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청년을 말하다 ③ 청년문제, 해법을 모색하다

2009년 4명의 청년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급여가 최저임금을 밑도는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청년들 역시 수당은커녕 일상적인 임금체불에 시달렸다. 하지만 기성 노동조합은 청년의 노동권 침해에 무관심했다. 자신이 처한 노동 현실이 문제인 줄도 모르는 청년들이 대다수였고 문제라는 것을 알아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4명의 청년은 2010년 3월 청년세대를 위한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을 만들었다. 뒤이어 2011년 5월에는 부족한 학교 기숙사와 부당하게 높은 주거비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청년들이 민달팽이유니온(민달팽이)을 조직하고 청년 주거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부당 노동 관행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주거 취약계층으로 내몰린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청년들의 호소는 금세 다른 현안에 묻혀 사라졌다. 이에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인 청년들이 모여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선 청년들

청년단체들은 청년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최초의 통로였다. 청년문제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문제가 있다고 짐작조차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청년문제는 생활밀착형 문제로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추가 월세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원룸 관리비가 대표적이다. 원룸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이 아니어서 법적으로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주먹구구식으로 원룸 관리비가 부과되더라도 실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에 청년단체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문제에 접근했다. 민달팽이가 주거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원룸 관리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위원장이 자신의 경험에서 문제를 직접 포착한 덕분이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해 개별적으로 흩어져있던 문제를 하나의 사회 의제로 제시한 것도 청년단체들이었다. 청년유니온은 임금체불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근로기준법을 어긴 업체를 고발했고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청년단체들의 움직임은 또래 청년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관행이라는 말에 참을 수밖에 없던 부당함을 문제라고 당당히 지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청년유니온은 지난해 증언대회를 열고 교육권과 노동권을 모두 보호받지 못하는 현장실습생의 현실을 알렸다. 이후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을 시작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블랙기업이란 비합리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악덕기업을 뜻한다.

블랙기업 운동의 시작과 동시에 청년들의 제보가 빗발쳤고 당사자들은 물론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지난 24일엔 611건의 노동상담과 63건의 제보 등을 분석해 고용 불안정, 장시간 노동 등 4개 분야 10개 항목으로 이뤄진 한국형 블랙기업 지표를 발표했다. 청년유니온 조합원 문준희 씨는 “내가 바로 현장실습생 제도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는데 증언대회를 통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청년들이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었다”며 “파견실습생, 블랙기업의 문제를 드러내는 활동들은 꼭 필요하며 앞으로는 더 큰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청년단체들은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청년유니온은 블랙기업 선정위원회를 꾸려 블랙기업 시상식을 개최하는 등 청년들의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민달팽이도 지난해 항목별 원가를 바탕으로 표준 원룸 관리비 기준표를 개발했고, 관리비를 공정하게 책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다. 또 청년 주거난을 완화하고자 비영리주거모델을 마련해 보증금 60만원에 월세 23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현재까지 총 29명의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했다.

청년단체들은 청년들의 현실에 작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안겨다 줬다. 이들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성과와 신뢰를 쌓았고 그 결과 더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설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2010년 40여명의 조합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청년유니온은 총 978명의 조합원이 힘을 보태고 있다. 2011년 연세대 기숙사 운동에서 시작된 민달팽이의 청년 주거운동에는 현재 380여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민달팽이 임경지 위원장은 “젊은이들은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편견으로 청년단체들의 활동은 많은 증명을 요구받는다”며 “눈으로 보이는 상황이 작게라도 해결됐을 때 내부적으로 더 큰 자신감과 가능성을, 외부적으로 더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년단체와 제도권의 연계 강화돼야

청년단체들은 청년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지만 현행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직접적인 권한이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주체가 정부나 정당이다. 청년들이 실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발굴해 공론화하는 것이 청년단체들의 역할이라면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제도나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제도권의 역할이다.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강현욱 부위원장은 “청년단체들이 일반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으면 정당은 그것들을 담아 제도적 차원에서 변화를 만들고 강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나 정당의 입장에서도 청년단체들은 훌륭한 조력자다.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시민사회단체 차원의 청년단체들은 사회적인 경험도 풍부하고 조직화도 일찍 됐기 때문에 청년단체들의 협력이 제도권에 많이 필요하다”고 평했다. 각 분야의 청년단체와 함께 연구사업 등을 진행해 일반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청년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정책담당자들이 청년 주거실태를 파악할 땐 2013년 민달팽이이 개발한 청년주거빈곤 개념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청년 주거정책에 평균 임대료와 주거형태 등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상황이 반영될 수 있게 됐다.

이미 국회의원 및 정당 산하의 청년조직과 청년단체들 간의 협력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청년단체들과 정당 산하의 청년조직들은 몇 년째 힘을 합쳐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2013년엔 ‘최저임금 인상! 생활임금 쟁취! 청년학생단체 연석회의’를 만들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문화제를 개최했다. 지난해엔 청년 당사자가 최초로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석하는 결실을 보기도 했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참여함으로써 청년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할 길이 열린 것이다.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 이동학 소장은 “정당의 청년조직들과 비제도권의 청년단체들이 공동대응하는 전략이 꾸준히 필요하다”며 “공동대응 전선에서 함께 역할을 나누어 실행하면 제도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구조와 맞닿은 청년문제

청년단체와 제도권의 협력은 분명 청년문제를 완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청년문제가 발생하는 원인 자체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청년문제의 해결은 어려울지 모른다.

오늘날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 맞닿아있다. 김홍중 교수(사회학과)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고용 없는 성장의 기조가 자리 잡았다”며 “산업부문의 변화와 끝없이 오르는 대학진학률 등 복합적인 사회 변화의 결과물로 청년문제가 터져 나왔다”고 전했다. 산업구조는 노동력이 중요한 제조업 중심에서 자본과 기술이 중시되는 첨단 산업 중심으로 변화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 노동의 영역도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또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경제성장률이 고착되면서 국내 일자리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다. 10억원의 추가 산업 생산이 발생할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취업자 수를 의미하는 취업유발계수는 2009년 13.8명, 2010년 12.9명, 2011년 12.3명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청년 일자리가 청년 인구보다 빠르게 감소했고, 일자리 질도 크게 나빠져 청년의 취업문은 비좁기 그지없다.

따라서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는 청년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어렵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조건 격차는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월평균 임금 격차는 115만원으로 10년 전의 두 배에 가깝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또한 2002년 85만원에서 지난해 162만원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에 고용안정과 어느 정도의 임금이 보장되는 정규직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온 소수만의 전유물이 됐다. 실제 전체 청년취업자 5명 중 1명은 생애 첫 일자리를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시작한다.

더 심각한 것은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기회조차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세대의 경제력과 고용형태가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의 생존율을 결정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청년들의 취업 경쟁은 여전히 대학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열이 높은 대학을 가기 위해선 대학 입시 성적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고, 다시 고등학교 입시 성적이 좋은 중학교에 다녀야 하며 끝내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집안의 경제력이 전제돼야 한다. 칼폴라니연구소 김연아 연구위원은 자신의 박사과정 논문 「비정규직의 직업이동 연구」에서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자녀의 정규직 비율이 21.6%, 비정규직 비율이 77.8%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양극화된 노동시장과 승자독식 사회 구조는 대다수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일자리 간 노동조건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한 다수를 패자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경쟁은 필연적이다. 또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한 번 경쟁에서 밀려나면 기본적인 생계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 청년유니온 정준영 정책국장은 “청년들의 문제만 홀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드러나는 현상만 고친다고 해서 청년들의 현실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며 구조적 요인을 강조했다.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 고용률 등 통계수치를 끌어 올리는 데 급급한 청년정책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이제는 청년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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