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무법자, 남과 여의 이분법을 파괴하다
젠더 무법자, 남과 여의 이분법을 파괴하다
  • 이승엽 기자
  • 승인 2015.03.28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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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젠더 무법자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태어나면서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한 ‘남성’을 거부한다.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는 확신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그는 여성 트랜스젠더가 된다. 여성을 좋아해 레즈비언의 삶을 선택한 여자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성전환수술을 받고 남자가 되면서 다시 이성애자가 되기도 한다.

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케이트 본스타인으로 그녀는 자신의 삶 속에서 젠더 체제를 마구 흔들고 있다. 그녀는 저서와 연극,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LGBT*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1995년 출간돼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 그녀의 대표적 저서『젠더 무법자』가 20년 만에 번역돼 한국에 출간됐다.

『젠더 무법자』에서 제시카 본스타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젠더 체제가 지배하는 사회와 문화를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나면서 남과 여의 이분법적 젠더를 강요받고 성 정체성을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책에는 강요된 성 정체성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괴물로 여기며 자괴감에 빠졌던 저자의 유년시절 기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그러나 젠더란 고정된 것이 아닌 유동적이며 모호한 것이라고 본스타인은 말한다. 저자는 평생 동안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정의를 찾기 위해 헤맸지만, 어떤 무리나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붙들고 있는 변덕스런 정의밖엔 찾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특히 이분법적 젠더는 남성이 자신의 특권을 지키는 데 악용됐으며, 폭력을 수반해 여성과 소수자의 자유를 억압해왔다. 인간이 자유로운 성 정체성을 되찾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젠더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본스타인의 핵심 주장이다.

저자는 성별과 성 역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 때 비로소 고정된 젠더 체제의 해체가 가능하다고 보며, 이를 실천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젠더 무법자’라고 이름 붙인다. 트랜스젠더를 단순히 성전환자가 아니라 ‘출생 시의 성별과 다른 방향으로 자기 성별을 향하게 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저자는 게이,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이 트랜스젠더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모여 궁극적으로는 남녀 경계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무법자가 되자고 말한다. 젠더 무법자는 일터 그리고 삶 속에서 자신을 속박하는 젠더와 싸워야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한 지점은 젠더 이데올로기 해체의 구체적 수단으로 사도마조히즘(S/M) 플레이를 제안한다는 점이다. S/M 플레이는 가학적 혹은 피학적 행위를 통해 지배-복종 관계를 형성해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인데 대중에게는 폭력적인 행위로 비춰지곤 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S/M 플레이는 사랑에 근거한 합의된 행위로 지배자는 복종자가 동의하거나 요청한 한도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 즉 S/M 플레이 안에서 권력은 공유되며, 안전하고 합의된 대화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 소통을 통해 S/M 플레이 속에서 억압적인 젠더의 구분은 사라지고 ‘너와 나’의 순수한 인간 그 자체만이 남게 되면서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성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다.

다만 S/M 플레이의 경우 그 특이성 때문에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본스타인의 트랜스젠더 개념은 기존의 젠더 규범을 위반했다는 공통점 아래 동성애자까지 포용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자기 자신보다, 좋아하는 상대의 젠더에 더 관심이 많은 게이와 레즈비언 등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즉 성소수자 내에도 다양한 관점과 양상이 존재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통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젠더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실천적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의미가 있다.

확실히『젠더 무법자』는 사회적 통념을 거스르는, 낯선 젠더 개념과 급진적인 실천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의 인식을 180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침묵=죽음’이라는 인상적인 표어가 적혀있다. 급격한 젠더 체제 재구성은 불가능하지만 그 계기를 만들기 위해선 트랜스젠더들이 스스로 나서 자신의 역할을 쟁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케이트 본스타인. 이 젠더 무법자의 20년 전 외침이 지난해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불발이 보여준 경직된 한국사회의 젠더 인식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해보길 바란다.

케이트 본스타인 저|조은혜 역

|바다

|400쪽|1만5천8백원

젠더 무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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