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정 강사
독어독문학과

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지난 겨울방학을 보냈다. 도시의 세련된 아름다움과 고풍스러운 우아함에서 2천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도 비엔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상당히 친절하였고 일 처리에서 매우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나의 비엔나에서의 생활은 처음부터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러한 만족감은 그곳 사람들과 독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오스트리아는 독일,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벨기에 등과 더불어 독일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나라이다. 물론 오스트리아 독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독일 독어와 언어의 전반적 층위에서 상이함을 보인다. 독어학 전공자로서 나는 독어에는 독일 내의 방언 외에도 독어를 사용하는 국가마다 고유한 변이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이성이 비엔나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빈번히 소통의 문제를 야기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스트리아 독어라는 ‘새로운 외국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오스트리아 독어 사전을 구입하고 일상 어휘들과 상용어구들을 수집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감자’를 건강에 좋은 사과에 빗대어 ‘땅속의 사과’로 부른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도 독일에서처럼 ‘Guten Appetit!’(많이 드세요.)나 ‘Lassen Sie es sich schmecken!’(맛있게 드세요.)라고 하지 않고, 비교적 형식을 덜 차리면서 짧고 간단하게 ‘Mahlzeit!’(식사시간)이라고 한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는 명사에 축소형어미 -erl이나 -l을 자주 붙여 사용하는데, 이는 실제로 대상의 작음을 나타내기 보다는 그 대상에 대한 화자의 정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스트리아 독어에 오스트리아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태도가 스며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사고나 감정을 글이나 말로 전달하는 체계로서 언어는 세계에 대한 집단의 공유된 체험을 저장하고 있으며, 개개의 언어표현에는 체험의 방식, 즉 사건 혹은 사물의 어느 특정 부분에 관심의 초점이 부여되었는지가 나타난다. 따라서 ‘새로운 언어’ 혹은 외국어 학습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지각하게 만듦으로써 사물이나 사태를 기존과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새로운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구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외국어 학습과 창의성은 연관성을 가진다. 창의성이란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재결합해 내는 정신적 과정이며 전통적인 사고 유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사태에 대한 관습화되고 고정된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교육문화부의 위탁으로 2009년 ‘다중언어의 창의성 향상에 관한 연구’라는 과제를 수행한 ‘유럽 다중언어연구팀’은 다수의 언어에 대한 지식이 사물과 세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사고 유연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서 창의적 사고를 향상시킨다는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 바이에른주의 문화부 장관인 루드비히 슈팬레 역시 청소년 외국어 경시대회 개회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 세계는 활짝 열려 있으며, 다수의 언어를 습득한 사람에게 세상은 그의 발아래에 놓여 있다.” 다수의 외국어 습득은 세계와 소통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의 발로가 될 수 있어서, 그 지식들을 합한 총합 이상의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외국어 학습은 모국어에 대해서도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여 모국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비록 외국어 학습이 인내와 끈기 그리고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적 차원에서도 미래의 풍요로운 결실을 약속하는 투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정수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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