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일 학예연구사
박물관

박물관의 기원은 기원전 3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물관을 의미하는 영어의 뮤지엄(museum), 프랑스어의 뮤제(musee), 독일어의 무제움(Museum) 등은 모두 헬레니즘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고대 그리스의 여신인 뮤즈(Muse)에게 바치기 위해 세운 신전인 무세이온(museion)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박물관이라고 전해진다. 결국 박물관은 신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또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신께 바쳐졌던 박물관을 우리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박물관 안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품을 감상하고, 지나간 문명의 증거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전시 관람’이라는 행위이다. 그러나 신에게만 허락되었던 이 행위를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행하다보니 부작용이 따라온다. 피곤하다. 엄청나게, 이상하리만큼 피로가 밀려온다.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은 전시공간 안에서 이동과 정지를 반복하며 전시물을 집중해서 관찰하는 행위의 연속으로, 고도의 신체적, 정신적 활동을 요구한다. 오죽하면 ‘박물관 피로’(museum fatigue)라는 전문 용어가 생기기까지 했을까. 그리고 규모가 큰 대형 박물관일수록 움직여야 할 거리는 길어지고, 관찰해야 할 유물의 숫자는 늘어난다. 부푼 꿈을 안고 입장한 대규모 전시장 안에서 결국 관람을 중도에 포기한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약간의 부작용이 무서워 내게 허락된 신의 지위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장 편안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을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관람객이 적은 시간을 골라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다. 박물관이 관람객들로 꽉 차있다면 그보다 피곤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주말이나 공휴일은 피하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오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박물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전시물을 꼼꼼하게 관람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전체 관람 동선은 4km가 넘고, 전체를 관람하는 데 11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전시물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꼭 봐야 할 중요한 전시물을 미리 확인하고 취사선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박물관의 평면도를 보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고, 전체 전시 공간을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며 대략적인 전시물의 구성과 위치를 파악한 후 본격적인 관람에 들어가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전시 관람은 행군이 아니다. 신은 무한한 체력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나약한 신체는 휴식이 필요하다. 1분간의 휴식은 당신이 5분 더 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다른 신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박물관 안에는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신들이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그들이 행하는 신의 역할을 방해하지 않으며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신의 역할이다.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선일 연구원
박물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