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브로콜리 너마저 쥬크박스 뮤지컬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로 뮤지컬 함께 만드실 분 찾습니다!”

두 달 전 스누라이프에 짤막한 모집 글이 올라왔던 뮤지컬 「졸업」이 지난 6일(월)과 7일 두레문예관 공연장에서 막을 올렸다. 지난해 학내 동아리 연극에 배우로 참가한 뒤 다시 무대에 설 날만 꿈꿨다는 이정수 씨(미학과·10)는 평소 푹 빠져있던 인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으로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한 달 만에 대본 초안을 완성한 그는 스누라이프에서 함께 할 사람을 모집했다. 여러 ‘스라퍼’로부터 연락이 왔고 연출, 배우, 연주, 스텝 등 총 23명이 모였다. 정해준 씨(국사학과·09)는 “졸업식 전날 새벽 마지막으로 대학 생활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게시글을 봤다”고 사연을 말했다.

이들은 공간이 부족하고 장비가 열악한 대학 무대에서 MR이 아닌 라이브 연주로 뮤지컬을 세우겠다는 도전을 했다. 교내 식당, 교수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받았고 여전히 비용이 충분치 않아 다른 연극단이 사용했던 무대를 빌려왔다. 무대 오른편에 판자 몇 개로 세션이 들어갈 자리를 겨우 마련했지만 지나치게 가까운 밴드 연주 소리에 대사가 묻히는 바람에 마이크 위치를 수차례 조절해야 했다. 연습기간도 고작 3주였기 때문에 시간도 촉박했다. 연출 황경은 씨(작곡과·11)는 “연기 따로 세션 따로 연습한 뒤에 둘이 함께 합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연습시간이 일반적인 연극 공연의 세 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막을 연 공연에서는 청춘들의 ‘있을 법한’ 사랑과 고민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졸업 학사모를 쓴 주아와 선민은 어색한 듯 벤치에 떨어져 앉아 자신들의 러브스토리를 회상한다. 6년 전 서울대 학보사 선후배 기자로 만난 이들은 서로의 사진이 붙은 티셔츠를 입는 귀여운 커플이었다. 하지만 주아가 교환학생을 떠나고 선민이 모친상을 당하면서 전화만 붙들고 있어야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이별하고 만다. 한편 이 커플과 친구인 지형과 태훈은 먼저 고백을 건넨 발랄한 여자와 2주년마저 깜박하는 무뚝뚝한 남자의 조합이다. 지형은 고시에 번번이 낙방하고 태훈은 진로 고민으로 우울증을 앓지만 둘은 서로를 위로한다.

▲ 주아에게 반한 뒤 갈팡질팡하는 선민과 그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동료기자들이 앙증맞은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단순한 코드와 담백한 가사로 대학생들의 사랑을 받아온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들은 청춘들의 이야기에 잘 녹아들었다. 주아에게 반한 선민은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를 권하려다가 ‘커피를 싫어하면 쌍화차를 좋아하면 어떡해’라고 고민하면서 결국 수줍게 쌍화차를 건넸다. 한편 주아와 이별한 후 감기를 앓던 선민은 곡 ‘유자차’를 부르면서 실제로 따뜻한 물을 부어 유자차를 타먹는다. ‘좋았던 날들이 설탕에 켜켜이 묻’은 유자차 한 잔이 선민을 씁쓸하게 위로한다. 정여진 씨(수의학과·12)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은 단순한 기타 코드를 쓰고 일상적인 가사로 노래하는데도 모두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고 강조했다.

한편 극에서는 학생 사회의 중심에서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청춘들의 모습도 그려졌다. 중반부에 인물들은 2011년 법인화가 촉발한 학생들의 본부 점거를 취재하면서 학생들과 대화하지 않는 본부에 분개하며 기자 수첩을 내던졌다.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을 표현한 노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의 가사 ‘좀 말같은 말을 들어보고 싶어’에는 본부를 향한 주인공들의 분노가 섞인 외침이 담겼다. 또 ‘좀 말같은 말을 해보고 싶어’라며 중립을 지키며 양측의 말을 되풀이하기만 하는 자신들의 위치에 답답해했다.

▲ 뮤지컬 「졸업」은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배우의 연기가 호흡을 함께 하며 진행됐다. 이들은 이번 공연을 한마디로 '위대한 협엽'이라고 말했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이 청춘들의 고민과 아픔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채 극은 막을 내렸다. 인물들은 모두 학부를 졸업하지만 그들의 어려움은 졸업하지 못한다. 고시에 번번이 낙방해 로스쿨을 가겠다고 결심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고, 취업이 어려워 원하지 않는 언론사에 이력서를 낸다. 다만 배우들이 ‘울지 말고 잠이 들면 아침 해가 날아들 거야 알잖아’와 같이 위로를 건네고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라고 당부하면서 극이 마무리될 뿐이다. 이정수 씨는 “아픔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아픔이다”며 “뭔가를 더 말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졸업」은 편안함을 주는 공연이었다. 배우들은 공연에 어울리지 않는 옅은 화장에 평소 옷차림 그대로 연기를 하고, 세션은 직접 귀로 듣고 음을 딴 악보로 나긋나긋한 연주를 펼쳤다. 관객들은 이 날 술잔을 기울이며 소소한 넋두리를 듣듯, 길을 오가며 심심한 소문을 듣듯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빌려와 풀어낸 그들의 청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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