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청년을 말하다 ①2015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주소

이 시대 청년의 모습을 묘사한 신조어들이 넘쳐난다. ‘88만원 세대’부터 시작해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 세대’, 장기 미취업 졸업생을 일컫는 ‘장미족’, 학자금 대출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는 ‘청년 실신’,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생’ 등 청년을 지칭하는 말들에는 이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응은 두 가지다. 한쪽에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참고 견디면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요즘 청년들은 불의에 저항할 용기가 없다”며 비겁하고 무기력하다고 몰아간다.

하지만 이런 위로나 비난은 청년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조합원 유정희 씨(26)는 “젊은 게 죄냐”며 “젊으니까 고생할 수 있다는 인식은 청년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요즘 청년들이 무기력한 세대라는 진단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학생 최승원 씨(21)는 “시대가 다르지 않냐”며 지금 청년 세대에게 이전 세대들과 같은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년이란 대체 무엇이기에 ‘무기력하지 않아야’ 하고, 힘들면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할 존재로 여겨져 온 것일까?

시대의 심장이었던 청년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청년은 생동감과 역동성의 상징이다. 하지만 우리가 청년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게 된 것은 단순히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사회 변혁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청년’ 개념은 1890년 일본에서 도입됐다.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던 당시 청년은 무너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를 받아들였다. 근대 교육을 받은 청년은 새 시대의 주역으로서 눈앞의 봉건사회의 모순과 대결했다. 뜻 맞는 청년들은 청년학우회 등의 구국 청년단체를 결성, 국권 회복 등의 과업에 대해 밤새워 토론하기도 했다. 이들은 실력양성과 국민계몽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사회변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청년은 민주화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청년들은 ‘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1960년 4·19 혁명,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선두에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들은 군부독재와 권위주의를 상대로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쳤고, 다른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결국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가져왔다. 전상진 교수(서강대 사회학과)는 “개화기나 해방정국,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이르기까지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앞서는 시대와 사회였다”며 “이러한 역사적 국면에서 사회운동을 주도한 청년 세대는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평했다.

2015, 청년을 묻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하지만 오늘날의 청년들은 과거의 청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청년은 이전에 누리던 미래의 엘리트나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을 잃어갔다. 스스로를 시대를 움직이는 변화의 주체로 여기지도 않게 됐다. 달라진 시대 상황과 삶의 무게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청년들은 무엇을 향해 ‘짱돌’을 던져야 할지 불분명해졌다. 1970~80년대에는 독재라는 맞서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이 있었고 경제성장이라는 뚜렷한 목표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복잡화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명백한 적이 없어 청년들이 어떤 단일한 의제를 중심으로 결집하기 힘든 상황이다”고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오찬호 연구원은 진단한다.

한편 기성세대의 위로는 청년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조금도 덜어주지 못한다. 전상진 교수는 “과거에는 정치적으로 암울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며 “그나마 미래가 보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짚었다. 반면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뿐이다. 청년실업률은 9%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어렵게 취업을 하더라도 10명 중 2명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고용시장은 이토록 얼어붙었는데 한 명당 1,558만원의 빚까지 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야 하니 내 한 몸 누울 공간은 사치다. 노동사회연구소 김유빈 연구원은 “자기 자산 없이 월 소득으로 생활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월 주거비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자신의 힘으로 주거비용을 마련할 수 없거나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저축은 물론이고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기도 벅차 공동체나 사회는 뒷전으로 밀린다. 전상진 교수는 “현재와 같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청년들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행동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청년문제, 모두가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청년에 대한 기성세대의 위로와 비난은 청년이 처한 현실도, 청년의 내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처사다. 생존 자체가 버거운 청년들에게 ‘청춘은 원래 그렇다’는 기성세대의 위로는 무책임하다. 과거와는 달라진 시대 상황에서 ‘토익책을 내려놓고 짱돌을 들라’는 요구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돼버리는 측면이 있다. 젊은 게 한밑천이라기엔 현실이 너무 가혹하고, 그렇다고 투사가 될 수도 없는 청년들. 하지만 청년들이 현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승원 씨는 “내가 이 시대의 피해자이고, 이 시대를 고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지금 청년을 규정하고 있는 표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청년들이 안쓰럽다면, 청년들의 삶의 무게를 줄여주는 것이 급선무다.

청년세대의 문제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다. 따라서 청년들이 겪는 문제들은 공동체 차원에서 모두가 책임져야 할 과제다. 백상진 씨(법학부·07)는 “부모세대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자식세대로 그대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당장 청년의 취업난만 해도 그간 누적된 경제구조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노동여건 차이를 확대시켰지만 이를 보완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미미했다. 결국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안정된 일자리와 적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몇 안 되는 ‘대기업 정규직’자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청년 문제는 청년들만 다그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청년의 목소리도 주요 담론으로 이어지는 사회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물론 청년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주거협동조합 ‘민달팽이유니온’ 조합원 임소라 씨(31)는 “청년들이 스스로 빽빽 거리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청년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직접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혼자 하기 힘들다면, 같이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5년간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해성 씨(34)는 혼자 망했다고 느꼈을 때와 다 같이 모여서 망했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똑같이 망한 상태라도 후자가 재기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청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모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7월 청년유니온에 가입했다는 유정희 씨(26)도 비슷한 이야기를 건넸다. 그는 “저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나에 대해 생각한다”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위안이 있고,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더라도 청년들이 현실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며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아가 열악한 조건임에도 터져 나오는 청년의 목소리가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한때 대학가를 휩쓴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나 세월호 사건 이후 규탄 시위 등 청년들이 직접 사회적 의제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옮긴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일시적인 시도로 그쳤고 장기적인 사회적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찬호 연구원은 “내가 사회적 의제에 대해 분노를 토로할 때 그 의견이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딜 가든 계속 논의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벼랑 끝에 선 청년들과 그들을 밀어내는 사회. ‘젊은 게 죄’라는 말이 더이상 견디기 힘들다면 우리 모두 절벽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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