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거리에 가다 ② 낙성대 인헌시장

서울대 주변엔 유별난 거리가 많다. 고시생을 비롯해 서울대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신림동 고시촌과 새로운 만남의 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샤로수길은 서울대 구성원들과 삶을 함께 나누고 있는 터전이다. 낙성대 인헌시장과 행운동 벽화거리처럼 지역민의 참여로 새로운 명소로 거듭난 거리도 있다. 『대학신문』은 서울대 주변의 거리들이 과거엔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했는지, 현재 이 거리는 서울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① 서울대입구역 샤로수길 ② 낙성대 인헌시장 ③ 신림동 고시촌 ④ 행운동 벽화거리

한적한 주말 오후. 낙성대 인헌로에 위치한 인헌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식료품점 안에선 인근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요리에 쓸 재료를 사러 온 사람들이 가게 진열대를 바라보며 무엇을 만들지 고민한다. 곳곳에 있는 길거리 음식점엔 오랜만에 친구와 만난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300m 남짓한 작은 골목길 시장은 낙성대 주변의 여러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로 가득 찬다.

▲ 현대화사업으로 인헌시장에는 손님이 눈비를 피하면서 장을 볼 수 있도록 차양이 설치됐고, 가게엔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간이의자가 놓였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원당에서 인헌으로 다시 태어나다

인헌시장의 옛 이름은 원당시장이었다. 80년대 재래시장 형태로 형성된 원당시장은 초기엔 몇 안 되는 가게가 전부였지만 시장이 낙성대로와 주변 거주단지를 연결해주는 인헌길에 있어 유동인구가 많아졌다. 이후 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가게들이 생기며 지금은 점포수가 60여개로 늘었다.

점포수가 늘며 시장 규모가 커졌지만 몇 년 넘게 인헌시장은 정식시장으로 등록되지 않아 부작용이 뒤따랐다. 미등록 시장이어서 시설을 개선할 비용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지 못했다. 시장을 이끌 상인회도 없어 원활한 시장 운영에도 한계가 있었다. 시장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많은 수의 식품점이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았고 대다수 가게는 카드결제를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손님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인헌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헌시장 상인회 마우용 회장은 “당장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상인회도 없어 상인 간 단합이 매우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인들은 협의체를 구성하고 논의를 시작했다. 먼저 2008년에 ‘원당큰시장 상인회’(상인회)를 만들고 원당시장의 정식 등록을 추친하며 시설 개선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듬해에는 손님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주고자 ‘인헌시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물론 이름만 바꾼다고 산적한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상인들은 논의 끝에 중소기업진흥청에서 시행하는 ‘전통시장현대화사업’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인헌시장은 최종적으로 사업에 선정되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여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상인과 건물주의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특히 아케이드(지붕) 설치를 놓고 갈등이 깊었다. 상인들은 날씨에 관계없이 손님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며 아케이드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 건물주들은 아케이드를 설치하면 건물에 손상이 가고 나중에 증축하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결국 아케이드 대신 건물에 손상을 덜 주는 차양을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마우용 회장은 “아케이드를 설치해야 손님들이 눈이나 비를 맞지 않고 시장을 이용할 수 있는데 결국 효과가 떨어지는 차양을 설치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현대화사업이 완료됐고 인헌시장은 가게의 특성에 맞춘 쾌적한 환경과 현대화된 시설을 갖추게 됐다. 많은 음식점이 확장된 도로의 남는 부분에 의자를 비롯해 손님이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을 설치했다. 과일가게나 슈퍼는 진열대와 내부 시설을 고치면서 손님이 마트처럼 편하게 가게를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시설이 개선되자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주민들은 물론 낙성대 자취생, 기숙사생 등 서울대 학생들도 인헌시장을 많이 찾게 됐다. 마우용 회장은 “현대화사업 후 낙성대 주민들과 서울대생, 외국인 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시장을 찾게 됐다”며 사업의 성과를 설명했다.

길거리 음식의 천국, 자취생 장보기의 중심지

▲ 인헌시장의 한 전 가게. 시장 입구부터 들어선 음식점의 여러 가지 길거리 음식은 손님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한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인헌시장에 들어서면 어묵가게, 치킨집, 분식집 등 많은 음식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에 자리 잡는 시장의 지리적 특성상 손님들이 자주 들르는 길거리 음식점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음식점들은 현대화사업의 일환으로 손님이 쉬어갈 작은 간이 의자를 마련하거나 서서 먹을 수 있는 시설을 설치했고 인헌시장은 길거리 음식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됐다. 윤영돈 씨(중어중문학과·14)는 “이따금씩 어묵 가게에 들리는데 인헌시장은 친구들과 잠시 들러 이것저것 사먹고 간단한 대화를 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원조명가왕만두’에서 파는 왕만두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원조명가왕만두 이정우 씨는 그곳에서 3년이 조금 넘게 만두 장사를 하고 있다. 만두 맛의 비결에 대해 이정우 씨는 “그저 정직하게 만드는 것이 비결”이라고 수줍게 이야기했다. 인기가 많다 보니 짝퉁 가게가 생긴 적도 있다. 그는 “몰래 가게에서 기술자를 빼내 바로 옆집에 새로운 만두 가게를 개업하는 일이 있었다”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던 일”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헌시장에 위치한 과일가게와 슈퍼마켓은 자취생과 기숙사생이 식재료를 사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정하은 씨(중어중문학과·13)는 “과일을 먹고 싶을 때 인헌시장에 자주 간다”며 “노점상에서 과일을 싸게 파는데다 가끔씩 덤을 얹어주는 것도 시장에서 과일을 사는 재미”라고 말했다. 시장의 중간에 위치한 사거리부터 끝자락은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 단지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이 부근 가게엔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도록 상품 진열대 등 구매를 돕는 시설이 확충됐다. 각 가게는 낡은 진열대를 유리로 교체했고 대형마트에서 쓰는 상품진열체계와 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마트 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사람들이 장을 볼 수 있게 됐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A 씨는 “현대화사업 덕에 장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 인헌시장에는 젊은 상인이 많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일 가게와 음식점 사이를 거닐면 여러 옷가게를 볼 수 있다. 그 중 한 가게에서는 “스판바지가 할인! 아줌마, 스판~”이라 외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장 가운데 위치한 사거리 근처 ‘쌈지’에서 벌써 2년 째 일하고 있는 청년 B 씨다. 그는 “손님들에게 큰 소리로 가게를 알리는 일이 쾌활한 내 성격이랑 딱 맞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인헌시장은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한 바퀴를 돌다 보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부터 청년 상인들과의 유쾌한 대화까지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거리다. 마우용 회장은 “인헌시장의 다채로운 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찾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다

▲ 옷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B 씨는 언제나 우렁찬 목소리로 상품을 홍보한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인헌시장 거리는 현대화사업 이후 낙성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화장실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는 등 여전히 시설 문제가 남아있다. 마우용 회장은 “아직 인헌시장의 현대화사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며 인헌시장 구성원들이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시장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현대화사업으로 시장의 시설과 외관은 단장했지만 상품이나 음식점의 신메뉴를 비롯해 손님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도 필요하다. 상인 C 씨는 “손님들이 깨끗해진 외관을 좋아하고 가게들도 자주 구경하는 편이지만 많은 손님들이 시 장 골목을 보기만 하고 지나쳐버린다”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새로운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인헌시장은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주경야독프로젝트’를 통해 음식점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거나 의류점이 상품을 디자인하는 작업을 돕고 있다.

손님에게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상인회는 인헌시장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는 역할극을 고안했다. 마우용 회장은 “손님 역할로 ‘단골인데 할인을 좋아하고 까칠하며 자기 멋대로인 손님’을 설정하는 등 재밌는 시도를 통해 시장의 서비스 질을 높이고 있다”고 많은 사람에게 친근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소개했다.

인헌시장은 낙성대 주민들과 상인들, 학생들이 찾는 소소한 공간이다. 여유롭게 시장을 둘러보며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들과, 마트만큼 쾌적하면서도 가격은 더 싼 과일가게들은 평범하지만 때론 특별한 시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낙성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를 찾는다면인헌시장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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