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민선 지방자치 20년,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주소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깊은 불신과 무관심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1년 「매일경제」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방의회 출범 20주년을 맞아 리서치월드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방의회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는 물음에 응답자의 69.1%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58%는 지방의회가 주민 의견 대변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거의 못하거나 전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방의회가 주민들에게 외면당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지방의회 본연의 지위와 역할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양한 주민 의견을 대표하기보다는 소수 기득권자의 이해관계만을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방의회발전연구원 김상미 원장은 “기득권에게는 지방의회가 주민들의 불신과 무관심을 받는 게 유리하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주민들이 지방의회에 등 돌리게 된 까닭은=주민들이 지방의회를 불신하게 된 것은 일부 의원들의 부정부패와 실정의 책임이 크다. 2011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73.5%가 지방의회의원의 청렴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 문제는 해마다 되풀이되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제6대 의회 임기를 채 6개월도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대전시의회 의원들이 중국으로 관광성 해외연수를 추진해 빈축을 샀다. 반복되는 지방의원들의 뇌물 수수 및 횡령도 ‘지방의회=부패의 온상’이라는 암묵적 공식을 주민들의 뇌리에 심어놓았다.

하지만 지방의회의 자정노력은 부족하다. 의회 내의 자정 기관이 사실상 ‘개장휴업’ 상태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6월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뇌물 수수와 횡령 혐의로 구속됐을 때 지방의회는 윤리위원회를 열고 징계 조치 등으로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윤리위원회를 열지 않았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안영훈 연구원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윤리위원회 처벌규정을 만들어 징계하라고는 했지만 명확하게 지방자치법에 명시가 안 돼 있어 이리저리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도 비판을 받는다. 임도빈 교수(행정대학원)는 “윤리위원회에서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다”며 “의원들도 자기들 이해관계가 있으면 서로 감싸주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지방의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지방의원들은 투표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의원직의 자격요건은 아니다. 하지만 임기를 시작하면 지방행정 전반을 다뤄야 하므로 업무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현재 지방의원은 의회 사무국에 있는 관련 공무원으로부터 보좌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보좌관들의 인사권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쥐고 있기 때문에 보좌관들이 단체장의 눈치를 보느라 의원들을 전적으로 돕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쟁으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경기도의회의 경우 ‘경기도 기업규제 신고고객 보호 서비스헌장 조례안’이 “훌륭한 민생 법안”이라는 여야의 호평 속에서도 부결됐다. 이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금종례 의원이 그동안 야당이 추진해온 조례를 반대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의원들이 전문성을 함양하고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이 부족한 데는 구조적․제도적 원인이 있다. 대표적으로 정당공천제가 꼽힌다. 정당공천제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전국 규모의 중앙 정당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중앙당, 특히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실상 지방의회의 의원 공천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의원들이 중앙당의 방침을 거부하기 어렵다. 지방의원들 사이에서 ‘당론의 머슴’이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 결과 지방의원들은 주민들의 목소리보다는 공천권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중앙정당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도빈 교수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간에 암묵적으로 줄서기가 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원들이 자율적으로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고 짚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권한이 집중돼있는 ‘강시장-약의회 구조’ 역시 지방의회의 자율성을 제약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인사권과 예산편성권 등을 독점한다. 반면 지방의회의 권한과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면 이에 대한 의회의 제재 권한은 미약한 실정이다. 예산이나 행정 감사 관련 권한도 제한돼 있어 ‘형식화된 감사’라는 비판을 듣기 일쑤다. 김상미 원장은 “예산 편성이 지방의회의 권한이 아니다보니 지방의회는 크게 감액이나 증액을 할 수가 없고, 행정사무감사의 경우에도 시정조치를 요구할 뿐이지 의회가 제재할 수 있는 큰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결국 고칠지 안 고칠지 여부는 행정 당사자에게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방의회의 지방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지방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의 눈치를 보게 되고, 의회의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견제 기능이 취약해진다.

결국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온다. 의회의 자율성이 떨어지다 보니 의원들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의회가 제 구실 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은=지방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 지방의회에 대한 중앙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찮다. 반대하는 측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 해도 지방의회에 대한 중앙정치의 영향력이 여전히 암묵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도빈 교수는 “공식적인 제도를 없앤다고 해도 의원들은 자신들의 당색을 암묵적으로 유지할 것이고 유권자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질이 부족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성이 교수(경희대 정치외교학과)는 “공천심사과정을 통해 자질이 부족한 후보가 걸러지는 기능도 있는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그런 역할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현행 하향식 공천을 지방의회 내 당원들과 주민들에 의한 상향식 공천으로 전환하는 안도 제시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가진 권한의 일부를 지방의회에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강시장-약의회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이 독점하고 있는 의회 사무국 직원 인사권을 의회가 독립적으로 행사하게 하자는 것이다. 김상미 원장은 “의회 사무국 직원들의 인사권이 단체장에게 있는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며 “승진 여부 권한이 의회에 넘어가면 공무원들이 단체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방의원들을 더 잘 보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의정비와 보좌관 수를 현실화할 것을 요구한다. 관악구의회 민영진 의원은 “의정활동비를 어느 정도 올려줘야 젊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한 푼이라도 구민의 세금을 절약하면서 전문성을 갖고 감시감독기능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임도빈 교수는 “지방정부는 특권을 가진 자리가 아니라 내가 내 돈 들여서 힘든 것을 각오하고 하는 곳이 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의회 안에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의회의 연구기능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윤성이 교수는 “국회처럼 입법지원 기관 등 의원들이 전문성 있는 사람들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활동에 대한 감시․감독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의회의 자정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윤리위원회의 강제력을 법으로 명시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이와 함께 외부로부터의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주민소환제도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귀 기울일 만하다. 주민소환제도는 주민들이 직접 선출직 지방공무원이나 의원들을 임기 중에 해임하고 다시 선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이세영 전문위원은 “현재 지방의원을 주민이 소환하려 하면 100분의 20 정도의 주민들의 연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조건을 낮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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