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된 빅뱅, 다시 그려지는 입자물리학의 청사진
재현된 빅뱅, 다시 그려지는 입자물리학의 청사진
  • 김지윤 기자
  • 승인 2015.03.15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재] 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재가동

LHC, 두 배의 에너지로 재가동

더 무거운 입자의 관측도 용이해져

힉스입자에 남은 의문들을 넘어서

대통일 이론을 확립할 수 있을까?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힉스입자가 발견된 지 3년이 흘렀다. 그동안 CERN은 빅뱅 직후의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제작된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재정비해왔다. 가속기를 이용해 쏜 양성자 빔은 거대한 원형 LHC로 향하게 되고 강력한 자석으로 인해 방향을 틀어 시계방향으로 원둘레를 돌게 된다. 이 때 반시계방향으로 또 다른 빔을 쏘아 빠르게 돌던 두 양성자끼리 충돌시키면 그 중심온도가 태양의 중심온도인 1500만K보다 10만 배 더 달궈진다. 강한 충돌 에너지로 양성자는 구성성분인 쿼크와 글루온이라는 기본입자들로 부서진다. 에너지를 전달받은 소립자들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입자를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

LHC가 초기 가동됐을 때는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예정했던 에너지의 절반인 7TeV*에 해당되는 에너지로 실험을 진행했었다. CERN은 LHC의 결함을 수정해 설계 성능인 13TeV, 즉 양성자 질량의 13000배의 에너지로 실험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HC가 가동된지 3년 만에 힉스입자의 존재를 발견했던 것처럼 이번 재가동에서는 어떤 새로운 사실을 포착할지 물리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힉스입자의 발견으로 미시세계의 문이 열리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와 그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힘에 대한 표준모형을 완성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자연에 존재한다고 밝혀진 힘은 네 가지로, 전기-자기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전자기력, 원자의 자연스런 붕괴를 일으키는 약한 핵력(약력), 양성자의 구성성분을 단단히 붙드는 강한 핵력(강력), 그리고 중력이 있다. 실험으로 발견한 12개의 기본입자와 이들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4개의 매개입자를 바탕으로 현재 표준모형은 전자기력, 강력과 약력를 하나의 모델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힉스입자를 발견하기 전까지 표준모형에는 다소 빈틈이 있었다. 자연을 설명하는 법칙은 측정하는 좌표가 바뀌어 대상의 위상이 달라져도 그 변화와 상관없이 하나의 근본 원리로 대상을 설명하려 하는데, 이런 경향을 ‘대칭성’이라고 한다. 표준모형 또한 양자역학적인 대칭성에 따라 소립자들의 물리량들을 동일하게 보고 자연 상태에선 이들을 따로 구분해낼 수 없다는 원리를 도출했다. 이에 따라 표준모형에서 제시하는 기본입자나 매개입자는 질량이 없는 것으로 간주됐다. 질량은 입자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성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시행한 실험에서 나타난 소립자들은 미량이라도 질량을 갖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론과 현실을 일치시키려던 물리학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입자들에게 질량을 덧씌우는 메커니즘을 확인하고자 했고 2012년 7월 LHC에서 그 증거가 되는 힉스입자를 확인했다. 힉스 메커니즘에 의하면, 힉스입자는 힉스장(Higgs field)을 존재하게 하는 입자이다. 높은 에너지를 얻어 입자가 깨지는 순간 힉스장이 시공간을 가득 채우게 된다. 소립자들은 그 곳을 통과할 때 어떤 저항을 겪게 되고 이와 같은 상호작용에서 질량을 얻게 된다.

이강영 교수(경상대 물리교육과)는 각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매커니즘의 본질이 “원래 존재하던 대칭성이 깨진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빅뱅에서 나타난 소립자가 힉스입자에 의해 자발적으로 질량을 얻는 현상은 이론과 현실 사이의 틈을 메우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던 것이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이론의 대칭성은 그대로지만 식의 답은 대칭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힉스입자를 넘어 초대칭 이론을 향해

물리학자들은 더 나아가 힉스입자 자체와 그에 뒤따르는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번 LHC 재가동은 이를 위한 좋은 기회다. 과제 중 하나는 힉스입자의 질량이 가벼운 이유를 찾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각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는 동시에 정확히 측정될 수 없다. 이로 인해 입자는 매 순간 요동치는 것처럼 관측된다. 그리고 힉스입자는 주변에서 요동치는 온갖 입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양자역학적 계산에 의해 매우 큰 질량을 지닐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힉스입자가 발견된 후 예상과 달리 그것의 질량이 125GeV**로 가볍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학계에선 입자들에게 각자 짝을 이루는 입자가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를 초대칭 이론이라 한다. 이에 따른 초대칭 입자는 요동치는 입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음의 값으로 얻어 질량이 커져야 하는 계산을 빗겨가게 만든다. 김형도 교수(물리·천문학부)는“힉스입자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입자들의 초대칭 입자들은 양자요동의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초대칭 입자가 질량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려면 초대칭성이 깨질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실험을 통해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학계에선 LHC와 같이 높은 에너지를 창출하는 강입자충돌기에서 초대칭 입자들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초대칭 이론에 근거하여 LHC 실험은 암흑물질을 찾아낼 수도 있다. 암흑물질이란 전체 우주의 23%를 차지하면서도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 전자기파가 아닌 중력으로만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이다. 뜨거운 온도로 출발해 지금까지 팽창해온 우주에 남아있는 가벼운 초대칭 입자의 양을 이론에 따라 계산해보면 현재 우주 천문학적 관측으로 추측하는 암흑물질의 양과 비슷한 값이 나온다. 이와 같은 상관성을 고려해 학계에선 가장 가벼운 초대칭 입자를 발견할 경우 이것이 가장 대표적인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김형도 교수는 “초대칭 입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사실과 맞물려 현대 이론물리학자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힉스 매커니즘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일 이론, 자기홀극 발견을 꿈꾸다

표준모형이 확립된 후 거기서 더 나아간 모델인 대통일 이론을 검증하려는 연구도 차츰 힘을 얻고 있다. 전자기력과 강력, 약력은 대통일 이론에서 하나의 힘이었다고 이해된다. 김형도 교수는 “초대칭 이론을 가정하고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면 각각의 상호작용 정도가 모두 같은 값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높은 온도였던 빅뱅 당시 세 개의 힘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 채 같은 세기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강화된 LHC를 통해 초대칭 이론을 확립하고 관련한 과제를 다른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면 세 가지 힘을 하나의 기원에서 찾는 대통일 이론도 점차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일 이론을 통해 N극 혹은 S극만 혼자 존재하는 자석인 ‘자기홀극’(monopole)의 존재를 예측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일 이론에 따라 하나의 힘에서 여러 힘이 갈라지는 혼돈 속에서 자기홀극은 필연적으로 많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돼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연계에 자기홀극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자기홀극 문제는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아있다.

이번 LHC 재가동에서 CERN은 ‘자기홀극 탐사 프로젝트’(MoEDAL)를 진행할 예정이며 프로젝트의 선두주자로 조메이슨-홀극을 지목했다. 이 홀극은 이론상으론 표준모형에 부합하도록 예측됐지만 질량이 크기 때문에 기존 강입자충돌기의 에너지로는 관찰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이번 재가동에서 LHC의 에너지가 두 배가 된 만큼 탐사 프로젝트를 통해 조메이슨-홀극을 발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물론 자기홀극과 같이 전혀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는 건 힉스입자 발견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힉스입자가 LHC를 통해 50년 만에 발견된 것을 미뤄볼 때 이번 프로젝트도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의 법칙을 밝혀낼 증거들을 수집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힉스입자 발견의 흥분이 남아있는 지금, 힉스입자 자체에 대한 연구부터 초대칭 이론 증명, 자기홀극 발견까지 현대 입자물리학의 지평을 확장할 실험들이 LHC 재가동을 기다리고 있다. 이론물리학자들은 새로이 등장할 태초의 지식, 사실 우리 주변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 현상 속의 비밀을 찾아 바쁘게 연구할 나날을 고대하고 있다. 더욱 강해진 강입자충돌 실험을 통해 현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빅뱅, 그 과정에 탄생한 소립자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TeV : 테라전자볼트. 1eV는 1개의 전자가 1V의 전위차를 따라 이동할 때 얻는 에너지다.

*GeV : 기가전자볼트. 1GeV는 대략 양성자 1개의 질량으로 환원될 수 있는 에너지의 양과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