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신림복합문화공간 작은따옴표

그물망처럼 얽힌 골목길 사이로 상가와 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신림1동. 작년부터 이 동네 깊숙이 위치한 1628-83번지 상가 건물 지하에서 밴드 음악과 함성 소리가 새어나온다. 건물 옆에 작은따옴표 부호가 덩그러니 찍힌 간판이 달려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캔버스 여러 개가 놓여있다. 심상치 않은 이 곳은 신림 복합문화공간 ‘작은따옴표’다.

▲ 노희진 씨가 그린 작은따옴표 식구들의 캐리커처와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지난해 2월 28일 작은따옴표 대표 장서영 씨는 ‘모든 삶을 내가 선택 하겠다’는 꿈을 품고 작은따옴표를 만들었다. 그는 해외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돼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디자인 전공생이었다. 그는 따 놓은 당상과 같던 미국 유학과 장학금 2만6천달러를 내던지고 돌연 휴학계를 냈다. 그는 “학교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이 싫었다”며 “눈뜨고 감을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념 없다’는 주위의 일침에 오히려 오기가 생긴 그는 자유롭게 공연이나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서울 어느 곳을 가도 ‘너를 뭘 믿고 빌려주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그는 신림의 한 지하실을 무작정 임대해 자신의 공간을 마련했다. 보증금과 월세는 디자인 회사의 의뢰를 받아 번 돈으로 메꿨다. 청소와 실내 장식은 직접하고 버려진 가구를 주워 구색을 갖췄다. 그는 “임대료가 싼 것도 있었지만 번화가, 도림천, 시장이 모두 있어 마을이 참 좋았다”고 신림을 택한 이유를 회고했다.

얼마 후 남다른 사연을 가진 20대 초반의 청년 예술가들이 꼬리 물듯 합류했다. 미술을 담당하는 노희진 씨는 작은따옴표를 잠시 도와주러 왔다가 ‘더 이상 현실에 짓눌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대학교를 그만두고 합류했다. 드럼 연주를 맡은 박준범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방황하다가 이곳의 순수한 친구들을 보면서 다시 꿈을 꿨다”고 말했다. 현재는 지방에 있는 본가를 떠나 신림의 지하실에서 합숙하는 6명을 포함해 20명이 넘는 청년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곧 서로를 ‘식구’라고 표현하는 한 가족이 됐다.

그들에게 신림은 그들만의 예술을 자유롭게 펼치기 좋은 공간이다. 박준범 씨는 “뉴스에서 신림은 서민의 삶을 보여주는 마을로 등장한다”며 “실제로 고시생, 아르바이트생이 많이 살고 서민의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예술가에게 좋은 곳이다”고 말했다. 이에 그들은 신림을 제2의 홍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 작은따옴표 식구와 행위예술가들이 영화 「타짜」를 패러디한 사진. 작은따옴표는 독특한 컨셉으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한다.

사진제공: 작은따옴표

쉴 수 있는 축제, 느낌 있는 예술!

그들의 음악은 특별한 주제가 있는 축제다. ‘1인 가구 네트워킹 파티&콘서트’는 신림에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다. 장서영 씨는 “신림에 1인 가구가 많은데도 그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은 전혀 없다”며 “외롭게 홀로 사는 사람들이 편히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8차례 열린 이 파티에서는 지하실 안에서 레크리에이션, 밴드 공연, 뒤풀이 등이 밤새 이어진다. ‘야생뮤직크루’ ‘WOOZOO’ '다리 밑 프로젝트' 등 뮤지션과 동네 청년, 30대 중후반 ‘아저씨’까지 모여 함께 술잔을 부딪히며 음악을 즐긴다.

그들의 미술 역시 평범한 전시가 아닌 참가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놀이다. 그들은 1인 가구 네트워킹 파티&콘서트 한 켠에 천을 고정시킨 커다란 상자를 둔다. 참가자는 드리워진 천 위에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뒤편의 열린 곳을 통해 상자 안으로 들어가서는 비밀스런 말을 속삭일 수 있다. 소괄호의 순우리말을 딴 또 다른 미술행사 ‘손톱묶음’에서 참가자는 (격하게),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고)와 같은 지문에 따라 떠오르는 것을 그린다.

이 밖에도 작은따옴표는 청년 문화단체 세 곳과 함께 도림천을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다리 밑 축제'를 진행하고, 라이브 공연과 벼룩시장이 동시에 펼쳐지는 ‘플리마켓’을 연다. 장서영 씨는 “공황장애를 겪거나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특히 많이 온다”며 “모두가 마음 편히 쉬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범 씨는 “한 친구를 위해 생일 파티를 해줬는데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 것이라며 엉엉 울었던 적도 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또 작은따옴표는 비싼 대관료 때문에 밀려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작은따옴표는 그들의 축제가 없는 날이면 다른 예술가들에게 정해진 가격 없이 지하실을 대관해준다. ‘당신의 삶 속에서 이 공간을 빌리는 데 적당한 돈을 주십시오’는 작은따옴표만의 대관 규정이다. 이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예술가들 사이에 퍼지면서 공연, 전시, 워크숍 등이 지난 1년간 30차례 가까이 열렸다.

무엇이든 속마음을 담으세요 ‘     ’

▲ 지난 28일(토)에 열린 헌혈축제. 작은따옴표를 비롯한 4개 단체가 기획한 이 행사에서는 밴드 공연, 메이크업 버스킹 이후 참가자들이 함께 헌혈을 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작은따옴표가 아니라 ‘     ’다. 소설에서 작은따옴표 안에 등장 인물의 속마음을 쓰듯 누구나 작은따옴표의 의미를 느낀 대로 부호 안에 담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작은따옴표에서 얻은 영감으로 시를 짓고 작곡을 하는 기타리스트 김동관 씨는 “나에게 작은따옴표는 냉녹차다”고 말했다. 대개 녹차를 따뜻하다고 인식하지만 냉녹차도 존재하듯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다. 노희진 씨는 “안 오면 그립고 오면 쉴 수 있는 집”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에게 작은따옴표 안에 무엇을 넣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하며 작은따옴표 식구들은 ‘진심’ ‘이웃 사랑’ ‘삶 그 자체’ 등 수없이 많은 이름을 얻었다.

이름처럼 그들의 활동에도 정해진 울타리는 없다. 길거리 쓰레기 문제를 예술 활동으로 해결하는 ‘ARTRASH’는 신림의 지하실을 벗어나 전국, 나아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기획하는 프로젝트다. 버스킹, 캐리커쳐 등 길거리 예술 활동을 하며 팁 대신 쓰레기를 받는 기발한 발상이다. 이는 다가오는 ‘관악산철쭉제’의 메인 테마로 선정돼 관악산에서 가장 먼저 실현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지하철 노숙인들이 멋진 옷을 입고 열차 안을 워킹하는 ‘지하철 런웨이’, 신원시장의 통로 변에 뮤지션들이 한 줄로 서서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음악이 흐르는 시장’ 등 그들이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무궁무진하다.

젊은이에게 너무 많은 과업을 지우는 우리 시대에 젊다는 것은 버겁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닐까? 무수한 ‘젊으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느새 ‘젊으니까 할 수 없는 일들’이 돼버린 지금, 여기 젊음을 한껏 누리는 이들을 보라. 재기발랄함으로 가득한 이 청년들의 이야기에 마침표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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