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의 봄을 기다리며
관악의 봄을 기다리며
  • 전근우 부편집장
  • 승인 2015.04.1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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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근우 부편집장

해마다 미달되는 총학 선거 본투표율

총학의 존재이유마저 질문받는 현실에서

무관심한 유권자의 마음부터 분석해야

학생사회 바로 설 실마리 보일 것

이번 제57대 총학선거도 어김없이 연장투표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연장투표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말이다. 일간지에 따르면 총학선거가 투표율 미달로 연장투표 혹은 재선거를 치르는 일이 2003년 이후로 계속되는 중이라고 하니 햇수로만 13년째인 셈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세월동안 학생사회는 총학선거를 성사시키기 위해, 즉 선거 성사 조건인 투표율 50%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연장투표는 물론이거니와, 투표소에서 꽃을 나눠주거나 작년 스누라이프에서 논란이 된 ‘문자 세례’까지 학생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수단은 다양했고, 고민 또한 치열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둬 본투표에서 성사되지 못한 선거가 연장투표에서 간신히 성사되곤 했다.

돌이켜보면 본래 50%라는 수치는 과반수를 넘겼다는 의미에서 총학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50%라는 투표율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유인책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선거를 성사시키기 위한 학생사회 주체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학생사회를 잘 대표할 수 있는 수단은 총학이므로, 당면한 상황에서 총학보다 효과적인 시스템이 마땅히 없는 이상 총학을 세우기 위한 여러 노력은 타당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여러 가지를 탐구할 기회를 가진다고 본다면, 총학이라는 제도 외의 새로운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대학교라는 장(場) 또한 그러한 것들을 도전적으로 펼쳐보이는 공간이다.

이러한 점에서 ‘학생사회를 대변하는 기구는 총학이다’라는 전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위 전제는 오히려 총학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 학내 거버넌스에 학생이 참여하는 통로를 제약하고, 총학이 성사되었을 때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고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섣불리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고 말하고 싶다. 연장투표로 위시되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총학이 연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학생사회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 원인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지적돼 온 학생사회의 위기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학생들의 무관심이고 둘째는 총학이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원인은 피상적이고 모호하기에 모두의 공감을 얻기는 하지만 해법을 탐구할 방향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총학이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무관심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즉, 무관심의 층위를 분석적으로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정말 학생사회의 대표를 선출하는데 관심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총학이라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총학에 대한 관심도 투표에 참여할 의지도 있지만 출마한 선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원인이 학내 구성원의 무관심에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도는 학생사회 어느 한 주체만의 노력으로는 시행하기 힘든 일이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다. 다만 총학 선거가 십수 년째 연장투표를 진행하고 있고, 학생사회의 위기란 단어를 식상하게 만든 그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학내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는 물론이거니와 『대학신문』을 비롯한 학내언론이 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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