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봄
대학의 봄
  • 대학신문
  • 승인 2015.03.22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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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일모 교수
자유전공학부

봄이 속삭인다. 연구실 너머로 길섶에 홍매가 붉은 망울을 수줍게 내밀고 있다. 개나리 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순이 돋아나고 있다. 새 옷 입은 신입생들이 살포시 웃음 지으며 시린 손끝을 감추며 삼월의 교정을 활보하고 있다. 동아리는 회원 모집에 분주하고 강의실은 무구한 눈망울로 활기가 찬다. 대학의 봄은 이렇게 서투르게 반복된다.

봄날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긴장의 시절이다. 대학의 봄맞이가 새로운 얼굴과 만나는 즐거움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 대학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대학이 무엇인지 그 동안 묵수해 온 교육의 이념과 원칙을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대학의 위기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이 공공연히 외쳐지는 오늘날 대학이 어떻게 변신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기도 하다. 학문의 공동체 속에서 이러한 고민은 교수와 학생, 학교당국 모두에게 요청된다.

대학이 무엇이며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취업 관문이 좁아진 현실 속에서 이러한 물음은 궁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학교로 전락하며 휘청거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깝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애쓰던 정성이 무색해지리만큼 갓 들어온 학생들 사이에 취업이나 학점 관리 등이 먼저 회자될까 두렵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대학은 설립 이념을 점검하고 운영의 원칙을 정립해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칼 야스퍼스는 대학이 보편적 이념에 따라 대학 밖의 강제로부터 간섭 받지 않은 독자적 지위를 확보해야 하며,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재창조해내는 능력과 사실의 핵심을 파악하고 물음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대학의 이념을 밝혔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은 서양의 제도를 본떠 서둘러 근대적 형식을 갖춘 대학을 설립했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대학 자체의 이념보다 국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 속에서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요구가 앞설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인 향교와 서원에서는 왜 가르치고 왜 배우는지를 표방하는 현판을 입구에 달아놓고 학교에 올 때마다 모두 한 번씩 음미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까닭과 학생이 공부하는 까닭이 인륜의 실현에 있음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순서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온 힘으로 폭 넓게 공부하고(博學), 자세히 따져가며 물어보고(審問), 답을 찾을 때까지 진지하게 사색하고(愼思), 명확하게 파악될 때까지 사리를 변별하는(明辨) 단계적 탐구 방법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러한 지적 연마가 개인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독행(篤行)의 방법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사태를 처리하고, 타인을 대하는 요령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올바른 사고와 실천적 지혜를 갖추고 열린 마음으로 봉사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등 몇 가지 교육 이념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학 홈페이지에서도 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학문과 예술의 창달’ ‘세계문화의 선도’ 등은 추상적 구호로서 당위성을 천명하는 정도다. 대학의 이념이 구성원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개되어야, 대학의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교육이념에 합치되는지 공론화될 수 있다. 아울러 기존의 교육이념이 실효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대학의 구성원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보다 구체적으로 재정립돼야 할 것이다.

대학의 정책은 교육이념의 바탕 위에서 결정돼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한 교육 단위로 이뤄진 종합대학이 대학 안팎으로부터 분출되는 압력에 굴하지 않는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고, 학생들은 교육이념의 보편성과 학교 정책의 공공성을 신뢰하면서 현실의 불안을 이겨내고 진리 탐구의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개나리 진달래 만발하는 교정은 화사하겠지만 그저 반복되는 대학의 봄은 언제나 잔인하다.

양일모 교수(자유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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