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물결에서 탄생한 헌재, 기본권의 수호자로 등장하다
민주화의 물결에서 탄생한 헌재, 기본권의 수호자로 등장하다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5.03.15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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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과제

당신은 지금 남은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면접에 입고 갈 옷이 당신에게 너무 커서 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혹은 누군가 그 옷을 당신의 작은 몸에 맞게 고치겠다면서 입기에 너무 어색한 옷을 만들어 버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신뢰할 만한 친구나 부모님에게 이 옷이 당신에게 어울리는지, 면접에 입고 가도 괜찮을지 물어볼 것이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면 당신은 세탁소에 옷 수선을 부탁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당신의 몸을 사회로, 옷을 헌법으로 생각하고 다시 읽어보자. 당신에게 옷이 잘 맞는다면 사회는 건강하게 운영될 것이다. 성장기인 당신에게 옷이 조금 커도 큰 문제는 없다. 시간이 지나 사회가 성숙해진다면 헌법이 잘 작동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억지로 옷을 뜯어고쳐 이상하게 만든다면 곤란할 것이다. 어색하다고 솔직하게 말해 줄 친구가 없다면 더욱 문제다. 그 사회의 구성원은 규율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견디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탄생한 헌재

1987년 전까지 우리는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야 했다. 몇십년간 이어진 군사독재 정권은 경제성장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국민의 기본권을 도외시했다. 헌법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국가권력을 통제할 방법은 없었다. 제3공화국 때 대법원은 법률 조문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경우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유신헌법과 함께 등장한 제4공화국 이후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위헌법률을 판단할 수 있는 기관에 대한 조항은 아예 사라졌다. 이에 유신헌법 제2항 긴급조치권에 따라 대통령은 필요한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었지만 국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1987년 6월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한 최초의 헌법 개정을 이끌어 냈다. 이제 국민들은 국가권력으로부터 법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이 보호받길 원했다. 헌법재판소(헌재)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탄생됐다. 헌법 제6장에 헌법재판소 규정이 마련됐고 이를 근거로 ‘헌법재판소법’이 1988년 8월에 제정, 9월에 시행됐다. 이에 따라 그해 9월 15일에는 초대 헌법재판관 9명이 임명됐다. 헌재가 맡은 임무는 국가권력이 헌법 내에서 정당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종수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개정된 헌법이 현재에 미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헌법재판 제도의 도입과 헌법재판소의 설립이다”라고 평했다.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던 국민의 기본권이 신장될 발판이 생겼기 때문이다.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기본권의 수호자 헌재

헌재는 기본권의 수호자로서 일반적인 민・형사 재판과 다른 5가지 헌법재판을 담당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위헌법률을 가리기 위한 위헌제청심판과 위헌심사형 헌법소원, 국민에게 행해지는 부당한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공무원 탄핵을 결정하기 위한 탄핵심판, 정당 해체를 결정하기 위한 정당해산 심판, 국가기관 간에 권한을 구분하기 위한 권한쟁의심판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헌재가 가장 많이 담당하는 헌법재판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관련된 것이다. 1988년부터 2014년까지 처리된 25,951건의 헌법재판에서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은 20,590건으로 전체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이처럼 헌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성문법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헌법은 전문과 130개 조문, 그리고 6개의 부칙으로 이뤄졌다. 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추상적인 문구가 많아서 헌법을 해석할 때 해석자의 자의가 개입될 우려가 있다. 국가권력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헌법을 해석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면 헌법은 신뢰할 만한 기준이 되지 못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헌재가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헌법 조문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헌재는 법질서가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살피고, 하위 법률이나 국가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잘 실현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최종 관리자인 셈이다.

실제로 헌재의 결정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은 점차 확대됐다. 2009년 헌재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때문에 게시글을 익명으로 남길 수 없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해당 법률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표현의 자유는 국가와 사회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라며 “익명으로 이뤄지는 표현은 본인의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게 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익명표현으로 인해 명예훼손, 모욕, 비방 등의 부작용이 우려될지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더 존중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또 헌재는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담당했던 영화 사전심의 제도도 사전검열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헌재는 평등권과 참정권을 침해했던 관행들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을 내리며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 남자만이 호적승계 순위에 오를 수 있는 호적제가 성차별적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적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던 것이 그 예다. 이는 헌법에 선언적 규정으로만 남아있던 성별에 의한 차별금지 원칙을 실질적으로 국민의 삶에 적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주민등록이나 국내 거소 신고를 하지 않은 재외국민일지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투표권이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며 참정권을 확대하기도 했다.

 

'헌재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

헌재는 최근 10년간 정치적 파급력이 큰 결정을 내려왔다. 헌재가 판단 기준으로 삼는 헌법은 제정과정부터 타협과 조정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정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일반법원이 개인적 문제에 국한된 개별사건을 재판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전종익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헌재는 정치 행위의 결과물인 헌법을 판단하는 사법기관이기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헌재 재판관이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본인들의 정치적 입장에 의해 헌법재판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헌재의 정치화’가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 이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판결을 신뢰할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던 대표적인 사건은 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 심판이었다. 헌재는 ‘관습헌법’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사용해가면서까지 이미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수도 이전에 제동을 걸었다. 보수적 성향이 짙은 헌재 재판관들이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샀다.

지난해 있었던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결정 때도 헌재가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헌재는 이석기 의원의 RO 내란음모 사건이 정당해산 심판을 촉발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사건에 대한 대법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정당해산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도 당내 일부 세력의 사상이 전체 당의 목적일 것이라는 추측을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학계에선 헌재가 이미 정부의 청구서를 보고 결론을 내려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일환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법 논리가 아닌 이데올로기가 판단 기준이 되는 순간 사법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 돼버린다”며 “사법의 정치화 경향이 짙어지는 최근 추세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헌재가 자유권이나 참정권 등 여타 다른 기본권과는 달리 사회적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사회적 기본권은 빈곤, 장애, 질병 등 불가피한 이유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다른 사람과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장애인 이승연 씨 가족은 2002년 최저생계비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최저생계비 결정고시가 너무 낮게 책정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드는 추가지출에 대한 배려가 없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헌재는 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기각은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아 헌재가 원고의 요구를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헌재는 기각 이유로 ‘인간다운 생활’의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국가는 최소한의 조치를 재량껏 시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홍성방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헌법에는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헌재 역시 국가기관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규정된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재가 헌법에 규정된 사회적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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