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청년을 말하다 ② 청년의 짐 덜어주지 못하는 청년정책

지난 첫 번째 연재에선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을 살펴봤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청년실업률에 30세 미만 가구주 한 사람당 짊어져야 하는 빚은 1,500만원을 넘어섰다. 안정된 직장이나 안락한 보금자리는 이제 청년들에게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에 선거 때마다 청년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약속이 잇따른다. 지난 18대 대선에서도 교육, 복지, 일자리 부문에서 청년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선거공약부터 핵심 국정과제까지 야심차게 등장한 청년정책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청년정책에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제도적 통로 또한 미흡하다.

 

청년 없는 청년정책

청년정책이라 불리는 것들은 청년들의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정책 수요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 대표적으로 2013년 정부가 내놓은 대학생 임대주택사업과 행복주택사업은 청년층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학생들의 주거 현실에 대한 고민이 모자랐다. 정부는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 50% 이하 가구의 대학생에게 소형 임대주택을 빌려주는 대학생 임대주택사업과 14만 가구의 임대주택 중 80%를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층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행복주택사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두 사업 모두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 청년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주거 유형은 제공하지 못했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최은별 교육국장은 “행복주택사업에서 공급하는 주택이 아파트형이다보니 자취를 목적으로 집을 구하는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맞지 않는다”며 정책이 세심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노동정책 역시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의 직무능력평가제를 추진했다.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직무능력을 갖춘 사람이 학벌 때문에 취업이나 승진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이미 각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시행 중인 직무능력평가제와 기능이 중복돼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청년들의 고용을 촉진하려는 정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고용의 질을 높이려는 정책은 찾기 어렵다. 정부는 청년들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취업을 지원하고 직업능력 개발센터를 설립했다. 하지만 턱없이 낮은 임금이나 고용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나쁜 일자리’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않고 있다. 법령에 어긋나는 노동 조건을 강요하는 ‘블랙기업’이나 열정이 있으니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도 괜찮지 않느냐는 ‘열정페이’ 모두 열악한 청년들의 노동 현실을 반영한 신조어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근로 감독에서 적발된 사업장 중 80%가 단순 시정 조치를 받는 데 그치는 등 정부의 대처는 실망스럽다.

 

청년 목소리를 반영할 통로 미흡해

◇외면당하는 청년들의 목소리=청년정책이 청년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일단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대한 청년층의 압박이 다른 연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정치권은 굳이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를 못 느낀다. 장년층에 비해 낮은 청년층의 투표율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지난 몇 년간 이뤄졌던 총・대선에서 20대와 장년층인 60대의 투표율은 큰 차이를 보였다. 양자의 차이는 17대 대선에서 29%P, 18대 총선에서 37%P, 19대 총선에서 27%P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투표율 격차는 12%P로 좁혀졌지만 여전히 20대의 투표율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낮다.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청년들은 노인과 같은 다른 계층에 비해 정치에 대한 상대적인 관심이나 참여도가 낮기 때문에 정책 결정과정에서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어렵다”고 전했다.

결국 한정된 예산으로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와 국회는 투표율이 높은 계층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5년 예산안에서 노인복지예산은 사회복지 총지출의 20.9%나 차지했다. 게다가 지원 분야 역시 기초연금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여가문화, 노인복지시설 등으로 다양했다. 반면 청년층만을 위한 지원은 행복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뿐이다. 구인회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전체 복지 지출이 부족한 상황에서 청년만을 위한 복지예산은 없다”고 말했다.

◇목소리 들으려던 노력은 시늉에 그쳐=물론 정치권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청년정치인을 내세우고 정당 산하에 청년위원회나 대학생위원회 등 청년조직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들은 선거용일 뿐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선거를 앞두고 대학등록금 문제 등 청년문제가 사회현안으로 떠오르자 여야는 앞다퉈 자기 진영에 청년을 영입하려고 애썼다. 청년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공개경연 방식으로 청년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진행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도 당시 20대 후반의 이준석 씨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하며 청년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모집기간을 연장했음에도 경연 지원자와 청년 선거인단 수는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다. 지역구의 25%를 여성과 2030세대에게 우선 배정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청년비례대표 선출은 관심끌기용 ‘반짝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그나마 청년비례대표로 선출된 이들도 청년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 대학생위원회 주이삭 기획국장은 “장하나 의원은 노동, 김광진 의원은 국방 부문에 치중하여 입법 활동을 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는 못했다”고 같은 당 청년비례대표들의 의정활동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러한 아쉬움은 정계에 진출한 청년이 청년을 대표하지 못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지난 총선에서 선출된 청년비례대표들은 청년 혹은 청년조직의 탄탄한 지지를 바탕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었다. 또 이들은 비례대표 선출 이전까지 청년문제와 관련된 활동경험도 전무했다. 장하나 의원은 2007년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비교적 정무경험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청년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활동은 없었다. 김광진 의원 역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기 이전까지는 순천YMCA 재정이사를 역임하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시민운동을 펼쳤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의 고민을 의정에 반영하지 못했고, 청년으로부터의 압력을 받지도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당별 청년조직도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것을 설립 목표로 삼긴 했었다. 처음 독립적인 청년조직이 생긴 것은 민주노동당에 학생위원회와 청년위원회가 구분된 2000년대 초다. 이후 정당별로 다양한 이름의 청년조직이 설치됐다. 현재 새누리당에는 청년위원회와 대학생위원회, 미래세대위원회, 새정치에는 전국청년위원회와 그것에서 분리된 전국대학생위원회, 정의당에는 청년학생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하지만 정당 산하 청년조직들은 당 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다. 주요 간부나 기조의 변화, 대중의 지지율에 따라 사업의 존폐를 넘어 조직의 존폐까지 좌우되기 일쑤다. 선거철이면 지도부가 선거운동까지 떠맡기면서 진행하던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여력이 없다. 새정치 서울시당 대학생위원회 최명수 정책부팀장은 “선거기간에는 특별히 평소 업무에 선거운동이 추가된다”며 “대학생위원회나 정책생산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줄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고정적으로 편성된 예산이 없다는 점도 청년조직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실제 새정치의 대학생위원회는 독립적으로 편성된 상시 예산이 없다. 사업 기획안을 작성해 중앙당에 요청하면 조율을 거쳐 예산을 할당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예산이 언제 나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업을 기획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주이삭 기획국장은 “자신의 작은 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학생위원회를 찾는 청년들에게 기본적인 식비나 교통비를 지원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지원이 부족하니 청년조직이 청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성이나 정치력을 기르기는 어렵다. 최명수 정책부팀장은 “대학생위원회의 지위나 역할이 제1야당의 학생조직치고는 매우 미흡하다”며 “학생사회에 대한 이슈 제시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홍보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청년 정치인·청년조직, 선거 동원 수단에서 탈피해야

청년정책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담기기 위해선 청년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이와 함께 청년정치인이나 정당 산하의 청년조직들이 선거용 조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의 여러 국가에선 정당이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통해 청년당원들의 정치경험을 기른다. 청년들이 청년조직 활동을 통해 정무능력을 갖춘 후 청년정치인으로 성장하면 청년의 대표로서 몫을 다한다. 스웨덴에서는 정치에 뜻을 둔 청소년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정당의 청년조직에 가입해 2~3년간 정치제도뿐 아니라 조세, 환경 등 정치수업을 받는다. 그 후 이들은 지방의회와 광역의회에서의 의원 활동을 디딤돌 삼아 국회에 진출한다. 실제로 스웨덴 정치인의 과반수가 정당 산하의 청년조직 출신이다. 그리스, 벨기에, 이탈리아에선 지난해 30대 총리가 잇따라 당선되기도 했다. 청년당원이 청년조직의 지원을 받아 정치경험을 갖춘 청년정치인이 되면 청년들을 대변하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의 박한창 이사는 “유럽에서 29살의 청년이 정부 부처의 장관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정당에서도 청년 당원들에게 실무경험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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