 마녀사냥에 참여했던 무리는 민하영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으로 지목돼 온갖 비난의 포화를 맞고, 그들의 신상이 인터넷에 낱낱이 공개되면서 오히려 역으로 마녀사냥을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에 지웅과 용민은 민하영의 죽음이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타살설을 제기하고, 이를 ‘사실’로 만들기 위한 추리에 돌입한다.

추리란 근본적으로 몇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단서들 사이를 가장 그럴 듯한 스토리라인으로 매끄럽게 잇는 작업이다. 때문에 지웅과 용민에게 사건의 진위나 발생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익명의 SNS 사용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그들이 지닌 마녀사냥을 향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생산해내면 그만이다. 그들은 죽은 악플러와 같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거의 본능에 가까운 맹렬한 기세로 추리서사를 만들어낸다. 바야흐로 생존을 위한 스토리텔링 경쟁의 시작이다.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추구하는 것은 더 잘 살아남기 위한 방편에서 이루어진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 사고, 행동은 모두 이야기 구조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인간은 삶 속에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들을 실제로 겪기 전에 미리 이야기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습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인류는 생존에 보다 유리한 지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향한 본능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갓셜이 근거로 제시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도형의 움직임을 보고 설명하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서사로 대답했다. 실로 인간은 모든 것에 이야기 구조를 부여하고자 하는 열렬한 본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 본능이 자기파괴적으로 작동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음모론의 성행과 마녀사냥 따위의 비이성적이고도 불가해한 현상들은 여기서 파생된다. 이 기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구태여 아득히 먼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중세의 광신적 마녀사냥이나 50년대 반공 매카시즘 따위를 헤집어볼 필요도 없다. 근자에 벌어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과 관련해 이른바 ‘종북 논란’이 다시 한 번 마녀사냥식 음모론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므로.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종북 숙주’로 일컬으며 이번 피습 사건의 ‘종북 배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사태의 본질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재보선을 앞둔 여야 모두 술탄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야했던 세헤라자드의 심정으로 ‘종북’ 스토리텔링 싸움에 목숨을 건 듯 하다. 미대사 피습과 ‘종북’ 키워드를 엮는 새누리당의 시도가 구차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이들의 ‘종북’ 스토리텔링이 대중의 마녀사냥적 욕망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우려스럽다.

점입가경인 작금의 상황에 혀를 내두르다가 문득 미국 공화당원의 3분의 1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은밀한 이슬람교도로 의심하고 있으며, 24퍼센트는 그가 적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에 찬성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통계를 위안 삼아 떠올려본다.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이란 이토록이나 끈질기고도 음험한 불가항력이었던가.

배하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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