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은영 교수
간호학과

졸업 후 대학병원 외과 간호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오전 근무를 하며 전날 심장수술을 받은 40대 남성의 활력징후(혈압, 맥박, 호흡, 체온)를 측정하였다. 환자가 힘없어하고 잠을 많이 잤지만, 혈압과 심박동 수가 정상이어서 근무 내내 특별한 처치를 하지 않았다. 다음날 근무를 오니 그 환자는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전동되고 없었다. 수간호사님은 내 근무 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냐고 물으셨고, 나는 “활력징후가 근무 내내 정상이었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깨우면 의식이 있었다”고 대답했었다. 수간호사님께서는 “네가 신규라 직관이 없어서 그렇지, 네 근무 때부터 안 좋아졌을 거야”라고 하셨다. 수술 후 기력이 떨어져 졸려 하는 줄만 알았는데, 팔뚝이 두꺼워 맥이 약하게 들리는 줄만 알았는데, 환자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이후로 20년이 지났는데도 그 환자의 약한 심박동 소리와 혈압을 재고 있는 내 모습이 기억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 일은 신규였던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활력징후가 수치상으로 정상이라는 사실에 매여,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한 그날의 경험은 내가 머리로만 알고 있는 지식이 현장에서 환자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간호사의 ‘앎’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거쳐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 학기, 임상경력 10년 차 간호대학 박사과정 학생을 논문 지도를 위해 만난 날, 유독 화장기 없고 초췌해 보여 어제 근무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학생은 “저녁 근무 끝나고 막 퇴근하려는데, 신규 쪽 환자 하나가 아무래도 안 좋아 질 것 같은 거예요. 수축기 혈압이 80밖에 안 되고 의식도 흐린데, 담당 신규간호사는 ‘그 환자 원래 그랬다’며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못하는 것 같아 그냥 두고 나올 수가 없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자정 경에 결국 심폐소생술을 하고 중환자실 보내고 환자 상태가 안정되는 거 보고나니 새벽 2시더라고요. 막차가 끊겨서 집에는 못 가고 병원 가까이 사는 후배 집에서 자고 와서 이래요”라며 미소 지었다. 진심을 가지고 상당 기간 환자를 돌본 경력이 있는 간호사들이 가지고 있는 경이로운 수준의 환자에 대한 직관적 판단력이 적중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부터 간호보조인력 양성을 위한 2년제 교육과정을 신설하고 현재 간호사의 업무 중 상당수를 위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한간호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와 보건복지부 인력으로 구성된 간호인력 개편 협의체 회의에서 가장 먼저 전원 찬성으로 간호보조인력에게 위임을 결정한 것이 ‘활력징후 측정’이라 전해 들었다.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보건복지부와 여러 주요 관련 기관에서 숙고하여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간호 술기의 일부를 2년제 교육과정을 거친 간호보조인력에게 일괄 위임한다는 것에 필자는 우려를 표한다. 활력징후 측정은 약간의 교육을 거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술기이지만, 측정하여 숫자를 읽어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협의체 구성원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활력징후 측정치는 정상, 비정상 판단을 위한 숫자일 뿐만 아니라,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질병 상태와 개인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고, 그 개인의 투병과정의 연속선에서 유일무이한 의미를 가지는 측정치인 것이다. 간호 술기를 적용해야 하는 대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온전한 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 어떤 간호 술기도 결코 단순하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을 돌보는 간호 업무를 기계를 다루는 기술처럼 의미 축소하여 비의료인에게 위임하게 하는 정책이 시행되면,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예민하게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잃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누군가의 진정한 돌봄이 필요한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서은영 교수(간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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