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잉여로움’이 없으리로다
자본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잉여로움’이 없으리로다
  • 김지윤 기자
  • 승인 2015.03.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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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책] 심리정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다음 중 공감이 가는 상황을 찾을 수 있다. ①아무 일 없는 날 아무 것도 안 하면 마음이 분주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②가만히 못 있고 SNS를 하다가 잉여와 같은 자신을 반성한다. ③내일은 학교 가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결 마음이 편해지면서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되새긴다. ④내일을 위해 우선 푹 자기로 한다. ⑤자기 전에 기분전환 삼아 내키는 대로 사고 싶던 물건을 주문한다. 위의 항목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 것, 쉬면서 SNS를 하는 것, 내일을 위해 넉넉히 자거나 충동구매를 해보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법한 모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로사회』『투명사회』로 잘 알려진 한병철 교수(베를린예술대)는 지난 저서들을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바 있다.『피로사회』에서 저자는 사람들의 노력이 실상 노동과 그에 따른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계발하라는 자본의 동기부여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성과주체는 ‘주인에 묶여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착취한다는 점에서 절대적 노예’인 셈이다. 이어 출간된『투명사회』에서는 데이터의 투명성이 소통의 자유가 아니라 자발적인 감시체계의 강화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정보를 노출시킨다.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털어놓은’ 데이터로 인해 사람들은 오히려 쉽게 감시당하고 파악당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파놉티콘’이 형성된 것이다.

이번 달에 출간된『심리정치』에 이르러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이 긍정성과 투명성을 활용해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지배하는 방식을 파헤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른바 ‘힐링’ 열풍 또한 그러한 지배 방식의 하나다. 이 책에서 힐링은 ‘효율과 성과의 이름으로 모든 기능적 약점과 정신적 억압을 치료를 통해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자아의 최적화를 이룬다는 것’으로 정의된다. 힐링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 가장 바람직한 자화상이라고 주장하며 개인이 스스로의 자아를 부정한 채 노동에 맞춰지도록 권한다. 이런 노력들은 다름 아닌 자본의 증식에 적합한 주체를 재탄생시키기 위함이다. 책 속의 말마따나 ‘신자유주의 체제의 주체는 더 큰 성과를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강제 속에서 몰락’해간다. 저자의 역설적인 표현 그대로 힐링과 같은 심리정치적 구호가 표상하는 긍정성은 ‘킬링’과 다를 바 없다.

빅데이터에 의해 확장된 투명성 역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본의 생산양식에 예속되게 하는 요소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와 그것의 자유로운 교류를 토대로 만들어진 빅데이터는 개인과 집단의 행동 패턴, 무의식적 욕망까지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본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편리를 제공하고 사람들은 욕구가 충족되는 생활을 통해 자유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애초에 빅데이터가 마련해준 자유는 자본의 생산을 위해 선택된 것으로 자율적일 수 없다. 사람들은 빅데이터가 상품의 형태로 제공한 자유에 의존하게 되고 그 자유를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번다. 자본은 스스로를 살찌우고 사람들의 자유는 빈약해져간다. 이에 대해 옮긴이인 김태환 교수(독어독문학과)는 미주(尾注)에서 ‘타자에게 붙들려 낯설게 되어버린 자아의 소원이 자아를 공격한다’고 표현했다. 저자가 인용한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라는 제니 홀저의 문장이 섬뜩하게 들리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정해진 자유 안에서 열심히 살기를 재촉하는 심리정치는 무대를 넓혀 노동과 관련이 없던 감성적 부분을 포함한 인간 전체를 자본을 증식시키는 용도로 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생산성과 성과를 높이기 위해 기분이라는 자원을 동원’하는 감성자본주의를 활용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기업은 감성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기분을 자극하고 사람들은 자기 기분에 따라 주체적인 소비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기분은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반성하기 전에 먼저 심리에 영향을 끼쳐 지치지 않고 계속 소비에 매진하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감성도 자본을 늘리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데이터의 교환을 통해 기분을 사용하는 생산양식은 다른 감성적 능력도 자신에게 중요한 자질로 사용한다. 비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소통능력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적 자본으로 평가된다. 미주에서 김 교수는 ‘마음 자체가 자유의 인질이 되어 착취의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나아가 감성과 마찬가지로 생산과 거리가 멀었던 놀이의 시간마저 심리정치를 거쳐 노동의 연장선에 놓인다. 사람들은 쉬는 시간도 자기계발을 위한, 인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준비로 여기게 됐다.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잉여 시간에도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좋아요’에 신경 쓰고 조회수를 올릴만한 신상품 영상을 찍는다. SNS을 통해 보상을 좇는 게임이 거듭되는 것이다. 책의 주장에 따르면 놀이는 게임화되어 무엇이든 생산해야 하는 강박에 흡수되고 ‘필요에서 자유로운 삶의 형식’을 가능케 하는 ‘해방적 잠재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신의 감성, 생활, 시간까지 자본의 생산에 복무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기에 그렇게 돼버린 맥락 또한 생각해보지 못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지금의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서사적으로 읽는 사유가 필요하지만 빠르게 정보를 교환하는 빅데이터 안에서 파편적 지식만 얻는다고 주장했다. 데이터의 급류에서 그들은 현 상황을 고민할 틈도 없이 점차 절대무지에 다다르고 각자의 고유한 내면은 뭉그러진다. 책의 전반에 걸쳐 저자는 사람들이 깊은 고민 없이 자본이 좋아하는 모습에 최적화되는 획일화를 경계한다.

자본의 논리를 끊임없이 홍보하는 신자유주의의 횡포를 포착하기 위해 저자는 쓸모없음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책에선 그리스의 한 마을의 아이들이 지폐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찢어버린 사례를 소개한다. 보물처럼 모셔지던 자본의 중요성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생산의 과정에서 분리된 놀이공간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유의 실천’을 주면서 심리정치가 의도하는 노동의 필연성에서 사람을 진정 자유롭게 만든다. 자본의 심리정치를 빗겨가려면 신자유주의의 생산 양식과 무관한 놀이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비생산성을 감지하는 사람은 바로 정보가 없는 사람, 그래서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암시한다. 즉, 심리정치에 길들여지지 않은 텅 빈 내면만이 온 사회를 촘촘히 연결한 자본의 심리정치를 포착할 수 있고 삶을 삶에서 소외시키는 자본의 초월성을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보 천치와 같은 백지 상태가 오히려 자신을 착취하는 주체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만족감을 깨닫는 부정성, ‘절대적 내재성’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순수한 내재성을 가진 사람이 부자유함을 깨닫는다는 말은 언뜻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유한 내면의 중요성을 언급해왔다. 올더스 헉슬리의『멋진신세계』는 한병철 교수가 주장한 심리정치와 그에 대항하는 내재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바 있다. 소설 속 미래사회는 한병철 교수가 기술한 신자유주의 체계와 많이 닮아있다. 사람들은 과잉된 정보와 제공받은 쾌락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가운데 오직 야민인만이 부자유함을 감지할 수 있다. 그는 은연 중에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면서 심리정치의 지배에 놓이지 않은 ‘지혜로운 바보’가 된다.

안타깝게도『멋진 신세계』의 말미에서 야만인은 자유와 안락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게 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체계에서 고유한 내면을 갖고 실존적 자유를 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당장 생계의 문제가 달린 사람에게 저자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경제적 안전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누리는 자유를 반추하라는 주문은 정작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주지는 못하는 종교적 제언에 가깝다.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절대적 내재성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반증과 더불어, 설사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진실을 즉시 수용하긴 어려운 현실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그 외에 선택되지 않은 자유를 사유해 사람을 예속시키는 심리정치의 실체를 분명하게 파헤쳐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에 억눌려 있던 내면의 풍경을 회수해 자신의 자아와 삶을 골똘히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아직 이름이 없는 삶의 형식을 위한 자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유야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책의 목소리는 그동안 주저해왔던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라 권한다. 저자의 사유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고민이 시작될지, 우린 더 나은 누군가 되기를 그만둘 수 있을지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심리정치

한병철 저|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146쪽|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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