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과 박 모 교수의 제자 성추행 논란이 잠잠해진지 몇 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수리과학부 강 모 교수가 성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대학원생들의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등 학내에서는 끊임없이 인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인권센터가 출범했음에도 여전히 인권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강 모 교수의 구속 기소 이후 드러나지 않고 잠복돼 오던 인권 문제들이 우후죽순으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대학신문』에서는 학내 인권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를 알아보고 학내 인권 신장을 위해 인권센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1. 인권센터의 현주소

1993년 우조교 성희롱 사건이 일어난 후 2000년 서울대에는 인권센터의 전신인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세워졌다. 이를 계기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학생들의 고충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2012년에는 학내의 전반적인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권상담소’를 추가로 개설해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와 인권상담소를 포괄한 ‘인권센터’가 새롭게 설립됐다.
인권센터는 학내 인권과 관련해 폭넓은 범위의 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학내에서 준사법기구의 성격을 지니는 인권센터는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상담과 조사를 수행하며 학내 인권 증진을 위해 학내․외의 인권과 관련된 연구와 문화행사 주관까지 맡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경우다. 특히 교육에 있어서는 매년 성평등 및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국내 대학들 중에서는 중앙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에 상담소 형식의 기구만 있을 뿐, ‘인권센터’가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서울대는 학내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반은 마련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권센터의 설립 이후에도 학내 인권 문제는 반복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권센터의 역할과 기능에도 학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 내가 신고한 사건, 인권센터에서 어떻게 처리될까

학과에서 현장답사를 가게 된 학생 A.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쌓인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밤에는 함께 답사를 떠난 동기 및 교수와 술자리를 가졌다.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즐겁게 술을 마신 뒤 A는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이 채 들기도 전에 A는 누군가가 자꾸만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많아 우연히 몸이 닿았겠지’ 싶어 몸을 뒤척여 보았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둠 속 손길은 A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두려움에 떨던 A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고 답사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날의 기억에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 A는 학내에 인권센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 내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려 한다.
A가 이메일, 전화, 직접 방문 등의 방법을 통해 인권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면, 인권센터는 A와의 상담을 통해 사건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결정하게 된다. 만약 A가 자신이 겪은 사건에 대해 신고를 원할 경우나 A의 의사와 관계없이 인권센터에서 반드시 신고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심의위원회가 구성되고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 변호사 1인을 반드시 포함해 교수나 외부 단체의 전문가 9인 이하로 구성되는 심의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정도를 심의해 본부에 징계를 요청한다.
답사 내내 A를 괴롭힌 사람이 교원이었을 경우 총장이 교원징계위원회에 징계 의결을 요청한다. 교원징계위원회에서는 인권센터의 조사 및 심의 결과를 검토한 후 징계를 의결하고, 그 결과를 전달받은 총장은 가해 교수에 대해 징계처분을 내린다. 조사부터 징계까지 사건을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권센터는 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나 대부분 독자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본부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가해 교수가 강의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정도로 인권센터에 협조한다.
만약 가해자가 학생인 경우 인권센터는 학생지원과에 징계를 요청한다. 학생지원과에서는 학생에 대해 형사상의 처벌이 필요한지 결정하기 위해 법무팀에 자문을 구하기도 하지만 징계 여부부터 정도, 징계처분 등 학생 징계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각 단과대에 위임한다.
한편 A가 신고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인권센터가 중간자의 역할을 맡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을 전달하거나 가해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3. 인권센터가 직면한 과제

그러나 인권센터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내에서는 인권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낮은 인권교육 이수율

인권 문제를 예방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 교육이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인권 교육 참여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학생의 경우 지난해 온라인 교육 이수율이 10%도 되지 않으며, 오프라인 교육 참여 또한 저조하다. 인권센터 최기자 전문위원은 “단과대, 학과뿐만 아니라 동아리와 같은 단체에서도 교육을 요청한다면 인권센터 직원이 직접 찾아가 교육을 해주지만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을 받으면 마치 공동체 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아 요청이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교직원의 경우 여성발전기본법에 따라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학생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가족부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416개 대학 교직원의 성희롱 예방 교육 이수율은 평균 77.87%인데 반해 서울대의 지난해 교육 이수율은 34%로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처럼 인권 교육 참여율이 낮은 이유는 인권 교육 이수 규정이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본부에서는 교원 채용 시 인권 관련 교육을 이수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지만 이는 강사에게만 필수 사항일 뿐 정규직 교원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들과 직원 역시 인권 교육과 관련된 규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에 인권센터는 올해부터 모든 학내 구성원이 의무적으로 1년에 한 번 이상 인권·성평등 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본부에 제시했고, 본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인권센터 정진성 센터장(사회학과)은 “교육을 이수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줄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최대한 자발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사회 내 인권센터의 위상

인권센터의 존재나 업무 처리 시의 원칙 및 방식 등이 학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야기되는 문제도 적지 않다. 인권센터를 방문해 도움을 요청해 본 경우가 아니라면 학생들은 인권주간이나 인권교육 등의 행사가 열리는 경우에만 인권센터를 접하기 때문에 인권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다. 이로 인해 학생사회 내에서 인권센터의 인지도가 낮아, 인권센터는 학생들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신뢰를 잃게 됐다. 인권센터 이혜원 전문위원은 “많은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센터의 성격을 모르는 것 같다”며 “상담 혹은 신고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정진성 센터장은 “인권센터에서 처리하는 모든 일들이 엄정하게 비밀주의 원칙에 입각해 진행되다 보니 사건이 일어나도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권센터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보니 드러나지 않은 여러 인권 문제에서 인권센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기도 한다. 강 모 교수 성추행 논란 또한 학생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성폭력 문제 해결법 TF팀’과 ‘교수 성희롱․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을 구성해 학내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를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인권센터와 공동행동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는 여전히 마련된 바가 없다.
이 외에도 인권센터는 비밀유지를 위해 사건에 관련된 정보를 포함해 신고 접수 통계, 신고 처리 건수 등의 통계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권센터가 학내 인권과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알리지 않다 보니 인권센터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도와 인지도는 낮은 수준이다. 이에 더해 인권센터에는 외부와의 소통을 위한 제도화된 통로도 없어 학내 구성원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인권센터에서 그 문제가 잘 처리되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강제력 없는 인권센터의 목소리

인권센터의 결정과 권고에 강제력이 없는 점도 인권센터가 지닌 한계다. 학내에서 인권 문제가 발생하면 인권센터는 조사를 수행하고 조사 결과가 나오면 당사자 혹은 해당 기관에 알림과 동시에 적절한 처분을 요청한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규정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인권센터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 강제력은 없다. 인권센터 박찬성 변호사는 “인권센터의 결정사항이 권고 혹은 의견 표명에 그치는 만큼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 설립 당시 자문을 맡았던 양현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도 “가해자 혹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신뢰도나 위상이 관련된 경우 인권센터의 권고 사항이 이행되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인권센터는 권고의 형식으로 요청했던 모든 사항의 이행 상황을 파악하거나 이행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 당사자나 해당 기관에 이를 다시 권고할 수 없다. 양현아 교수는 “인권센터는 외부에 가해자에 대한 상담 및 교육 이수, 징계와 같은 조치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속한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관리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특히 피해자에 대한 조치에 있어서는 담당자는 있는지,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어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박찬성 변호사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비밀유지원칙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단과대나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에 피해자와 관련된 후속 조치를 공개적으로 부탁하기가 어렵다”며 “비밀유지와 사후조치 두 가지 모두 꼭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룰 수 없어 딜레마”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권센터만 바라보고 있는 본부

학내에서 인권 문제가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대응을 못하는 본부 역시 문제다. 학내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대대적인 개편을 거쳐 인권센터가 설립됐지만, 본부는 인권 문제 발생 시 인권센터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에 협조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해왔다. 인권센터에서 조사를 마치고 사건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는 경우 교무과와 학생지원과에서 각각 교수와 학생의 징계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 외에 인권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인권센터와의 협조체제를 구축해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나 매뉴얼, 그리고 인권센터의 한계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4. 계속되는 학내 인권 문제,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에 방치돼 오던 인권 문제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그리고 뒤이어 인권센터가 세워졌다. 그렇다면 인권센터는 학내 인권 문제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아직 알려지지 않고 숨어 있는 문제를 찾고 예방하는 등 학내 인권 문제의 ‘해결’과 함께 ‘근절’을 위해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강 모 교수 사건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이나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성폭력 문제 해결법 TF팀’의 활동처럼 각종 인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은 피해자나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 반면 현재 인권센터는 학내에서 크게 불거진 사건에만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인권센터는 성희롱·성폭력 문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대학원생,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의 인권 보호에도 힘써야 한다. 최근 밝혀진 여러 성희롱·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학내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학내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때문에 현재 인권센터도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고용 문제에 시달리다 결국 해고된 셔틀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학내에는 현재 상황의 개선을 필요로 하는 ‘인권 약자’들이 많다. 물론 인권센터는 인권주간 행사를 통해 학내 구성원들이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특별한 행사 외에도 학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권센터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권 문제의 근본적인 예방과 근절은 사건 당사자를 비롯한 공동체 전체의 인권 의식이 성숙해야만 가능하다. 현재 인문대, 자연대, 공대 등 여러 단과대에서는 학생상담센터의 운영을 통해 인권 보호에 관심을 갖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현아 교수는 학내 인권 신장을 위한 방안으로 “상담과 교육에 있어 학내 기관 및 단과대와 인권센터의 연계를 위한 접점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인권센터는 학내 여러 기관들과의 연대를 통해 학내 인권 문제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인권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의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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