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몇 학생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하지만 몇몇 제한된 수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으로 어떻게 ‘서울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면모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자리에서 학생들이 내면에 숨겨 둔 생각을 얼마만큼 기꺼이 꺼내어 보이겠는가?

그렇다면 서울대 학생들만이 활동하는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포털사이트에선 다양한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고, 한 잔 술의 취기가 그러는 것처럼 준익명성이 자신의 본래 생각을 굴절시키는 습관을 해제하는 역할을 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다. 내면의 생각에 대한 고백은 솔직함이 주는 힘을 지니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삶을 추동하고 있는 실제 가치체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학신문』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신문』에서라면, 다수의 개인적 의견을 보고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행동양식(학점 관리, 전공 선택, 수업 외 활동, 진로 선택 등)과 관련해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또한 평가도 내릴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이러한 것을 하는 것이『대학신문』이 응당 해야만 하는 역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대학신문』이 적합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지난호 문화면 ‘젊음이 스며든 거리에서 오래된 흔적을 찾다’에서는 학교 주변의 거리들이 “과거엔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했는지, 현재 이 거리는 서울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려는 연재의 첫 순서로 ‘샤로수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샤로수길의 과거와 현재 모습으로의서 변모 과정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었고 아울러 샤로수길의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생생한 사진과 멋들어진 제목이 적절히 어우러져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는 훌륭한 기사였다.

하지만 이 거리가 서울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겠다는 이 기사의 약속이 (필자의 주의를 단숨에 붙들어 놓긴 했지만) 충실히 이행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서울대 학생들에게 샤로수길은 어떤 공간으로 역할하고 있는가? 이 거리에 젊음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이 거리에 젊은 연령층이 많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백으로, 이 사회에서 자행되는 부당함에 대한 분개로, 수업에서 다뤄졌던 논쟁에서 의견이 갈리는 친구와의 격론으로, 그렇게 ‘쓸모없는’ 것에 대한 헌신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젊은 영혼의 “오래된 흔적”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원하는 나의 바람이 옳은 것일까? 이 기사에서 상점 주인과의 인터뷰 등을 담은 것에 상응해 샤로수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서울대인에게 그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생각이 반영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담았더라면 더 균형 잡힌 훌륭한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

기획면 ‘위기의 총학, 새로운 역할과 나아갈 방향은’에서는 총학 선거를 맞아 총학이 학생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유효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훌륭히 설명해 주었다. 다만 이 기사에 대해서도, 그러면 현재 학생사회가 지니는 다양한 관심과 이해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분류하고, 분류된 관심들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과감한’ 논의를 포함했더라면 더욱 풍부한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전해 본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의 주인인 학생들이 이 시대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대학신문』에서 더욱 많이 찾기를 희망하며, 현재의 훌륭한 모습에서보다 더욱 발전해 가는 『대학신문』의 모습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한성일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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