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 [취재] 고려대 안산병원 주최 4·16 세월호 침몰 사고 1주기 공동 학술 심포지엄

▲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한창우 센터장이 센터의 설립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 고려대 안산병원 홍보팀

1797년 나폴레옹 군의 군의관이었던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 Jean Larrey)는 부상자들을 빠르게 수송하기 위해 마차를 이용한 초기 형태의 구급차를 도입하고 세계 최초로 환자 중증도 분류를 통해 응급 구급체계를 구축했다. 응급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라레 이후 응급의학은 전문 의학분야로 확대됐으며, 전쟁과 대형사고 등 재난 상황에서 효율적 의료대응을 연구하는 재난의학으로까지 확대됐다. 응급의학이 신속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목표로 한다면, 재난의학은 응급의학에 최대 다수에게 효율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세월호 침몰 이후, 재난의학과 관련된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이에 지난 9일(목)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4․16 세월호 침몰 사고 1주기를 맞아 단원재난의학센터와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의 공동 학술 심포지엄이 있었다. 고려대 안산병원 차상훈 병원장의 개회사로 시작된 이날 심포지엄은 2개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단원재난의학센터를 중심으로 4․16 세월호 침몰 사고 백서 발표와 함께 재난 발생 시 의료기관의 역할과 지역사회 응급의료 대응체계 구축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진행된 두 번째 세션에선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직원들의 세월호 사고 유가족 트라우마 치료 경과보고와 재난 피해자에 대한 심리치료 사례 발표가 있었다.

 

유관기관 사이의 소통을 통해 지역별 재난대응체계 구축해야

 

한국인들은 90년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그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재난을 끊임없이 겪어왔다. 문성우 교수(고려대 응급의학과)는 이러한 ‘재난’을 의학적 측면에서, 현재 가용 가능한 의료자원에 비해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사고로 정의하고, 이 중 대부분의 재난이 ‘다중손상사고’(Mass-Casualty Incident, MCI)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다중손상사고란 재난 중에서도, 동시에 다수의 환자가 발생하는 사고를 말한다. 따라서 다중손상사고 발생 시 대응기관마다 재난 유형 및 지역별 의료대응 시나리오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한정된 의료자원으로 인해 빠르고 효과적인 의료 조치가 불가능하다. 문성우 교수는 “작년 고양터미널 화재,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등은 다중손상사고의 한 사례”라며 “당시 초기 응급의료 대응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아 인근 의료기관 간 정보 전파, 환자 분류와 분산 후송 등의 과정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다중손상사고는 초기에 신속한 대응에 실패한다면 막대한 피해를 유발하는 재앙으로 확대된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통합재난대응시스템이 없었던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 나흘이 지나서야 주민대피방송을 실시했다. 정부가 24시간 내 초기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체르노빌 주민의 90%가 암으로 사망하고 40만명이 피폭 후유증을 앓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에 효과적인 재난 의료대응을 위해서 국가단위의 중앙 재난대응체계가 반드시 요구된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이 전국가적 대응을 요하는 대형 사고의 경우 중앙정부와 유관기관 간 대응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으면 효과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재난에는 세월호 사고처럼 대형사고 뿐만 아니라 침수피해, 공단화재 등 광역 및 지역단위의 의료대응을 요하는 사고도 있다. 따라서 중앙 재난대응체계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지역거점별 의료대응체계 구축의 필요성 또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르면 재난 발생 시 재난통합관리와 긴급구조는 해양사고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방방재청이 지휘하게 되며 현장 의료지원은 현장응급의료소가 담당한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은 피해자 구조와 사고 수습에 전문화돼 있고, 특정 지역에 대한 의료자원과 특성 파악이 힘들어 지역별 통합의료체계를 운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고 발생 시 현장응급의료소는 지역 보건소장이 지휘하게 되는데 인적 자원이나 의료 자원이 부족한 현실여건상 보건소장이 재난 현장에서 모든 의료 상황을 통제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홍재 안산 단원보건소장은 “실제로 재난이 발생하면 훈련이 돼 있지 않아 응급처치와 후송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민간 자원봉사자 통제도 힘들어 사고지역은 아수라장이 된다”며 “응급 상황을 규모가 작은 지역 보건소에서 통제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역거점별 통합대응체계를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단원재난의학센터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설립된 단원재난의학센터는 재난의학과 재난예방 연구뿐 아니라 안산지역의 재난 컨트롤 센터의 역할 또한 수행하고 있다. 안산은 공단이 밀집해 있어 각종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이에 단원재난의학센터에서는 유관기관과의 이해 증진을 위해 소통의 장을 만들고, 화학재난에 따른 통합대응 시나리오 구축에 힘쓰고 있다. 문성우 교수는 “올해 고려대 안산병원을 포함한 4개 의료기관과 안산소방서, 안산시와 지역사회 자원봉사 단체가 함께 재난대비 합동 모의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효과적인 시나리오를 연구해 갈 것을 약속했다.

신철 교수(고려대 호흡기내과)는 지역거점별 재난대응체계 구축과 더불어 일반 시민들에게 온라인을 통해 재난의료 대응방안을 교육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영국의 영연방 시스템을 사례로 들며 “영국에서는 시민이 국가와 지역별로 온라인으로 이틀간 교육 후 증명서를 발급 받으면 누구나 재난의료시스템에 참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의료 봉사자의 체계적 관리와 교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생존자 및 유가족 심리치료, ‘외상 후 성장’(PTG)으로 극복해야

 

재난에 대비하는 지역별 의료대응체계 마련도 시급한 문제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재난 피해를 체계적으로 수습하는 것 또한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특히 생존 피해자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체적 부상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진단과 치료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심리적 트라우마는 사고 즉시 발견되기 어려우며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인 관심과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없다면 치료가 어렵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이후로 심리치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트라우마 치료 분야에서도 정부 차원의 통합적 공공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국가보훈처 산하 국립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센터는 상이군인에 대한 심리치료와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9․11테러 이후 피해자와 자원봉사자 등을 위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까지 확대 운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심리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도 부족하다. 재난 발생 시 피해자 구조와 경제적 피해 수습에만 급급했던 한국 사회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에서야 재난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료와 극복 관련 연구에 관심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년 5월 보건복지부와 경기도 산하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정식으로 설립돼, 생존자와 유가족의 심리치료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게 됐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는 다양한 심리 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세월호 사고의 피해자들의 심리 치료와 관련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여타 재난에 비해 심리치료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다수의 고등학생을 포함한다는 것, 두 번째는 특정지역에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것, 세 번째는 특정 지역중심 사고로 주민 간 간접 트라우마 노출 경향성이 높다는 것이다.

먼저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다수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생으로, 사고의 생존자와 간접피해자 대부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기의 학생로 구성돼 있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김수진 부센터장은 “학업과 대인관계로 이미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청소년에게 세월호 사고는 너무나 압도적인 분노감과 사회적 불신을 가져다줬다”고 지적했다.

또 유가족들은 지속적인 언론 보도로 사생활이 노출돼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슬픔을 극복하려고 해도 한 다리만 건너면 전부 아는 사람들인 작은 동네에선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김정렬 가족심리지원팀장은 “밥 짓는 것도 죄스러운 것이 유가족들의 현실”이라며 “환자들이 24시간 슬퍼야 하는 것은 아닌데 항상 외부에 노출돼 있다 보니 극복단계로의 감정 이행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리적 고통은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사고 1주기를 맞이한 현재에도 심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에 의한 소화불량과 근골격계 질환으로 일상생활과 직장 복귀가 지연되고 여기서 2차 스트레스가 유발된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면 분노와 슬픔이 삶 자체에 대한 불안감으로 확산된다. 김정렬 팀장은 “피해자들이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술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부부, 부모관계 악화 등 2차 피해로 확산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는 외상 후 성장(PTG, Post Traumatic Growth)을 목표로, 유가족들의 심리 치료를 돕고 있다. 외상 후 성장이란 사고에서 외상을 받은 뒤, 회복력을 통해 이뤄지는 심리적 성장을 말한다. 센터에서는 반찬지원서비스와 안마서비스에서부터 학생들의 미술치료, 부부관계 회복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 재취업을 위한 직능교육까지 제공해 유가족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재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한창우 센터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 후 성장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심적 상처를 회복함으로써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단순히 사고를 직접 겪은 피해자 혹은 유가족에게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신철 교수는 2001년부터 14년간 안산주민 5,000여명을 대상으로 질병 및 사회문제에 대한 스트레스와 삶의 질 정도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왔다. 그는 세월호 사고를 기해 과거서부터 수집해왔던 안산 및 경기도 주민들의 불면증, 스트레스, 삶의 질 지표 데이터를 공개했다.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들이 거주하는 고잔1동, 와동, 선부 3동의 주민은 사고 피해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스트레스 지수는 사고 전후 1달 이후 2.5포인트에서 3.8포인트로 치솟았고 그 이후에도 그 여파가 지속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원고 주변 3동뿐 아니라 나머지 안산지역과 주변 경기도 거주 주민들의 스트레스 역시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에 대해 신철 교수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당사자 뿐 아니라 주민들의 우울증과 스트레스 지수, 불면증이 증가했다”며 지역사회 전체를 피해자로 판단하고 통합적인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창우 센터장은 이에 대해 “앞으로 세월호 심리치료 지원사업은 당연히 유지하되 그와 더불어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정책 개발과 교육훈련 방법 연구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며 발표를 마쳤다. 재난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고, 아무리 대비를 한다 해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고다. 그러나 지역거점별로 통합의료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지역사회 단위의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재난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마음 속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치료적 동맹’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도 타인과의 유대감을 통해 극복할 수 있듯이 재난도 의료 관계부처 간 통합대응을 통해 인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피할 수 없는 경험을 줬다.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유기적인 통합대응을 줄기로 하는 재난의학에 대한 연구가 가속화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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