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구연동화의 한토막이다.

어느 나무꾼이 산길을 걷다가 스님과 마주쳤다. 스님은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술병이었다. 나무꾼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스님께선 술을 드십니까?"

스님은 당황해 하며 대답했다.

"아, 고기가 좀 생긴 김에 그만…."

나무꾼은 놀라서 물었다.

"스님께선 고기도 드셔요?"

스님은 더욱 곤혹스러워 하며 둘러댔다.

"실은 내가 먹으려는 게 아니라, 장인어른이 오셔서 대접하려고…."

이 스님은 불가의 계율에서 금지된 술을 마시려다 나무꾼에게 들키자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변명을 하다가, 그만 무의식중에 자신이 육식과 혼인을 금하는 또다른 계율마저 어기고 있음을 실토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런 동화같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재현되곤 한다. 이 즐거운 희극을 대중들에게 선사해 주는 연기자들은 각종 비리사건의 연루자들이다.

뇌물이나 알선수재 따위의 비리의혹사건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관련된 인사들의 한결같은 항변은 '관행'이다. 특히 당사자들이나 이들의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행하는 변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중 하나는 '명절 떡값'이다.

개인이 공직자에게 금품을 주는 것은 윤리적 지탄의 대상이긴 하지만, 법적인 처벌대상은 아니다. 다만 그 돈에 공직자로 하여금 직권을 남용하여 부당한 행위를 하도록 할 목적으로 하는 '대가성'이 있다면, 그것은 뇌물이고 처벌대상이 된다.

그래서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은 금품이나 향응이 어떤 부정한 거래를 염두에 두고 의식적으로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명절날 선물을 주고받듯 악의 없이 오고간 떡값이었을 뿐이며, 그것은 평소 관행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무죄나 선처를 호소하곤 한다. 평소의 '떡값'에 비하면 자신이 기소된 사건과 관련된 금품은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약소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평소에도 자신이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대가성 없는 떡값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는가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실정법상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평상시의 윤리적 파탄을 스스로 애써 과시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에 이른다. 마치 옛날 이야기 속의 스님처럼 술 먹는 것(뇌물)을 변명하다가 고기 먹는 것(떡값)과 장가드는 것(평소의 대가성 없는 향응)까지 드러내는 격이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떡과 떡값에 대한 단상을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