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놨다. 당시 이를 받아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3월 말까지 타협안을 제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노사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며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정규직 과보호론이라는 경영계의 입장만 대변한 것이라며 수용불가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경영계는 정규직 과보호를 손봐야 노동 문제가 해결된다고 맞선다. 『대학신문』은 이번 기획 기사에서 정규직 과보호론이 정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할 해법인지 분석하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올바른 방향성이 무엇인지 짚어본다.  

<파견직 그 남자의 사정> 
나이는 먹을 대로 먹고 취업은 안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이라는 이름에 속아 사내하청 회사에 취직하는 게 아니었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더니 1년 후엔 말이 바뀌었다. 내 창의성이 부족해 업무능력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던데. 글쎄.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너네는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을 하냐. 그러다 지난 달에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야근이며 주말근무며 빠져본 적이 없는데 회사 경영이 어려워져서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아 짜증나. 꼴랑 120만원 받으면서 3년 내내 일했더니. 

<기간제 그 여자의 사정>
정규직이 아니니까 언젠가 나갈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다. 12월이 지금 얼마나 남았다고. 계약직으로 1년 1년 연장해서 3년짼데, 얼마 전에 팀장님이 갑자기 아버지 병간호 안 해도 괜찮으냐고 묻는 게 이상하긴 했다. 
계약직이 이 정도 버틴 거면 나름 오래 있었다고 다른 데 구할 때까지 3주 정도는 시간을 주겠단다. 바로 안 잘라 준 거에 고맙다고 말이라도 했어야 하나. 제일 걱정되는 게 속상해하실 부모님 보는 거다. 그냥 내가 그만뒀다고 해야 덜 걱정하실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나랑 오빠 둘이 버는데 당장 나 이렇게 되면 다음 달 생활비는 어쩌지. 오빠 사회 초년생이라 월급 진짜 적은데.   

취업난, 저임금, 고용불안, 희망고문.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지난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1.1%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 7월(11.5%) 이후 최고치다. 15~25세까지는 대부분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청년실업률은 통계보다 3~4배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취직에 성공한 청년들도 90%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생애 첫 노동을 시작한다. 
경력이 짧고 업무숙련도가 낮은 청년 세대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다. IMF 이후 대한민국에 불어 닥친 노동 유연화의 바람은 국내 노동시장을 비정상적으로 양분했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질 나쁜 일자리만 급격히 늘어났다. 기간제, 시간제, 간접고용 등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청년들의 노동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이들이 겪는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 현실은 비슷하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취업한 청년의 10%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한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회사를 떠난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약 기간이 끝나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사내하청이라는 이유로 쉽게 해고된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정부도 비정상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의 가장 큰 피해자가 청년 세대임을 인정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청년 실업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있다”며 노동시장을 개혁하면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양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호의 탈을 쓴 비정규직 ‘양산’대책

지난해 12월 29일 정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이중구조를 타파할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종합대책)이다. 종합대책이 정말 청년 일자리 개선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 양산은커녕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노동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본질은 대규모 비정규직 양산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내건 대표적인 정책은 현재 2년으로 제한된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기간 연장이다. 정부는 기간제 사용 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업무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 전환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간제 노동자의 근속 기간별 정규직 전환율을 조사한 결과 7.4%(1년 6개월 미만)→19.9%(2년 미만)→42.4%(2년 이상)로 사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가 많아졌다. 또 기간제 노동자에게 어떤 정부 대책이 가장 필요하냐고 묻자 80% 이상의 노동자가 기간을 늘려달라는 답변을 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원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해석엔 의문이 남는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용자는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근거로 든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율 42.4%를 역으로 따지면 절반 이상의 사용자가 현행법을 위반하면서 노동자를 남용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OECD 국가 중 정규직 전환율이 가장 낮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으로 첫 노동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평생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노동자들이 기간연장을 희망했다는 설문을 보면 질문 자체에서 정규직화 가능성이 배제됐다. 즉 답변자는 정규직 희망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남신 소장은 “만약 정규직화와 기간제 2년 연장이라는 선택지를 줬을 때 기간제를 선택할 노동자가 얼마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기간 연장이 정규직 전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정책에서 드러났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학교에 영어 회화 전문 강사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이들을 정규 교원이 아닌 비정규직 강사로 고용하는 대신 예외적으로 사용 기간을 4년으로 연장했다. 2년 계약으로는 전문 강사가 유입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2013년 처음 고용됐던 강사 600여명은 전원 해고됐다. 계속 근무를 하려면 다시 기간제 노동자로 신규 채용돼야 한다. 5년 6개월째 정책이 시행 중이지만 지금까지 영어 회화 전문 강사로 근무했던 6,000여명의 강사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강사는 단 한 명도 없다.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실장은 “사용자들이 쪼개기 계약을 통해 4년 동안 희망고문만 하다가 이직수당을 지급하고 해고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결국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을 연장한다고 해도 대규모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할 뿐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남신 소장은 “사용자 입장에선 기존에 정규직으로 채용했던 업무도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유인이 커져 오히려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즉 일반해고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은 노동시장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 중 하나다. 현재 명확한 규정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 각각에 대한 근로계약 해지 기준과 절차를 구체화하자는 것이다. ‘가이드라인 제정’이라는 말은 언뜻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더 어렵게 해 노동자에게 도움을 주는 정책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빌미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한국노총 이정식 사무처장은 “사용자는 법에 제시된 명시적 근거만 제시하면 훨씬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5대 수용 불가 사항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규직에 대한 해고가 쉬워지면 사용자는 해고를 빌미로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하를 강요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에선 이미 저성과자 일반해고 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공공연하게 시행해왔다. KT는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성과를 강요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명예퇴직을 권고한다. 만약 해당 직원이 명예퇴직을 거부하면 원거리 발령, 직무변경, 감봉이 내려진다. 지난 2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반발하는 ‘장그래 살리기운동 본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사례 발표에 나선 KT 노동자 유용국 씨는 지난해 3월 명예퇴직 권고를 거부했다가 5번의 직무변경을 경험했다. 업무에 적응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매번 높은 성과 기준을 강요받았다. 유 씨는 “일반해고 기준완화 정책이 시행되면 노동자를 편하게 해고하는 KT의 시스템이 합법화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나마 있던 양질의 일자리만 더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규직 과보호론의 허상

1. 정규직은 과보호 받고 있지 않아 

야심차게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분석된다. 진보적인 노동경제학자들은 정규직 과보호론이라는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이를 기저에 깔고 있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정규직 과보호론이란 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지나쳐 기업의 비용부담이 크고 경쟁력이 완화된다는 주장을 말한다. 정부와 경영계는 정규직 노동자로만 구성된 대기업 강성노조가 사용자에게 비정규직의 유연성 증대를 내어준 대신 본인들의 고용보호를 보장받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달리 정규직 노동자는 과보호 받고 있지 않은 데다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혜택을 줄인다고 해도 그 혜택이 비정규직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지나치다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고용경직성과 임금경직성이다. 경영계는 노동법상 정리해고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현행법상 경영상의 이유에 의해 해고할 경우 노동자 대표 또는 노조에 50일 이전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해고 통보 절차를 법으로 규정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본에서도 통보하는 것이 관례긴 하지만 관련 조항은 없다. 그나마도 하루 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태주 교수(고용노동연수원)는 이는 현실이 아닌 법제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어 그나마 보호체계를 갖췄다고 평가받는데 실상 그 요건이 엄밀하게 지켜지지 않아 경영자의 판단만으로 언제든 해고하는 상황이나 다름없다”며 “강성노조라는 현대차나 쌍용차도 정리해고를 막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대법원에서도 쌍용차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쌍용차의 경영이 정상화됐음에도 정리해고자에 대한 재고용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또 최근에는 국내 통신업계 1위 SK텔레콤이 세대교체를 이유로 전체 인력의 12%인 500여명을 명예퇴직 형태로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정규직 노동자 중 근속 연수가 10년 이상인 장기 근속자는 18%로 OECD의 절반 수준”이라며 “반대로 1년이 안 돼 직장을 옮기는 단기 근속자 비율은 35.5%로 OECD 최고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능력과 괴리된 경직된 임금 체계 역시 기업에 부담이 된다고 주장한다. 생산성과 무관하게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따르다 보니 시장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노동 비용을 운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80%가 호봉제 임금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1년 차 노동자와 30년 차 노동자의 임금 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임금연공성은 3.13배로 OECD 평균의 2배를 웃돈다. 호봉제가 우리보다 먼저 정착된 일본도 2.41배에 불과하고 독일이 1.91배, 영국이 1.57배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이미 성과배분제나 연봉제와 같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차등 적용되는 임금 체계가 이미 널리 병행되고 있다. 실제 대기업 생산직의 기본급은 130만~180만원으로 최저 임금보다 불과 20~30% 많은 수준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고임금은 회사 실적에 따라 변하는 성과급이나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 외 수당에 기반을 두고 있다. 높은 임금 체계는 생산성에 비례하는 것이지 고정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도하게 높은 임금을 받아가는 장기 근속자 수 자체가 매우 적다는 점이다. 대기업에서 10년 이상인 장기 근속자는 18%에 불과하고 평균 퇴직연령은 49세다.   

2.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제로섬이 아니야 

사실 기업이 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낮춰 노동 비용을 줄이면 전반적인 노동 수요가 늘어나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는 주류 경제학에서 당연시하는 전제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소장은 「정규직 전환 강제 규제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관련 연구를 제시했다. 그는 정규직 고용 비용을 현재의 25% 수준으로 인하한 경우, 비정규직 고용 비용을 정규직의 75% 수준으로 인상한 경우에 비해 고용이 증가하고 실업 기간도 3.1년에서 2.2년으로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이론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실제 노동시장에선 정규직에 대한 혜택을 줄여도 총 고용이 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 10인 이상 사업체를 분석한 결과 정규직 임금 변동과 비정규직 비율 사이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정규직에 대한 혜택을 줄여도 그만큼의 혜택이 비정규직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논리대로라면 온갖 혜택을 독점한 소수의 정규직이 조금만 양보해 기업의 노동비용을 줄여주면 기업은 더욱 성장하고 경제 전체의 파이가 커질 것처럼 보인다. 커진 파이는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고루 분배되고 이는 다시 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을 낳아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점차 타파되고 청년들은 밝은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경제에서 선성장 후분배의 전제조건인 낙수효과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한국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1980~90년대에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해 구매력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국민 대부분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곧 기업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주요 소비자층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IMF 전까지 한국의 임금인상률은 경제성장률과 유사한(내지는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 당시 20대는 열심히 일하면 정년 때까지 퇴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임금도 꾸준히 상승하는 질 높은 일자리를 쉽게 얻었다. 노동자도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IMF와 금융위기를 겪은 지금의 청년에겐 통하지 않는 신화다. IMF 이후 한국경제는 저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낮은 성장률보다 더 낮은 임금인상률을 보인다.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국내 주요 대기업이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해 줄 유인이 사라졌다. 이제는 노동자에게 분배할 재화를 자본에 투자해 자본소득을 올리는 것이 기업에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다. 또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기업의 소비자가 국내 노동자만으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한국노동연구원 오상봉 노동정책분석실장은 “지난 5년간 GDP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감소했다”며 “기업소득은 빠르게 증가하는데 투자를 하지 않아 고용 없는 성장을 넘어 임금 없는 성장의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규제를 강화하자는 한국노총의 해법 

결국 정규직 과보호론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에 갇힌 종합대책은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한국노총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규제강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사유를 더 엄격하게 제해 정규직 채용을 일반적으로 만드는 안을 최선으로,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유지한 후 정규직화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는 동시에 차별시정권, 이직수당 지급을 접목하는 안을 차선으로 제시한다. 사실 종합대책엔 이러한 취지의 정책이 이미 반영됐다. 이직수당 지급과 노조에 준 비정규직 차별개선 시정권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기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연장 기간 동안 해당 노동자 임금총액의 10%를 이직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2년 동안 비정규직을 더 고용할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도 더 절감하고 유연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며 “이직수당을 주고 노동자를 2년 더 이용하다 해고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이직수당은 기간직 노동자의 해고를 막을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차별개선 시정권도 비슷한 지적을 받는다. 현재 최저임금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 임금 노동자의 11%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아 처벌받는 사용자는 드물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가 직접 근로감독관에게 신고할 수 있지만 보복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거의 신고하지 않는다. 전체 피해 노동자의 10% 정도만 신고하고 구제되는 신고자는 그중의 10%다. 전체 피해 노동자의 1%만 불법노동 현실에서 구제되는 셈이다. 노조가 시정권을 가져가도 정작 차별대우를 신고할 노동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정식 사무처장은 “체불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정부가 몇백만 명의 차별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공허한 목소리로 그칠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들은 어떻게 성공했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도 네덜란드와 덴마크와 같은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며 노동개혁 벤치마킹의 사례로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언급했다. 두 국가는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증가하던 80년대에 대대적인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감행해 경제회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체적인 방향은 다르지만 본질은 ‘유연안정화’다. 유연안정화는 유연성과 안전성을 결합한 개념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되 노동자에게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해 노동자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덴마크는 유연한 노동시장, 관대한 사회복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는 황금삼각형을 완성했다. 채용과 해고가 자유로워 매년 노동자의 1/4은 해고된다. 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는 최장 4년 동안 직전 임금의 90% 수준인 실업급여를 보장받기 때문에 해고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정부는 재취업 교육과 알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네덜란드는 정규직 일자리를 시간제 일자리로 쪼개 총고용을 대폭 늘렸다. 현재 네덜란드 총고용의 50.8%가 시간제 일자리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시간제 노동자는 임금은 물론 상여금·복지·교육수준 등에서도 전일제 노동자와 거의 유사한 정규직이다. 공공부문에선 임금 차이가 없고 민간 부문에선 7%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네덜란드와 덴마크의 노동개혁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노동유연화 정책이 아니라, 노사정 대타협을 가능하게 한 배경인 튼튼한 사회안전망이다. 두 국가가 20세기 전반에 걸쳐 차근차근 쌓아온 사회안전망은 노동자와 사용자를 매개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노동시장이 좀 더 유연해져도 노동자의 삶이 크게 위협받지 않기 때문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 지수는 53.6으로 덴마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안전망 확충에 투자하는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실업급여, 직업훈련 등 노동시장정책에 지출하는 비용을 살펴보면 덴마크의 GDP 대비 노동시장정책 지출은 4.42%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네덜란드는 2.93%로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실업자 비율은 두 국가보다 훨씬 높은데도 지출은 0.36%에 불과하다. 
국내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OECD 평균수준에 근접했다. 경영계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불평하며 꺼내드는 정규직 과보호론은 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하려 내세우는 낡은 논리에 불과하다. 이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을 제고할 때다. 높은 수준에서 조화를 이룬 유연안전성은 사용자에겐 효율성과 숙련노동자 확보를, 노동자에겐 일자리 증가와 고용안정을 선물할 것이다.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의 키는 유연안전성이 쥐고 있다.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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