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주 기자
사회부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인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사용자보다 옆자리 정규직 동료에게 더 분노했다. 한 20대 여성이 일하는 회사는 기간제 노동자에겐 식대를 주지 않는다. 함께 점심을 먹어도 팀장은 기간제인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의 점심값만 법인카드로 계산한다. 그녀의 분노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용자가 아니라 점심시간마다 더럽고 치사하게 구는 옆자리 상사를 향한다. 수많은 20대가 장그래에 열광하고 마 부장을 비난했던 이유다. 정규직은 명절선물로 스팸을 받고 장그래는 식용유를 받았던 에피소드는 우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년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상위 10%의 안정적인 정규직이 되기 위해 우리는 고군분투한다. 당장 내 얘기다. 뛰어난 동기들의 모습은 존경스럽지만 그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내 모습은 한심하고 미래는 걱정스럽다. 학점, 외국어, 경험, 자격증까지 뭐 하나 잘난 것 없는 내가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휴학은 했지만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 매일 아침 7시까지 영어 학원에 가서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끼리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한다. 1시엔 곧장 일본어를 배우러 간다. 이동하는 지하철에선 보고 싶은 엑소의 컴백 영상이 아니라 관심도 없는 CNN 뉴스를 튼다. 이렇게 노력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무려 ‘6개월이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지 무섭기 때문이다. 여자는 나이도 스펙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초조하다. 언제까지 미래를 이유로 지금의 행복을 유예해야 하는 걸까. 

어른들은 노동시장의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청년들이 인적자본을 키워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되면 되지 않느냐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는 비정상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법이 아니다. 청년노동자의 노력만으로 개인의 삶의 질이 바뀔지도 의문이지만 이러한 논리는 이제 막 생애 첫 노동을 시작하는 청년에게 노동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사용자다. 지난 5년간 GDP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감소했다. 실질임금인상률은 경제성장률보다 현저히 낮고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반면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다. 사용자는 언제까지 노동문제의 책임을 회피하고 청년의 희생만 강요할 텐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전략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소득분배가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늘었으며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부실하다. 자본의 멈출 수 없는 탐욕을 제재해야 했을 정부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정규직 과보호론만 주장한다. 경제위기는 이제 사회위기로 번졌다. 사용자와 정부가 신자유주의라는 폭주 기관차에서 뛰어 내려야 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