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민선 지방자치 20년,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주소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재정여건은 광역․기초단체를 가릴 것 없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줄곧 중앙정부가 징수하는 국세와 지방정부가 징수하는 지방세의 비율은 8대 2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세 비율을 올려달라는 지자체의 요구는 몇 년째 묵살됐다. 재정적 측면에서 지금의 지방자치는 ‘2할의 자치’인 셈이다.

◇혼자선 공무원 월급도 못 주는 지방정부=지자체 전체 예산은 크게 중앙정부가 지원해주는 국가보조금 및 지방교부세와 지방정부가 벌어들이는 지방세, 세외수입 등의 자체 세입으로 구성된다. 자체 세입과 세출 간에 생기는 격차에 대해 중앙정부가 재정 지원으로 메꿔주는 식이다. 문제는 자체 세입은 해마다 줄어드는데 세출은 증가하다 보니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4년 전국 244개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4.8%다. 활동에 필요한 자금 중 지자체가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한 자금의 44.8%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이는 2013년보다 6%P 하락한 수치다.

전국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그중 78개 지자체에서는 자체 세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2013년 38곳이었던 것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심지어 재정자립도가 10%에도 못 미치는 지자체도 59곳(24.2%)이나 된다.

◇문제는 보편적 복지정책?=지자체 재정은 태생적으로 세입과 세출이 균형을 이루기 어려운 구조다. 수입원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약 8대 2인 반면 지출부담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4대 6의 비율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써야 할 돈은 많은데 거두는 세금은 그에 비례하지 않으니 재정난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지방재정 상황이 악화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1996년도에 60%를 웃돌던 재정자립도가 지난해에는 45%로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국고보조사업을 지목한다. 무상보육(영·유아 보육료지원),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급여 등 정부와 지자체가 비용을 분담하는 국고보조사업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복지비용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명동 교수(성신여대 경제학과)는 “국고보조사업이 지자체에 재정 부담을 전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엔 누리과정 확대에 따른 예산분담률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충돌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누리과정(만 3~5세 아동 보육비 지원사업) 확대를 공약했다. 하지만 국회는 누리과정에 예산을 단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고, 그 비용은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당시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누리과정 예산으로 시 교육청이 5,400억원을 새로 부담하게 되면서 그만큼 예산이 부족해 학교현장이 붕괴됐다”며 “국가가 주도해 시행하는 사업인 만큼 대통령과 국회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25일 여야가 5,0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갈등이 봉합됐다. 하지만 여전히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분담 규정이 없어 비슷한 갈등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지자체의 재정 상황과 복지수준 등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부는 차등보조율을 적용해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이 제도가 지자체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리과정에 사용되는 영유아 보육료의 경우 지자체의 재정자주도와 사회복지비지수를 이용해 차등적으로 보조율을 결정한다. 재정자주도가 85% 이상이고 사회복지비지수가 20% 미만인 지자체에는 기준보조율보다 낮은 인하보조율을 적용한다. 반면 재정자주도가 80% 미만이고 사회복지비지수가 25% 이상인 경우 기준보조율보다 높은 인상보조율을 적용한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 달리 차등보조율 제도가 지자체의 재정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차등보조율 산정을 위해 사용되는 통계에서 같은 구간에 속하면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보조금을 편성할 당시 전체 244개 지자체 중 240곳의 재정자주도가 80% 미만 구간에 속했다. 하지만 이 240곳의 재정여건이 모두 비슷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광명시의 경우 재정자주도가 76%, 사회복지비지수가 25%이고 동두천시의 경우 각각 56%, 24%다. 둘 다 재정자주도가 80% 미만이긴 하지만 동두천시 재정이 20%P나 더 열악하다. 그러나 사회복지비지수는 1%P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동두천시는 광명시와 달리 추가보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육료뿐 아니라 양육수당이나 각종 연금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된다. 동두천시청 김재규 예산팀장은 “사회복지비지수의 차이가 인상보조율의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지자체 간 혜택이 불평등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의 재정여건을 알려주는 재정자주도가 획일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사회복지비지수의 미세한 차이가 보조율을 결정하는 셈이다.

일각에선 지자체의 허술한 재정운영이 재정난을 유발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손희준 교수(청주대 행정학과)는 “지자체 단체장의 선심․전시 행정이 재정난을 가속화시켰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지자체 부채가 이미 100조원을 넘어섰다. 선거를 겨냥해 전시성․선심성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들였거나 호화 청사 건립 등을 통해 예산을 낭비한 지자체가 많다. 850억원을 들여서 만들었지만 개통도 못한 인천 월미은하레일이나 건설비 80억원에 유지․관리에만 연간 2억5,000만원이 소요되지만 하루 이용객은 50명에 불과한 광주세계관광엑스포 주제관이 대표적이다. 전라남도 역시 2010년부터 국제자동차경주대회(F1)를 유치해 지난해까지 행사를 4번 치렀지만 남은 것은 1,910억원의 부채뿐이다.

◇세제구조를 개혁해야=정부는 지자체의 방만한 경영이 문제라며 선심성 사업을 남발하는 지자체에 대해 교부세를 줄이겠다며 으름장이다. 이에 예산절감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3년 6개월 만에 재정건전성을 회복한 성남시는 벤치마킹 사례로 꼽힌다.

2010년 당시 성남시는 청사 건립에만 3,400억원을 쏟아 부어 도로건설이나 공원확장 공사에 사용할 예산조차 없었다. 성남시는 막대한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과감한 사업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와 함께 공무원 복지비를 축소하는 등 다양한 자구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성남시는 2013년 말에 부채를 탕감했고, 최근 2년간 전국 기초지자체 재정자립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세제구조 자체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정문제를 지자체의 자율적 노력에만 맡기는 방식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국도지사협회 김승연 책임연구원은 “지방세 비중을 늘려 세입을 충분히 확보하고 국고보조사업 운영방식을 개편해 세출은 줄여 지금의 기형적인 세입․세출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과 같이 지방자치가 성숙한 나라들의 경우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6대 4 정도다. 지자체가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돼야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역주민의 필요를 반영한 사업을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누가 더 중앙정부 인사와 가까운지에 따라 분배받는 예산이 달라지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자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자체들도 지방정부의 자체적 노력만으로 재정난을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2014년 지방재정 전략회의에서 최우수 모범사례로 선정됐던 부산시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시청 김성호 자치행정담당관은 “올해부터 지방부채 발행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효율적인 예산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산시의 재정자립도는 매년 하락하고 있다”며 “보다 큰 틀에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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