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빛을 만들고 빛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은 빛을 만들고 빛은 사람을 만든다
  • 대학신문
  • 승인 2015.03.22 05: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세계 빛과 광기술의 해 ② 디스플레이 기술의 발전

툭- 휴대폰을 손목에 감으려다 떨어뜨렸다. 예전 같았으면 액정이 깨지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식은땀을 한 줄기 흘렸을 것이다. 멀쩡한 휴대폰의 먼지를 털어 손목에 매고 학교로 가는 신림선에 오른다. 정문까지는 8분. 에이핑크의 뮤직비디오를 두 편 보면 딱 좋을 시간이다. 화면을크게 펼쳐서 재생. 3D로 전달되는 생생한 그녀들의 모습은 피곤한 월요일 아침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아무리 어떤 이론이 몇백주년이 됐더라도 최근 광기술의 빛나는 진보가 없었다면 2015년이 ‘세계 빛과 광기술의 해’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 조명부터 광통신, 의료기기 분야까지 광기술은 여러 영역에서 발전 중이며 그중 가장 친숙한 것은 단연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과제를 컴퓨터로 작성하고 영화관에서 3D 영화를 보는 평범한 일상에 디스플레이 기술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LCD 전성기가 오기까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책상의 주인공은 CRT(Cathod-Ray Tube) 모니터였다. 19세기에 발명된 CRT는 전자가 부딪히면 빛을 내는 형광물질을 이용해 화면을 표시한다. 두꺼운 모니터의 뒷면에서 화면 쪽으로 전자를 쏘면 화면의 형광물질이 이에 반응하는 원리다. 하지만 형광물질이 빛을 내는 시간은 매우 짧아 화면은 계속 깜빡이며 이로 인해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크고 무거우며 피로도 많이 주는 CRT가 LCD(Liquid Crystal Display)에 비교적 최근까지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것은 반응속도 문제가 주요했다. 당시 LCD는 신호가 입력돼도 화면이 그에 맞게 변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빠른 영상을 재생할 땐 화면에 잔상이 남아 문제가 됐다.

이 문제는 LCD의 구조에 기인한다. LCD는 후면에 조명을 두고 전면에 액정(liquid crystal)을 둔 구조로, 액정이 전기신호에 따라 빛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식으로 화면을 표시한다. 전기장의 변화에 맞춰 액정 분자가 회전하며 액정을 통과하는 빛을 변조하는데, 이 회전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응속도가 느린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들어 반응속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LCD는 서서히 책상 위에서 CRT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평판 디스플레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재 LCD는 스마트폰, TV, 모니터 등 디스플레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흥 강자 OLED의 등장

 

하지만 2010년대 들어 LCD의 아성에 도전할 디스플레이,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가 세를 넓히기 시작했다. OLED는 얇은 유기(Organic) 반도체를 이용해 만든 LED다. LED에 사용되는 반도체 음극에서 출발한 전자는 양극으로 이동하는데, 반도체의 양극에는 전자를 포획할 수 있는 구멍이 존재한다. 전자가 이 구멍에 빠지게 되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해 LED를 빛나게 한다.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OLED는 LCD에 비해 얇고 반응속도도 빠르다는 점 때문에 LCD를 대체할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고 있다. LCD는 광원에서 나온 빛을 화면의 액정이 조절하는 방식이기에 구조가 복잡하다. 이에 반해 OLED는 유기 반도체가 있는 화면이 곧 광원이 돼 ‘자체 발광’하는 간단한 구조다. OLED를 LCD에 비해 얇게 만들 수 있는 이유다. 액정이 회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LCD에 비해 반응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다. OLED는 제작 공정 또한 간편하다. 유기 반도체를 액체로 만든 뒤, 이를 잉크젯 프린터로 원하는 표면에 회로를 인쇄하면 OLED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OLED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이창희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LCD TV 시장은 매년 3~5% 성장하는 반면 OLED는 60% 가량 성장 중이다”라고 밝혔다.

LCD와 OLED가 현재 디스플레이의 주인공이라면 가까운 미래 디스플레이의 주인공으로 점쳐지는 기술은 3D 디스플레이와 플렉시블(flexible) 디스플레이다. 오늘의 OLED 발전은 이들 기술이 뿌리내릴 수 있게 했다.

 

2D가 3D를 품다

 

다들 한번쯤은 영화관에서 안경을 착용하고 3D 영화를 봤을 정도로 3D 디스플레이는 이제 낯설지 않은 기술이다. 3D 디스플레이는 뇌를 착각시켜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은 위치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영상을 받아들이는데, 뇌는 이들 두 가지 정보를 조합해 물체의 입체감을 인지한다. 3D 디스플레이는 이를 이용해 두 눈에 다른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가상의 입체감을 전달한다. 일부 3D TV는 두 눈에 번갈아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3D를 구현하는데 이에 필요한 것이 OLED의 빠른 반응속도다. 두 눈에 번갈아 이미지를 제공하려면 이미지의 전환 속도가 빨라야 하는데 LCD의 느린 반응속도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안경 없이도 구현할 수 있는 3D 디스플레이는 빛의 경로를 조작함으로써 가능하다. 현재 몇몇 스마트폰과 게임기가 탑재한 무안경식 3D 디스플레이는 화면 앞에 적절히 차단막을 설치해, 특정 화소에서 낸 빛이 한쪽 눈에만 들어가게 하는 식이다. 차단막 대신 화면의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빛의 경로를 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무안경식 3D 디스플레이는 관찰 위치가 제한적이라는 등 한계점이 존재한다. 이병호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선 매우 고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3D 디스플레이가 이런 기술적 제약을 해결하게 되면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며 기술이 오락뿐 아니라 산업과 의료 분야에까지 적용될 것이라 설명했다.

 

화면을 접어서 다닌다

▲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꿈의 디스플레이라 일컬어지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역시 OLED의 발전을 바탕으로 가능해졌다. 기존의 LCD는 휠 경우 액정이 변형돼 이미지 왜곡이 일어날뿐더러 두께도 두꺼워 유연성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OLED는 부드러운 표면에 인쇄를 통해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두께도 얇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화면이 휜 TV나 스마트폰 등 현재 상용화된 부분은 제한적이나 그 범위는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홍용택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1~2년 내에 접을 수 있는(foldable) 스마트폰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외 많은 디스플레이 업체가 접을 수도, 말 수도 있는(rollable)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화면의 접히는 부분에 대한 안정성, 유리가 아닌 플라스틱 기판의 연약함 등의 문제들 때문에 상용화까진 이르지 못했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지난 주엔 1000회 이상 접거나 구겨도 성능이 유지되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국내 연구진이 개발해 상용화를 앞당기기도 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기기는 더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하며, 몰입감 있는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 휘어지는 기기에는 새로운 UI(User Interface)를 적용할 수도 있다. 홍 교수는 전자책의 예를 들며 “기존에는 터치로 페이지를 넘겼다면 이제는 화면을 굽힘으로써 페이지를 넘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형 디스플레이 실현에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유용하다. 운반과 제작이 어려웠던 대형 디스플레이의 문제점은 간단한 인쇄로 만들 수 있고 접을 수 있는 화면으로 해결된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깨지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며 이는 굳이 휠 필요가 없는 화면에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적용하는 이유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광기술의 미래를 꿈꾸다

 

이런 디스플레이 기술의 파급효과는 단지 화면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창희 교수는 “OLED는 유기 반도체 분야에서 처음으로 제품화된 부분”이라며 OLED에서 파생되는 유기 반도체 기술이 다른 광기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설명했다.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태양전지다. 전류를 흘려 빛을 내는 OLED의 발광 과정을 거꾸로 하면 태양전지의 발전 과정이 된다. 즉 OLED에 약간의 부품 변화만 주면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으며, 간편하게 인쇄로 제작할 수 있고 휠 수도 있다는 OLED의 장점을 적용할 수 있다. 이창희 교수는 “유기 반도체를 이용해 광센서도 만들 수 있다”며 “이는 사물인터넷 시대의 기반이 되는 센서 기술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 말했다.

이렇게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광기술이 빚어낼 미래는 눈부시지만, 이에 다다르기까지는 기술력뿐 아니라 광산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국가의 기술분류 및 산업분류에조차 광산업의 독립적인 위치가 없어 R&D를 비롯한 정책 수립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정책 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등 광학기술은 대개 전자제품의 일부로 포함돼 독립적인 기술로의 인지도 또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광기술의 고부가가치를 인식하고 지난해 집적광자소재제조연구소를 설립해 광산업에 2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등 선진국이 발 벗고 광산업에 뛰어드는 것과 대비된다. UN과 우리 국회를 비롯한 많은 기구는 빛의 해를 선포하며 저마다 빛과 광기술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말 그대로 ‘빛과 소금’ 같은 존재인 빛과 광기술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기다.

 

사진 유승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