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문화콘텐츠 심의의 문제점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지난달 2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에 차단 조치를 내렸다. 방심위는 레진코믹스에 올라오는 웹툰 중 성기 노출을 비롯해 음란물로 볼 수 있는 요소가 있어 사이트 전체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해당 조치가 사전 경고나 소명 절차 없이 이뤄졌다며 성인만화에 대한 과잉 규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방심위는 사이트 차단을 3시간만에 해제했으며 9일(목) 재심의에 들어갔고, 오는 16일 레진코믹스의 진술을 듣겠다고 밝혔다.

◇방심위란 무엇인가=레진코믹스에 차단 조치를 취한 방심위는 2008년 5월 출범한 방송·통신콘텐츠 심의기관이다. 방심위는 지상파, 케이블을 비롯한 방송콘텐츠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망 콘텐츠를 심의한다. 방심위는 9명의 심의위원들로 구성되며 그 중 대통령이 직접 위촉한 3인이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을 맡아 심의를 주관한다. 나머지 3인은 국회의장이, 다른 3인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추천해 위촉된다.

방심위는 이름이 비슷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달리 안건으로 올라온 모든 방송과 인터넷 콘텐츠 내용의 불건전함을 정성적 측면에서 심의한다. 예를 들어 TV 예능 프로그램에 특정 회사 상품을 홍보하는 간접광고가 들어갔을 때 방통위가 전체 방영 시간 중 광고시간을 정량적으로 심의하는 반면 방심위는 해당 광고의 내용이 시청자에게 적절했는지를 심의한다.

방심위의 심의 업무는 상정된 안건이 소위원회에서 의결되고 그 중 논란이 있는 안건만 전체 회의로 회부돼 심의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방송 및 정보통신망 콘텐츠와 광고는 각각을 담당하는 소위원회에 상정되고 소위원회는 정기 회의를 통해 안건을 심의한다. 소위원회 심의 결과는 방송통신사업자에게 통보되지만, 소위원회 내에서 논란이 있거나 다른 위원의 의견이 필요한 안건은 전체 회의에 상정돼 최종 결정된다.

◇일관성 없는 심의와 문화콘텐츠의 위축=하지만 위와 같은 방식의 방심위의 심의로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해지고 그 수도 늘어나는 문화콘텐츠를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출범한 지 7년이 지난 현재 문화콘텐츠의 다변화로 심의 대상이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심위의 심의 인원수와 심의 기준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신심의를 놓고 봤을 때, 방심위 출범 2년 후인 2010년 전체 안건은 총 52번의 회의에 걸쳐 4만5,758건을 기록했다. 회의당 약 879개 안건을 심의한 셈이다. 4년 후 통신심의 안건만 놓고 봐도 14만421건을 기록했다. 전체 회의 수가 늘었음에도 회의당 통신 심의 안건 수는 1,755건으로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윤성옥 교수(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는 “심의 안건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심의위원은 9명 그대로다”며 방심위 심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방심위는 회의 한 번에 최대한 많은 안건을 처리하는 부담을 안았고, 이는 유사한 수많은 사례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명확한 판단기준을 만들어 심의를 하는 동시에 방심위의 규모를 키워 늘어난 심의안건을 심층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방안이 제기됐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방심위의 불건전 콘텐츠 판단 기준은 구체적이지 않으며 수많은 문화콘텐츠를 면밀히 심의하기엔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다.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인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현재 방심위의 판단기준은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뿐”이라며 “방심위는 현재 불법·합법도 아닌 불분명한 기준으로 문화콘텐츠를 심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방심위는 무료 파일 공유 사이트 ̒4shared̓에 저작권이 있는 노래, 영화가 올라가 있어 불법 다운로드가 가능하다며 차단 조치를 내렸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그루브샤크’도 같은 이유로 차단당했다. 이는 최신 개봉 영화나 인기가요를 포함해 저작권이 있는 파일을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 다른 유사한 파일 공유 및 스트리밍 사이트에 대한 처분을 완전히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섣부른 판단의 결과였다. 레진코믹스 차단 논란 또한 성인 대상 웹툰을 방심위가 포르노그래피라고 단정 짓는 등 예술활동과 음란물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윤성옥 교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방심위의 심의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심의결과의 일관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2012년 헌법재판소가 판단기준을 불법정보에 한해 명확히 해야 한다고 판결했음에도 방심위가 지금까지 지키지 않은 것에 따른 결과다.

전문성 증대를 위해 방심위의 규모를 키우는 방안도 결과적으로 문화콘텐츠에 대한 행정심의 권한만 비대해진다는 비판이 있다. 김재영 교수(충남대 언론정보학과)는 “방심위의 규모가 커지면 결국 행정심의의 권한만 더 커지게 된다”며 “행정적인 조치의 확대는 문화콘텐츠의 다양성을 제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분권화를 통한 해결 방안의 모색=방심위의 심의가 당면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선 분명한 심의기준을 마련해야 함과 동시에 방심위의 심의량을 분담해야 한다. 이를 포괄하는 방안으로 자율심의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자율심의는 중앙 심의기관이 통신, 방송 등 문화적 범주에 대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면 각 콘텐츠의 제작자와 전문가가 모인 민간 협회에서 가이드라인에 따라 심의기준을 마련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심의하는 개념이다. 미국의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나 영국의 ASA(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를 비롯한 해외 각국에서는 자율심의에 따라 콘텐츠를 심의하고 있다. 법무법인 양재의 김기중 변호사는 “현재처럼 행정심의기관에 콘텐츠 심의 권한이 몰릴 경우 콘텐츠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자율심의는 콘텐츠 생산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게 하고 일정한 범위를 벗어날 경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심의는 방심위의 심의안건의 분담과 콘텐츠생산자 중심의 심의기준을 통해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심의를 가능케 한다. 김재영 교수는 “방심위는 민간심의체에 심의를 맡기고 대신 큰 기준만 제시해 업무 부담을 덜게 된다”며 “심의 기준에 있어서도 콘텐츠생산자는 나름의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게 돼 명료한 심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두 주체 사이에 어느 정도 무게중심이 마련돼 명확하지 않은 심의로 인한 문화콘텐츠 위축 문제를 개선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자율심의를 통해 콘텐츠심의의 분권화를 달성하기 위해선 행정기관 심의체와 각 문화콘텐츠 분야의 민간심의체가 각자의 심의 범위를 합의해야 한다. 행정심의가 민간심의체에 지금처럼 강한 영향을 미치게끔 업무의 균형이 분배될 경우 당면한 문제 해결이 요원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기중 변호사는 “자율심의가 논의되기 전에 행정기관의 심의가 어느 범위까지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자율심위의 범위가 선결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우리나라 웹툰계에선 자율규제를 통한 심의의 분권화를 실험하고 있다. 웹툰 자율규제는 한국만화가협회가 방심위와의 양해각서를 통해 심의를 위탁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박인하 교수(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전공)는 “자율규제를 통해 웹툰계는 현재 창작자와 사업자의 기준이 반영된 심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규제는 비록 완전한 자율심의는 아닐지라도 이후 법제화와 정부와의 합의를 통해 심의의 분권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재 방심위의 문화콘텐츠 심의가 명확한 규정이 없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제2의 레진코믹스 논란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생산자 중심의 심의기준 마련과 심의의 분권화가 이뤄져 문화콘텐츠의 다양성이 보장받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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