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현실을 비추는 순수의 별을 그리다
소년, 현실을 비추는 순수의 별을 그리다
  • 이승엽 기자
  • 승인 2015.03.22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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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황순원 탄생 100주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별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아직껏 사람의 손과 발이 가 닿지 않은 광야에 / 우쭉우쭉 이름 없는 잡초가 돋아난다 …(중략)… 암초에 부딪치는 격류의 기세를 본받아 / 잡초가 돋아오른다(「잡초」)

 

1915년 3월 26일, 평양 대동군에서 『소나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순수’와 ‘절제’의 작가, 만강(晩岡) 황순원이 태어났다. 그는 평생에 걸쳐 언어의 조탁과 순수의 서정성을 추구해온 순백의 도자기 같은 작가였다. 후학들로부터 ‘작가 정신의 사표’(師表)라 불렸던 그의 작품세계와는 달리 어린 시절 그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가 다섯살이던 1919년, 부친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기미독립운동의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수감되자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밭을 일궈 어렵게 가정을 책임지게 됐다. 이 유년시절의 기억은 황순원의 내면에 깊게 새겨져 그의 작품세계에 내재된 문제의식의 발단이 된다. 민족을 위해 싸우다 부재하게 된 아버지와 강인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평생에 걸쳐 그의 전(全)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미지가 된다.

숭실중학에 재학 중이던 황순원은 16세의 나이에 시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황순원을 지배하던 고민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 장래는 무엇이며 나의 나갈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거칠지만 소년다운 직설적 문체로「나의 꿈」, 「강한 여성」등을 통해 시련의 시대를 극복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특히「잡초」에서는 자신의 다짐을, 한 여름 풀밭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잡초에 비유하면서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현실과의 대결의지로 가득 찼던 황순원은 1933년 평양 숭의여학교 문예반장이었던 양정길을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그는 어머니와 닮은, 강한 모성성을 지닌 양정길을 반려자로 맞이해 그의 작품세계에 강한 동지적 힘을 부여받았다.

 

이 아카시아 울타리 한 끝에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하나 붙어 있었다. 오작녀다. 거기서 훈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카인의 후예』)

 

장현숙 교수(가천대 국문학과)는 황순원 부부가 둘째 아들 부부와 함께 회현동에 살았을 무렵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교수는 “집에 연탄 연기가 새어나오는 사고가 있던 날, 양정길 여사는 자신의 아들보다 며느리를 먼저 챙겼다”며 “손자에게는 어머니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모성성이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황순원의 어머니와 부인이 보여줬던 강한 모성성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등장하는데, 어머니와 강인한 여성 인물의 표상으로 나타난다.『별』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로,『카인의 후예』에서는 토지개혁으로 몰락한 지주인 훈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오작녀 같은 인물로 형상화됐다. 특히『별』에서 어머니로 표상되는 하늘의 별은, 못생기고 억척스런 누이가 죽어서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의 절대성을 함축하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의 저항적 기질을 물려받은 작가는 일제 말기 식민지 탄압이 극도에 달해 모국어로 글을 쓸 수 없고 또 읽어 줄 사람도 발표할 곳도 없던 때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말로 소설을 집필했다. 또 이를 나무로 된 석유상자에 몰래 보관하며 시대의 억압을 견뎌냈다.

 

송영감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아주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터져나간 자신의 독 대신이라도 하려는 것처럼.(『독 짓는 늙은이』)

 

이 때 쓴『독 짓는 늙은이』『목넘이 마을의 개』 등은 해방 이후에 빛을 보게 됐으며, 특히『독 짓는 늙은이』에서 작가는 정신을 잃으면서까지 독가마를 지키는 송영감의 모습을 통해 장인정신을 넘어서는 숭고한 인간의 의지를 표현했다. 또한『이리도』에서는 전쟁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며 일본의 폭력적 착취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곰녀는 마음 먹는 것이었다. 한 개비의 장작이나마 다 소중히 나르자. 자기가 몇 번을 위아래 거리를 오르내리는 한이 있더라도.(『별과 같이 살다』)

 

이처럼 황순원의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상징적 존재는 해방 후 그의 첫 장편소설인『별과 같이 살다』에 이르러 한 데 모인다. 이 작품에서 황순원은 평생토록 추구했던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모성을 통한 생명 지향,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민족 구원의 가능성을 주인공 곰녀와 그녀의 삶을 표상하는 ‘별’을 통해 극대화한다.

곰녀는 소작농의 딸로 광부로 일본에 간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탐욕스런 지주에게 겁탈을 당한 뒤, 유곽을 전전하며 창녀로 살게 되는 비극적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서 곰녀는 희망을 되찾고 해방된 고국으로 돌아오는 피난민들을 위해 봉사단체인 민호단에 투신할 것을 결심한다. 최동호 명예교수(고려대 국문과)는 “곰녀는 단군신화의 웅녀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인물”이라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시련과 고통을 가장 하층민인 여성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순수한 ‘황순원’의 방식대로 현실을 쓰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모든 예술은 시의 상태를 동경하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시적 근원’에 도달한다.(72년『문학사상』 2호 인터뷰)

낭만주의를 거치지 않은 리얼리즘을 나는 용인하지 않는다.(『말과 삶과 자유』)

 

황순원은 작품활동 후반부인 60년대 이후에도 민족과 시대에 대한 투철한 현실인식과 신념을 토대로 특유의 서정성을 부각해 시대를 다루는 작품활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그만의 현실참여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비평가들의 비판이 평생 그를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순수와 참여로나뉘는 이분법적 비평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한 그가 1960년에 발표한『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평론가 이어령으로부터 “험난한 시대와 무관하게 내부 세계만을 지닌 주인공이 등장한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했던 1930년대는 실로 여러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서구 문예사조가 뒤섞인 혼미한 시대였다. 당시 가혹한 식민정책으로 인한 궁핍 현상에 저항해 한국적 시형을 개발한 김소월, 한용운이 있었고, 미래파, 모더니즘에 호기심을 가진 이상, 그리고 항일 주체의식을 표출한 윤동주까지 다양한 모습의 문학이 존재했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황순원이 택한 길은 그가 균형감 있다고 생각한, 현실을 잊지 않은 순수소설이었다. 그는『곡예사』에선 6·25 전란으로 인한 피난살이의 설움과 고생의 현실을 묘사했고,『카인의 후예』에선 지주의 아들이었던 황순원 스스로가 실제로 월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인 토지개혁에 대한 분쟁을 토속적 서정성으로 그렸다. 이처럼 그는 자전적 경험을 시적 서정성에 녹이며 현실 문제를 더 세밀하게 다뤘다. 즉 황순원은 현실을 떠난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낭만주의적 방식을 통해 민족의 미래와 인간의 존재를 고민한 현실주의자였다.

근래에 이러한 그의 고민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들도 감지된다. 황순원의 후기 장편소설을 주체로 서기 위한 내적 탐색의 드라마로 보는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인간관계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중략)… 서로 부딪칠 수 있는 데까지 부딪쳐본 다음에 쳐리돼야만 할 문제가 아닌가. 기룡을 만나야 한다. (『일월』)

 

그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일월』에서는 고독과 외로움을 겪으며 자아를 찾으려는 주인공 인철이 등장한다. 백정의 후손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철은 신분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만적 세계에 좌절한다.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서 그는 어머니 같이 편안하고 너그러운 다혜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사촌 형 기룡을 만나면서 더 성숙한 주체로 진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잔존하는 전근대적 신분제도나 전쟁의 부조리한 폭력성은 작품 속에서 외부 현실의 문제로 다뤄지기 보다는 인철의 자아찾기 속에서 극복해야할 내면적 장애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인철은 타자와의 관계맺기를 통해 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 현실의 문제는서사성이 아닌 내향적 서정성으로 다뤄진다. 이러한 해석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타자를 통한 문제 극복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처럼 해석의 양면성과 다층성을 지닌 황순원 문학을 단순히 서정성과 역사성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비평하는 것은 그의 문학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황순원 문학연구는 복합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려는 노력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그러나 소녀는 “하나도 버리지 마라.”(『소나기』)

 

황순원은 그의 첫 작품집인『방가』의 서문에서 ‘이 시집은 나의 세상을 향한 첫 부르짖음이다. 나는 이 부르짖음을 보다 더 크게, 힘차게, 또한 깊게 울리게 할 앞날을 가져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 바람대로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그의 부르짖음을 곳곳에 전했다. 이 부르짖음은 열려있으며, 생명이자 어머니이며, 민족이자 타자인 동시에 별이기도 하다.

2015년 우리에게『소나기』 속 한 장면처럼 여전히 앳된 소년의 얼굴로 한아름의 꽃묶음을 건네주는 황순원. 그리고 그 꽃묶음인 그의 문학은 여전히 싱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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