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미인 프로젝트

▲ 미인 프로젝트의 이번 새학기 작품.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있어." 그러자 나의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히 밝아지는 걸 보고 나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숨 가쁘게 강의실을 옮겨가던 관악인의 눈에 자하연 농협 외벽에 걸린 커다란 포스터가 들어온다. 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둔갑하는 이 포스터는 바로 ‘미인 프로젝트’의 작품이다.

미인 프로젝트는 미대 학생 4명과 인문대 학생 4명이 시작했다. 재작년 3월 농협은 음·미대로 향하는 길에 있는 외벽을 학생들이 직접 뜻 깊은 글귀로 채우는 활동을 인문대에 제안했다. 인문대 학생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논의를 거쳐 미대에도 모집을 요청했다. 박성연 씨(국어국문학과·11)는 “우리만으로는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미대와 인문대의 머리글자를 딴 미인 프로젝트가 성립됐고, 현재 구성원이 몇 명 바뀌었지만 변함없이 4:4 구성으로 프로젝트를 꾸려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학교 환경을 꾸민다는 점에 뜻을 함께 했다. 박성연 씨는 “학교 안에 내 것이라고 할 만한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준휘 씨(동양화과·12)는 “공적인 공간으로 나의 도화지를 넓혀간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3년 첫해에 ‘미인’들은 유명 문구를 인용한 뒤 어울리는 배경을 그리는 방식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토마스 바샵의 소설 『파블로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 빅토르 위고의 명언 등을 적은 작품이 이때 만들어졌다. 강민호 씨(국어국문학과·12)는 “농협이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외벽 포스터 작업을 예시로 들어 비슷한 것을 제안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에 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덧 작업에 능숙해진 그들은 “우리의 것을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고 이듬해부터 유명 문구 대신 그들만의 아이디어로 포스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농협의 감성 마케팅이었던 프로젝트가 학생들의 독창적인 예술 활동으로 성장한 것이다. 작년에 만들어진 그들의 작품에는 계절마다 변화하는 관악의 분위기와 그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새 학기에는 ‘꽃다운 새내기여..안녕!’이라는 문구를 걸었다. 이 문구는 갓 입학한 신입생에게는 ‘Hello’인 동시에 이제는 선배가 된 지난날의 신입생에게는 ‘Bye’를 의미한다. 문구 뒤에는 그 둘을 모두 축복하는 화관을 그려 넣었다. 같은 해 여름에는 시계 모양의 여름 방학 계획표를 포스터로 내걸었다. 계획표에는 ‘창가에서 먼지 관찰’ ‘밤 산책’ 등이 적혔다. 방학을 방학답게 누려보자는 의미였다. 디자인에는 크레파스로 비뚤비뚤하게 포스터를 그리는 방법을 활용해 여유로웠던 초등학생 시절을 환기하는 효과를 냈다.

작업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미술학도가, 문구는 인문학도가 담당하지만 그들은 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다. 송미라 씨(국어국문학과·13)는 “콘셉트, 문구, 글씨체, 배경, 그림 모양 등에 대해 세심하게 논의한다”며 “하나의 사물을 가지고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포스터를 보면서도 누가 만드는지 신경 쓰지 않거나 알지 못한다. 미인들은 이에 대해 “오히려 즐겁다”고 말했다. 강준휘 씨는 “착한 일을 하는 괴도 루팡이 된 느낌”이라며 “분명 이름을 적어놨는데도 사람들이 아리송해하는 것이 묘하게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제 그들은 농협 외벽을 넘어 관악 전반을 꾸미는 것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송미라 씨는 “농협을 출발점으로 학교 곳곳에 미인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소망을 말했다. 비록 무산됐지만 이들은 최근 교내 게시판의 번잡함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안을 총학생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걸려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차량 접근 금지 체인을 야광으로 칠하거나, 교내 쓰레기통을 좀 더 보기 좋게 꾸미는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23일(월)부터는 농협에서 그동안의 작품이 그려진 엽서가 무료로 배포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악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미인들을 위해 엽서를 손에 들고 활짝 웃어주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