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잇따르는 대학 학사개편

앞다퉈 학사개편 발표한 대학들

산업수요 따른 학사운영 내세워

대학의 공공재 기능 저해될 우려

대학 특성별 기능 강화 이뤄져야

 

“전공공부 해놨더니 과 통폐합 웬 말이냐!” “말만 하고 듣지 않는 학교본부 각성하라!”

총장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300여명 학생들의 목소리가 건국대 행정관을 뒤흔들었다. 건국대 학생들은 학교가 통보한 학사개편 방침에 반발하며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행정관을 점거했다. 앞서 건국대는 지난달 22일 학사구조개편을 통해 학과제 전환과 이에 따른 학과 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영화학과와 영상학과, 공예과 등 통폐합으로 정원이 줄어들 학과 학생들은 이런 학교 측의 통보 이후 수업 거부와 단식농성으로 학교와 대치를 이어오고 있었다. 이날 학생들은 취업률을 앞세운 무리한 학과 통폐합과 학교의 일방적인 결정을 규탄했다. 행정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하던 최동욱 씨(건국대 공예과․12)는 “예술계열에 취직률을 잣대로 통폐합을 진행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결국 이날 오전에 열렸던 심의위원회는 학사구조 개편안 통과를 유보하고 학생들과의 면담을 약속했다.

▲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대학들이 잇따라 학사개편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25일 이화여대가 기존 6개 학과와 새로운 1개 학과로 이뤄진 신산업융합대학을 2016학년도부터 신설하겠다는 학칙 개정안을 사전공고했다. 이튿날인 26일엔 중앙대가 학과제 폐지를 선언하며 학사개편의 선두에 섰고, 최근엔 건국대가 학과제 전환을 발표하며 이에 가세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학내외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면서 대학가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학사개편을 놓고 엇갈리는 반응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지만 이들 대학은 공통적으로 ‘산업수요에 대응한 인재양성’을 학사개편의 이유로 내세운다. 학사구조와 정원의 유연성을 강화해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수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이화여대는 ‘융합적 가능성이 높은’ 학과들을 신산업융합대학으로 이전해 신산업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중앙대 역시 모집단위를 광역화하면 학과 간 장벽이 사라져 단과대 차원에서 유망한 전공 신설이 쉬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건국대는 보다 직접적으로 학과제 확대를 통해 해당 학과 교수들의 진로·취업지도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학과 선호도, 연구 성과, 교육역량 등 학과별 경쟁력 평가에 바탕을 둔 정원 조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결국 산업수요와 이에 민감한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인기 학과를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표방한 것이다.

이와 같은 학사개편에 대한 학내구성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의 개편안에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김수빈 씨(건국대 경영학과)는 “학교의 일방적 진행에는 문제가 있지만 통폐합 대상 학과들이 학교 입장에서는 투입 대비 산출이 적기 때문에 하려는 것이 아니겠냐”며 학사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찮다. 학교의 일방적인 통보는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 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은 학교의 공식 발표 이전까지 관련 논의에 참여하기는커녕 학사개편이 이뤄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건국대 비상대책위원회 유민우 부위원장(건국대 영화학과․12)은 “8개월 동안 아예 학교에서 그 어느 학생에게도 알리지 않고 밀실로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이화여대와 중앙대에서도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진행된 학사개편을 비판하는 기자회견과 자보가 이어졌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우려를 표하는 더 큰 이유는 학사개편이 가져올 부작용 때문이다. 이들은 대학이 담당하는 학문연구의 기능이 저해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김누리 교수(중앙대 독어독문학과)는 “대학에서 얻게 되는 보편적인 지식과 전문지식이 결국에는 취업과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학사개편이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대 총학생회 전성원 집행위원장(중앙대 경영학과․10)은 “학교 내 교육환경이 좋지는 않은데 인기 학과는 인원이 몰려서 학교 측에서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예산 지원 권한으로 학사개편 부추기는 정부

이전부터 기업의 수요에 맞춰 학과를 통폐합하는 대학의 자발적 움직임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학들이 앞다퉈 학사개편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엔 정부의 대학 정책이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 정책(현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IME)사업)이다. 이는 산업수요가 많은 학과 정원은 늘리고 수요가 적은 학과의 정원은 줄이는 대학에 예산을 대폭 지원하는 사업이다. 교육부는 지난 1월 ‘2015년 업무계획’에서 대학 졸업생과 산업수요 간 수급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며 인문계, 자연계 정원을 줄이고 공학계 정원을 늘리겠다고 천명했다.

교육부의 정책은 고용노동부의 중장기 인력수급전망에 따른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13~2023년 중장기 인력수급전망을 통해 향후 공학계열은 27만7,000명이 부족한데 인문사회계열은 6만1,000명, 자연계열은 13만4,000명이 과잉공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교육부는 내년 2월 이공계 중심의 구조조정을 선도할 대학을 선정해 연간 최대 3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존의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사업 예산의 3~4배에 달하는 금액이며 교육부의 단일 대학 지원 사업으론 최대금액이다. 이토록 막대한 예산을 받을 기회를 대학이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올 8월로 예정된 대학평가 결과 발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확정된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에 따라 교육부는 대학평가로 모든 대학을 5등급(A~E)으로 나누고 차등적으로 정원감축을 유도할 예정이다. 2018학년도부터 고교졸업생이 대학 정원을 밑돌게 될 정도로 학령인구 감소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 사업 참여가 제한되고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대출 이용까지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대학들은 대학평가 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대학평가에서도 여전히 취업률 지표가 강조되는 까닭에 좋은 등급을 받으려면 이를 고려한 학과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총 12개 항목 60점 만점 평가가 이뤄지는데 이 가운데 졸업생 취업률이 5점, 취업․창업지원이 2점 포함된다”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0점대에서 갈리기 때문에 대학들이 취업과 관련한 부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일련의 정책을 통해 대학들의 자발적인 정원감축을 이끌어내면서 노동시장에서의 인력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효과까지 노린 셈이다. 아직 대학구조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대학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도 정원감축과 직접 연계시키기는 어렵다. 대학 특성화 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정원감축은 더딘 상황이다. 여기에 날로 심각해져 가는 청년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가 내놓은 고육지책이 현 상황을 초래했다.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은 만능열쇠일까

학령인구 감소와 노동시장에서의 인력수급 불균형을 고려할 때 정부와 대학은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와 대학은 산업수요에 맞춘 학사개편과 정원 조정에서 해결책을 찾은 듯하다. 산업체의 수요를 반영해 핵심 연구․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야한다는, 소위 ‘아카데믹 캐피털리즘’(대학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해결책이다.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은 분명 대학 정원감축과 함께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양질을 노동력을 공급해 국가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것 역시 대학이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따라서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 될 수도 있다. 학생들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교육을 받고 산학협력을 통해 현장경험까지 쌓아 노동시장에 쉽게 진출할 기회를 얻는다. 미국의 스탠퍼드대와 영국의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는 산업체의 요구에 맞는 과목 개설, 기술 컨설팅과 직원 연수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 대학은 연구와 학문 후속세대 양성이라는 대학의 다른 기능도 잘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고등교육제도가 전반적으로 시장과 기업의 수요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전체 대학의 75%를 차지하는 국․공립대학을 통해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와 학문 후속세대 양성을 지원하고 있다. 윤지관 교수(덕성여대 영어영문학과)는 “미국은 국가가 탄탄한 주립대학 등을 통해 기본적으로 기초학문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과 연구자원 확보, 학문 후속세대 훈련을 하고 있고, 명문 사립대학들도 그런 역할을 맡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의 확산에 따라 대학의 학문 연구가 응용분야와 실용분야에만 치우칠 위험을 줄여준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이와 같은 전제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75% 이상의 대학이 사립대학으로 대학운영자금의 대부분을 학생이 부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립대학은 학생들의 수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기초한 구조조정이 실시되면 소위 경제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인문학 등 기초학문에 대한 위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번 중앙대와 건국대의 학사개편에서 취업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아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학과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화여대의 신산업융합대학 역시 융합을 빌미로 단순히 취업률이 낮은 학과들을 한 데 모아놓고 축소해 나가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국립대도 예외가 아니다. 김삼호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도 적을 뿐 아니라 인문사회계열 자체가 사회적으로 도외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문학 대중화사업에 대한 예산을 11% 증액해 67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PRIME 사업에 비해 대학들이 인문학 진흥에 나설 유인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대학의 다른 여러 기능을 보호할 안전장치들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은 본래의 성과조차 얻기 어렵다. 개인의 창의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기초학문은 창의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윤지관 교수는 “인류와 우리 사회의 문화와 지식과 전통을 계승하고 이런 지식, 문화, 전통을 재창조하고 혁신한다는 대학의 기능은 공공재”라고 짚었다.

대학이 자신의 고유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당면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각 대학별로 특성에 따른 기능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혜숙 교수(이화여대 철학과)는 “대학이 지금 당장의 취업 등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초교육과 연구 혹은 산업 특화 등 각 대학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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