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스며든 거리에서 오래된 흔적을 찾다
젊음이 스며든 거리에서 오래된 흔적을 찾다
  • 정서영 기자
  • 승인 2015.03.22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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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거리에 가다 ① 서울대입구역 샤로수길

서울대 주변엔 유별난 거리가 많다. 고시생을 비롯해 서울대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신림동 고시촌과 새로운 만남의 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샤로수길은 서울대 구성원들과 삶을 함께 나누고 있는 터전이다. 낙성대 인헌시장과 행운동 벽화거리처럼 지역민의 참여로 새로운 명소로 거듭난 거리도 있다. 『대학신문』은 서울대 주변의 거리들이 과거엔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했는지, 현재 이 거리는 서울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① 서울대입구역 샤로수길 ② 낙성대 인헌시장 ③ 신림동 고시촌 ④ 행운동 벽화거리

 

▲ 밤이 되면 거리에 하나 둘씩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다. '가로수'는 없지만 상점의 조명이 대신 길가를 환히 비추고 있다.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입학과 개강으로 분주한 3월의 밤, 셔틀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이 서울대입구역의 한 골목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 때 만남의 광장이었던 카페 ‘저스틴’은 없어졌지만 바로 옆 골목을 찾는 사람은 부쩍 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옹기종기 모여 막걸리를 마시는 곳, 야근을 마친 직장인이 사케를 마시며 하루의 고단함을 날리는 곳, 어두운 조명 아래 맥주를 놓고 평소 마음에 두던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이곳은 요즘 장안의 화제인 ‘샤로수길’이다.

샤로수길은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에 위치한 ‘엔제리너스’와 ‘올리브영’ 사이에서 출발해 낙성대시장 입구까지 약 300m 가량 이어진다. 한때는 평범한 주택가의 동네골목이던 이곳에 작지만 특색 있는 가게들이 인기를 끌면서 거리는 2년 전부터 샤로수길로 불리게 됐다.
 

고요하던 골목에 서울대생의 입김이 닿다

5년 전만 해도 이곳은 주택과 원룸이 밀집한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골목이었다. 직장인을 위한 밥집과 포차, 중년 남성이 주로 찾는 이발소가 있었으며 동네 아주머니가 다니는 미용실, 옷 가게를 비롯해 세탁소, 열쇠 가게 등이 널려있었다. 서울대입구역 주변을 통틀어도 대학생들이 다닐 만한 술집은 대여섯 개 정도밖에 없던 시기였다. 그해 2월 조용했던 골목에 조그마한 수제 햄버거 가게 ‘저니’(Journey)가 입점했다. 저니 김학진 대표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지만 월세가 저렴해서 조금만 밖으로 홍보하면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작은 가게의 명성은 서울대 미식동아리 ‘스누미’의 입소문을 타고 구성원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 저니의 한 쪽 벽면에는 가게를 들렀다 간 손님들의 메모가 세계지도 위에 차곡차곡 붙어있다.

사진: 정서영 기자 infinity91@snu.kr

저니의 등장으로부터 서너 달 후, ‘막걸리카페 잡’과 ‘랄라 펍’이 생겼다. 잡의 김호연 대표는 서울대 출신 친구의 조언을 듣고, 랄라 펍의 여은우 대표는 그 근처에 몇 년 전부터 살고 있었단 이유로 아무것도 없던 거리에 가게를 차렸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두 술집엔 서울대 학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 간판이 없다는 착각을 주는 랄라 펍은 진가를 아는 단골들이 주로 찾는 수입맥주점이다. 가게의 목재가구는 전부 여은우 대표가 사포질을 해서 제작했다. 빈티지한 분위기가 옆에 있는 양복점과 제법 어울린다.

사진: 정서영 기자 infinity91@snu.kr

이후 이 거리에 여러 가게가 문을 열고 닫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특정 가게가 아닌 골목 자체를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본격적으로 거리가 활성화된 시기는 밥집이 생겨난 이후다. 2012년 말 남미음식점 ‘수다메리까’, 비스트로 ‘모힝’이 새로 생기고 2013년에는 교내에 있던 ‘도스 타코스’가 이 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거리 초입에 단란주점과 성인용 노래방, 숙박업소가 포진한 샤로수길에 젊은 사람들이 찾아갈 이유가 생긴 것이다. 당시 카페 저스틴이 서울대입구역 동네에서 가장 손님이 많았던 만큼 저스틴을 통한 거리로의 유입도 컸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샤로수길’ ‘낙성대 가로수길’ ‘봉로수길’ ‘저스틴 골목’ 등의 이름이 오갔다. 녹두거리가 몰락해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으로 몰린 것도 영향을 끼쳤다. 샤로수길 부근에 2년8개월간 거주 중인 유주영 씨(독어교육과·08)는 “이전보다 단체 모임만큼이나 소수가 모이는 모임이 잦아졌는데 샤로수길의 한적한 분위기는 그에 안성맞춤이었다”고 진단했다.
 

젊고 감각적인 가게들, 오래된 거리와 공존하다

샤로수길의 상점은 대개 10평이 약간 넘는 작은 규모지만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자본이 많지 않은 30대의 사장들은 월세가 싼 골목가로 모여들었고, 자신만의 젊은 감각을 내세워 공간을 꾸몄다. 긴 남미 여행 끝에 한국에 남미음식점을 차린 수다메리까의 윤인섭 대표는 “남미의 식당을 모티브로 삼아 가게를 꾸몄다”고 설명했다. 수다메리까의 노란 벽면에는 남아메리카의 지도와 함께 윤인섭 씨가 직접 찍은 사진과, 남미에서 사온 엽서들이 붙어있다. 수제 햄버거와 맥주를 파는 저니는 이름에 걸맞게 여행자들이 다녀갈 것 같은 이국적 분위기를 풍긴다. 손님들은 벽돌로 만든 벽에 분필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데 그 기록들이 여행지에 온 것 같은 운치를 더한다.

몇 개의 밥집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샤로수길에는 술집이 많다. 현재 일본식 이자까야, 수입 맥주 전문점, 감자튀김과 크림생맥주를 파는 살롱식 주점까지 젊은 층을 유인하는 유행 주점이 샤로수길을 점령하고 있다. 성공을 거둔 상점이 근처에 비슷한 분위기의 가게를 차리는 ‘동네형 프랜차이즈’가 있는 것도 이 거리의 특징이다. 막걸리카페 잡은 근방에 ‘와인창고 잡’을 열었고 연이어 두 곳의 가게를 더 오픈할 예정이다.

샤로수길의 주요 손님은 서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이다. 젊은 사장들은 자신이 공들인 가게를 알아봐 주는 젊은 단골들이 반갑다. 술집이 많은 이 거리에서 가게 주인과 손님은 술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돈독해진다. 랄라 펍 여은우 대표는 벽에 붙은 맥주 족보 그림을 가리키며 “모든 맥주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와 발효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바에 앉는 손님들에게 특이한 향이 나는 맥주를 권하며, 맥주가 그 향을 갖게 된 일화를 설명한다.

젊은 가게와 오래된 지역 상권이 어우러진 거리라는 점은 이 거리만의 독특한 정체성이다. 오래된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감성은 향수를 자극한다. 실제로 거리의 분위기에 걸맞게 빈티지풍의 가게도 흔히 볼 수 있다. 졸업 후에도 샤로수길을 찾는다는 김현진 씨(국어국문학과·11년 졸업)는 “평범한 뒷골목 같으면서도 트랜디한 요소가 묻어나는 것이 샤로수길만의 특징”이라 밝혔다.

거리의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이곳이 낙성대동이 아닌 봉천7동이던 시절부터 자리하던 양복점, 화장품 가게 등 동네표 상점들이 있다. 연령대가 높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주로 드나드는 이 상점의 상인들은 샤로수길이라는 명칭을 생소하게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젊은이들이 많아진 이 거리의 변화를 인식하는 눈치다. 20년 가까이 ‘정육점 식당’을 운영해온 권민석 씨는 “동네 거주하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지만 요샌 국문과 학생들이 우리 식당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장사를 한 지 14년째라는 ‘순이네 밥상’의 강순이 씨는 “예전에는 직장인들이 주로 왔다면, 요샌 밤에 젊은 학생들이 밥을 먹으러 온다”고 밝혔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인 거리가 지금의 색깔을 간직하려면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불리던 샤로수길이란 이름이 최근에는 골목 입구에 푯말까지 세워질 정도로 모두가 아는 공식 명칭이 됐다. 블로그와 신문에도 이 거리의 독특한 맛집을 소개하는 글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멀리서 찾아오는 외부인의 비율이 늘었다. 막걸리카페 잡의 김호연 대표는 “따로 홍보를 한 적도 없는데 주말에는 근처 학생들보다 다른 데서 오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언급했다.

몇몇 상인들은 거리를 찾는 사람이 느는 것은 반기면서도 샤로수길이 지나치게 주목받는 것은 우려했다. 샤로수길은 300m 가량에 불과하고 각 가게의 규모도 작기 때문에 외부인이 몰려도 이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스트로 모힝은 새벽 1시까지 파스타를 먹을 수 있다는 심야식당 컨셉으로 인기를 얻어 외부인도 자주 찾아 저녁 시간대엔 거의 만석이다. 모힝의 박태균 대표는 “방송 제의가 들어왔지만 손님이 지나치게 많아져 정작 자주 찾는 단골 손님들에게 불편을 드리는 일이 없도록 고사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샤로수길이 제2의 경리단길이 되진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태원 경리단길은 ‘장진우 식당’ 등 특색을 지닌 식당들로 입소문이 났으나, 대중 매체에 소개된 이후 얻은 지나친 유명세 때문에 역으로 열풍이 사그라졌다. 서울연구원 라도삼 연구원은 “길이 유명해지면 업소들끼리 경쟁해서 단가가 내려가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상점 위주로 교체된다”며 “거리의 수명이 다 된 5년 후쯤엔 권리금을 받고 다들 나가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관악구청이 푯말을 내건 것이 거리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샤로수길은 불모지였던 거리에 문화적 감성이 생겨난 것을 기리던 애칭일 뿐 푯말에 새길 공식 이름으로 삼기엔 패러디성이 짙다는 것이다. 상인 A씨는 “용어를 붙여 이 거리를 치켜세워주는 것에는 감사하지만 그걸 길목에 써놓으니 그 이름으로 부르던 사람들은 정작 어색해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관악구에서 지역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세상과 연애하기’의 조은호 씨는 지역활동화 사업으로 간판을 세울 계획은 했지만 실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직접 나서기보다 주민들이 직접 자기가 사는 동네에 애정을 갖고 홍보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꽃핀 봉천동의 한 골목은 이제 화려한 이름이 생겼고, 늘어나는 손님들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샤로수길이 지금의 매력을 잃지 않은 채 오래도록 남기 위해서는 관련된 모든 구성원의 애정 어린 의견이 반영돼야 할 것이다. 학생을 비롯한 손님, 상인, 그리고 거주민 모두가 애착을 가진 거리가 될 수 있기를. 잠깐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름의 골목 문화를 쌓아나갈 샤로수길의 내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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