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고통이 무고하다고 생각했다. 몹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날 무고한 고통을 받는 이들을 보고 슬퍼했었지만 그날 느꼈던 연민의 감정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내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미안하다는 감정에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 일에 ‘책임’을 느낀다고 한다. 이 일에는 규명해야 할 진상들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밝혀야 할 진상에는 선장을 포함한 선원, 해경, 관료, 국정원 그리고 대통령의 행적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규명되어야 하는 진상은 명백해 보였고, 진상이 밝혀진 이후 해결되어야 할 문제 중 내가 혹은 그 사람들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은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일어나선 안 되는 이 참사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양한 원인이 제기되었지만 누군가가 선장에게 혹은 유병언에게서 멈추었듯이 나는 신자유주의쯤에서 멈추었다. 선장 혹은 유병언에게 멈춘 사람은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할 수 없는 큰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고, 내가 바꿀 수 없는 무엇이라 생각했고, 거기서 생각을 멈추었다.
생각은 멈추었지만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은 계속되었다. 나는 왜 그들을 불편하다고 느낄까? 책임을 느끼는 그들은 이 문제가 세월호 유족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나의 문제고 우리의 문제라고 말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진상을 반드시 규명하겠다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도 이성적으로는 그들의 고통이 훗날 내 고통이 될 수도, 그 고통이 발생하게 된 구조에 내가 책임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겠다. 고통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머리로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연민의 감정이 미안한 감정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느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패하고 있다고 여기며 냉소하기도 했다.
어쩌면 냉소는 편해지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구조적 문제라고 냉소하면서 점점 세상의 문제에 벽을 쳤고, 그 속에서 안전한 나의 일상을 구축할 수 있었다. 냉소하면서 내 현실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부당한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비판하면서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당장 내일 처리해야 하는 내 삶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고, 나의 무고함에 대해서도 생각했지만 불편함이 해소되진 않았다.
만약 이 불편함이 나에게 미안함으로 나아가기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미안함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타인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겨 책임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세상은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비리와 구조적 문제가 남아있는 것만큼이나 많은 문제가 해결됐음도 잘 안다. 불가능한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않는 한 남아있는 문제가 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에 초점을 맞추고 냉소하는 나와 달리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어온 역사를 바라보며 더 낫게 실패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니 바뀌지 않고, 바뀌지 않으니 바꿀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