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5 위기의 총학

2015년, 서울대 학생 A는 평소 관심 있던 경영학회에 가입하려 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져 다음 학기에나 다시 지원할 수 있다. 대신 그는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자원봉사 동아리에 들어가려 한다. A에게 학생자치에 관한 고민과 시흥캠퍼스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논의들은 골치 아픈 일일 뿐이다. 그는 이러한 의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 학생회 활동은 목소리 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쓸데없고 재미없는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A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총학생회(총학)가 있든 없든 자신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A는 3월로 예정된 총학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1985년 B에게 학생사회가 갖는 의미는 A와는 사뭇 달랐다. 그에게 학생사회는 원하는 동아리에 가입하며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사회에 대한 참여와 학생자치에 대한 욕구를 실현하는 공간이었다. B는 학생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선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며, 그들과 함께 군부 독재에 저항해 민주화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총학이 있었다.

1984년 총학이 관악에 다시 등장한 이후 총학은 학생사회를 대표하는 지위를 누려왔다. 동시에 총학은 학생운동의 구심점이었고 총학 선거마다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로 투표율이 90%를 웃도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의 바람이 불던 1990년대 이후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점차 줄어들더니 지난 2002년 총학 선거는 연장투표에도 불구하고 46.8%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무산됐다. 전례 없는 총학 선거 무산에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최초로 구성됐고, 이후 2014년에 이르기까지 총학 선거는 낮은 투표율로 인해 연장투표까지 진행해 성사되거나, 아예 선거가 무산돼 이듬해 3월 재선거가 이뤄지는 경우가 반복됐다. 지난해 제56대 총학이 임기를 미처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고 치러진 제57대 총학 선거 또한 학생들의 외면과 무관심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인가?

 

2. 학생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총학

 

이런 상황에서도 총학은 학생사회를 동질한 집단으로 여기는 기존의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과·반 학생회에서 총학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이고 단일한 구조는 다원화된 학생들의 이익을 더 이상 효과적으로 대표하지 못한다. 학생사회는 분화되고 개별 이익에 대한 요구는 점차 커지는 데 기존 학생회의 구조 속에서는 이러한 요구들이 만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1년 『대학신문』이 주최한 ‘학내 공론장에 대한 좌담회’에서 대학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김재원 공동의장(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12)은 “서울대 학생사회 내에는 의견 표출의 욕구가 잠재해 있지만 이러한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수단은 기존 학생회 조직에 불과했다”며 이 점을 지적했다. 같은 자리에 참석했던 강산 씨(종교학과·06)도 “총학에서 단과대 학생회로, 단과대 학생회에서 과·반 학생회로 이어지는 공론장이 개인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총학이 외면 받고 있는 것은 많은 학생들이 더는 총학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들 개개인의 이익에 대한 관심이 여러 분야의 학회나 동아리 등으로 확장된 데 반해 학생회는 기존에 계속 논의되던 학내인권이나 등록금 문제와 같이 학생사회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전제한 의제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호 씨(지리학과·08)는 “학생들의 관심사와 이익은 여러 영역으로 흩어졌는데, 총학은 이러한 의제들을 논의하고 학생들을 만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어 총학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학생들은 시흥캠퍼스에서 누가 어떤 교육을 받을 것인지, 등록금심의위원회의 학생위원들이 어떤 방향으로 활동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것보다 관심있는 학회의 세미나 혹은 봄축제 때 예정된 동아리 공연이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학생복지담론을 내세운 비운동권(비권) 학생회가 성장했다. 1999년 비권을 표방한 「광란의 10월」 선본이 총학에 당선된 이후 2011년까지 이르는 10년 동안 학생복지담론을 내세운 비권 학생회가 많은 지지를 얻으며 수차례 총학을 수권했다. 이들은 ‘학점포기제’ ‘대학국어 S/U제’ ‘생리공결제’ 등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학생사회에 내재된 다양한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려 노력했다. ‘총학은 주민센터가 아니다’는 거센 비판이 있었지만, 비권 선본들이 학생들의 지지를 얻고 여러 차례 총학을 수권했다는 것은 학생들이 실질적인 복지와 이익을 보장받는 데 관심을 두는 경향이 뚜렷해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권 총학조차 학생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비권 총학들이 많은 사업을 벌이고 이를 통해 다양한 영역의 학생들을 모두 만족시키려 하다 보니 내실 있게 사업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실천가능」 선본이 당선된 제52대 총학은 군 복무 중 학점이수제 도입, 강의평가시스템 개편 등의 공약을 제시했지만 군 복무 중 학점이수제는 수요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강의평가시스템은 개편 후 오히려 퇴보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학신문』 2009년 11월 29일 자) 임기 중반에 해산된 제56대 총학 「디테일」 또한 많은 공약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행한 공약들은 소수에 그쳤다. △외국인 학생대표의 총학 논의기구 참여 △겨울학기 9학점 수강신청 △서울대 학회 네트워크 등의 주요 공약들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1년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총학이 법인화 저지 투쟁에서 보였던 한계는 학생들이 총학으로부터 완전히 등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2011년 5월 30일, 제53대 총학은 법인화 저지라는 기치 아래에 2,300명의 학생들을 아크로 광장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 총학은 약 2만부의 유인물을 배포했고 학내 곳곳에 비상총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렇게 비상총회는 성사됐고 학생들은 본부를 점거했다. 오랜만에 총학과 학생사회는 활기를 얻었고 이들은 총학을 구심점으로 법인화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총학이 본부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정치조직들과 총학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고 28일 동안 이어지던 본부 점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총학은 행동력을 잃었고 학생사회는 더 이상 총학에 의지할 수 없었다. 제54대 총학생회장 오준규 씨(법학부·08)는 “학생들이 공론장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더라도 (법인화 저지 투쟁에서처럼) 총학이 승리한 경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총학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법인화 저지 투쟁의 실패를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총학과 함께 직접 행동할 동기도, 총학 선거에 참여할 유인도 잃게 됐다.

 

3.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러한 상황을 뒤집고 학생들을 다시 총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총학 스스로 학생사회의 다원화된 이익을 모을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모색해야 한다. 인문대 이은호 학생회장(서어서문학과·09)은 “학생회는 학생사회에 무작정 의견을 내달라고 호소하기보다 다양한 소통수단을 통해 학내의제를 논의하는 장에 더욱 쉽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회가 기존에 고수하던 방식에 부담을 느껴 학생회가 주도하는 공론장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한 학생은 “학생회가 주도하는 토론회나 집회에 참여하는 데 심적으로, 시간상으로 부담감을 느껴 참여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익명성이 보장되고 많은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학내 의제들을 접하고 의견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학내의 잇따른 성추행 논란은 대자보와 같은 기존의 소통수단이 아닌 페이스북이나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를 통해서 공론화됐다.

최근에는 각 단과대 학생회 차원에서도 페이스북과 스누라이프 등을 활용해 학생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으고 소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학생회의 페이스북 콘텐츠가 학생회 선거, 인권 교육,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으로 한정돼 있고, 학생들이 그 내용을 다른 학생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의 참여가 적어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소통수단을 다양화하더라도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과·반 학생회에서 총학으로 이어지는 일원적인 체계에서 탈피해 다양한 영역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함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관악 동아리연합회(동연)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동연은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를 통해 가스누출에 대한 대책, 연습실 사용 회칙 개정과 같은 안건을 논의하며 다양한 동아리의 개별적인 이익을 대변해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총학의 산하기구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연세대 송준석 학생회장(연세대 정치외교학과·12)은 “기존 학생회가 단일화된 조직기반 위에서 학생사회의 모든 의제를 끌어가려고 하니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학생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며 “총학 산하에 다양한 영역을 관장하는 전문화된 산하기구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총학의 산하기구 중 대학행정자치연구회(대자연)는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기구로 꼽힌다. 작년 총장선거를 앞두고 모의총장선거를 주관해 법인화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총장선거에 학생사회의 관심을 끌었고, 등록금심의위원회에 참여해 등록금을 2012년에 5%, 올해 0.3% 인하하는 성과를 냈다.

 

4. 하나의 대표성을 넘어서

산하기구뿐만 아니라 학내의 다양한 학생자치조직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도 총학의 역할이다. 연세대 송준석 학생회장은 “총학은 산하기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학생들이 직접 공론장에 참여하는 영역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자치언론이나 학회와 같은 자치조직를 지원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육성한 자치조직이 총학의 활동을 견제하고 독립적으로 학생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학내 공론장의 주체로 활동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학생사회가 다시 역동성과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총학의 경우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는 아직 미흡하다. 실제로 총학의 산하기구들은 총학의 영향력에서 독립적이지 못하며, 대자연과 같은 일부 산하기구를 제외하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이익을 잘 대변하는 조직을 찾기 어렵다. 시흥캠퍼스 신축기숙사 TF팀 ‘세움단’의 경우 인적 구성에서 총학의 인사들이 대부분이며 총학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세움단 김예나 단장(국어국문학과·10)은 “세움단이나 발전기금 BREAK가 제56대 총학과 분리돼 운영되기보다는 총학 내에서 팀이 만들어져 운영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며 “세움단과 발전기금 BREAK가 총학의 기능을 나눠 받아 독립적으로 활동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처럼 총학의 기능 분화를 통해 만들어진 산하기구들에 총학의 영향력이 아직까지 강하게 남아있다는 점은 학생들에게 기존의 학생회 구조와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박희만 씨(경제학부·14)는 “세움단이 학생들의 자율적인 참여가 이뤄지는 조직이라기보다 총학이 형식적으로 만든 조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인식은 산하기구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또 자치조직을 보는 시각도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 김재원 공동의장은 “아직 총학이 문화자치위원회와 같은 산하기구뿐만 아니라 학내언론이나 동아리연합회, 학내 여러 학회 등 여러 자치조직이 동등한 공론장의 주체라는 점에 대해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해 제56대 총학 「디테일」도 ‘불량 원룸 블랙리스트 제작’ ‘학점 이월제’ ‘평의원회 학생 의석 수 확보’와 같이 총학만의 힘으로는 이행하기 어려운 공약을 제시했다. 이는 아직까지 총학이 학생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있어 총학 이외에 다른 주체들의 역할을 크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에 총학의 기존 틀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인적 구성이나 활동방향으로 미뤄봤을 때 총학의 산하기구가 갖는 한계는 여전하며, 총학이 자치조직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제 총학은 과·반 학생회에서 총학으로 이어지는 일원적인 학생회 구조가 학생들을 모아내는 데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총학은 전문적인 산하기구를 통해 전문적인 역량을 길러나가야 한다. 또 자치조직들이 총학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공론장을 형성해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총학이 진지한 고민을 통해 학생사회의 여러 자치조직들을 자신과 동등한 주체로 인식할 때 학생들은 다시 총학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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