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거리에 가다 ④ 행운동 벽화거리

서울대 주변엔 유별난 거리가 많다. 고시생을 비롯해 서울대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신림동 고시촌과 새로운 만남의 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샤로수길은 서울대 구성원들과 삶을 함께 나누고 있는 터전이다. 낙성대 인헌시장과 행운동 벽화거리처럼 지역민의 참여로 새로운 명소로 거듭난 거리도 있다. 『대학신문』은 서울대 주변의 거리들이 과거엔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했는지, 현재 이 거리는 서울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① 서울대입구역 샤로수길 ② 낙성대 인헌시장 ③ 신림동 고시촌 ④ 행운동 벽화거리

▲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사이 숭실대 방향으로 삼각형 모양의 지형이 까치산에 기대고 있다. 남부순환도로 접경지를 제외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원룸빌딩과 상업시설이 급경사 위에 형성돼 있는 이곳은 행운동이다. 그런데 최근 행운동 거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조용하던 동네 골목골목에 벽화가 그려지고 외부 사람이 찾아와 벽화로 수놓인 거리를 구경한다. 또 주민을 대상으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시행되면서 행운동 주민들은 스스로 마을의 행복을 찾고 있었다.

원룸촌에 불어든 변화의 바람

행운동이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사당동 윗마을이라는 뜻으로 원당이라고 불렸다. 원당은 낙성대역에서 사당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부근의 마을로 원댕이라고도 했으며 남부순환도로를 통해 남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까치고개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후 봉천6동에서 행운동으로 명칭을 바꾸며 행운동 주민센터는 “참신하고 느낌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늘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전통적으로 주거기능을 담당해 온 행운동의 거리는 낮과 밤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급경사에 위치한 원룸촌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로 골목길이 어지럽게 나있다. 낮에 아이들이 뛰어놀며 정겨운 느낌을 주는 이 거리는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섣불리 지나가기 어려운 곳으로 변한다. 행운동에 거주하는 김순자 씨(59)는 “밤만 되면 집밖에 나가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남부순환도로와 근접한 거리에는 원룸촌 주거지를 떠받치는 형상으로 상업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단조롭고 휑한 마을을 사람들이 북적이도록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행운동으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동네에 들어선 5개 카페 주도로 ‘카페골목’을 조성하려던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들어서기로 한 카페들이 연달아 다른 업종으로 변경되면서 카페골목 조성 계획은 무산됐다.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행운동에서는 상인과 주민을 중심으로 거리를 특색있게 만들고 골목상권을 활성화하는 많은 사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범죄예방환경설계인 셉테드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안심다락방 사업, 마을공동체가 주도한 벽화거리, 행운동 주민센터 옥상텃밭 등은 최근 3년 동안 행운동에 불어든 변화의 바람을 체감하게 하는 새로운 시도들이다.

행운동에서 발견하는 역동적인 움직임

2014년 시행된 범죄예방환경설계인 셉테드 프로그램은 서울시가 우범지역에 120억원을 들이기로 한 사업에 행운동이 선정되며 시행됐다. 관악구는 송파구 다음으로 20대 여성이 많이 거주하는데다 원룸촌이 밀집해 있어 우범지역으로 꼽힌다. 이에 행운동 주거지역에 360도 회전이 가능한 방범용 CCTV와 어두운 밤 골목 구석진 곳을 확인할 수 있는 볼록거울이 설치됐다. 긴급상황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안전벨과 어두운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는 조명도 마련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시행한 셉테드 프로그램은 관련 예산 책정 및 사업단계에서 그쳤고 주민들에게 활용방법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과정은 생략됐다. 안전벨이 설치된 곳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처음에 이 시설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다”며 “안전벨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데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관악구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미루’가 주민들의 셉테드 프로그램 활용을 돕고 마을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안심다락방 사업을 진행했다. 안심다락방에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해 범죄예방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컨퍼런스와 ‘안심 캠페인’이 포함된다. 또 ‘여성안심마을’이라는 주제로 원룸촌 담벼락에 여성만화 그리기 사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미루는 학생들이 안전 관련 주제로 글을 쓰면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해주기도 했다. 미루 허성기 대표는 “커뮤니티 내에서 오래 활동한 신뢰도 있는 비영리단체가 주민들을 사업에 대해 이해시키고 활용할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했다”며 “행운동 안심다락방 사업은 마을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루의 취지와 잘 맞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안심다락방이 서울시가 시행한 셉테드 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이라면 ‘고백길’은 계획단계부터 지역주민의 주도로 이뤄진 사업이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행운동 벽화거리 고백길 사업’은 상가주민을 중심으로 조직된 ‘행운동 상가마을공동체’(상가마을)가 주축이 됐다. 서울시가 추진한 마을공동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행운동에 있는 몇몇 상가들이 모여 독특한 문화콘텐츠를 통한 상권 살리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벽화거리 사업을 주도한 상가마을 김안 대표는 “행운동이 지리적으로 좋은 상권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목적으로 벽화거리 사업을 제안했고 이 제안이 서울시에 채택돼 예산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관악중학교 아래에 있는 남부순환로237길을 따라 남녀가 장난을 치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벽화가 이어져 있다.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급경사지의 주택가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젊은 관광객들이 벽화를 감상하고 내려가며 상가에서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이와 함께 무채색의 거리가 다채롭게 변해 행운동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행운동에 거주하는 김은진 씨(21)는 “벽화거리가 들어선 이후 동네가 활기차진 것 같다”며 “칙칙하던 건물들이 화사하게 바뀌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4개 코스로 나뉜 고백길은 연인이 서로에게 고백한다는 컨셉에 따라 아기자기한 캐릭터에서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고백길을 따라 걷는 사람이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상상을 하게 될 정도로 고백길은 달콤한 분위기를 풍긴다. 김안 대표는 “관악구 주민을 주축으로 전국구에서 벽화 봉사자들을 모집했다”며 “최근에는 민간 단체와 기업체가 참여해 식사를 제공하는 형태로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상가마을은 까치어린이공원에서 플리마켓 ‘고백장’을 열어 지역주민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한편 상가마을은 지역주민이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문화체험 행사를 마련해 행운동을 하나의 마을공동체로 묶는 데도 힘쓰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행운동 주민센터에서 친환경 비누, 가죽공예 체험 등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들이 진행된다. 김안 대표는 “행운동 상가마을공동체는 상업적 목적을 넘어 일반적 의미의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체험활동도 커뮤니티 활성화 목적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도예체험 행사에 참여했던 한선영 씨(35)는 “아들과 함께 도예체험행사에 참여했었는데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행운동에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현재 상가마을은 ‘관악테라스’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지속적으로 행운동을 홍보하면서 지역주민이 화합하게끔 돕고 있다. 주민들은 관악테라스에서 문화 체험활동에 참가신청을 하거나 행운동 상점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진행한 고백길과 달리 행운동 주민센터에 조성된 옥상텃밭은 민관이 합심해 진행한 사업이다. 옥상텃밭은 주민센터 직원과 상가마을이 기획하고 관악·동작장애인단체가 협력하는 형태로, 주민센터가 관리 하고 상가마을이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옥상텃밭을 계획한 구태오 서무주임은 “행운동 주민센터의 옥상공간이 넓은데 관리·감독할 사람이 없어 그동안 주민에게 개방하지 못했다”며 “상가마을공동체와 함께 텃밭을 조성해 지역주민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옥상텃밭에 행운동의 어린이집에서 견학을 오기도 하고 장애단체 아이들이 텃밭 교육 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 텃밭 강사 서진숙 씨가 씨앗을 나눠주며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꾸미고 있다.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진정한 마을공동체로 거듭나려면

그러나 소상공인이 제안한 일부 사업은 그들 사이에서 사업의 목적이 명확하게 합의되지 않아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일각에서 벽화거리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상업적 목적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불거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허성기 대표는 “사업 계획단계에서는 지역조사와 지속적인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쳤다”며 “하지만 예산이 부족하고 사업주체의 역량부족으로 처음 기획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마을공동체 사업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 진행되기 때문에 서울시가 요구하는 범위 내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이 부족한 주민들이 마을조성사업을 맡다보니 예술가를 외부에서 모집해 채우는 등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려던 본래 의도에 어긋나기도 했다. ‘솔이네 커피 볶는 집’ 박진준 대표는 “상가마을공동체에 참여해 고백길 조성에 동참했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럽지는 않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러한 주민 주도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운동은 일반 주민과 행정당국, 마을 활동가가 서로 화합하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갖고 있다. 미루, 관악테라스, 주민자치 위원회, 새마을 부녀회 등 여러 단체가 3월 척사대회에서 서로 화합하는 마을 잔치를 열었다. 허성기 대표는 “모두 함께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가야 한다”며 “일반주민들은 어떻게 주민들이 참여하고 만들어냈는지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고 행정당국은 마을사업을 유연하게 열어주며 마을 활동가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정치적 발판이나 상업적 수단으로 삼지 말고 지역주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간 행운동에서 시행된 일련의 사업은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동 이름만큼이나 행운길 곳곳을 환하게 밝히고 마을 주민 간 유대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스스로 마을을 조성하는 그들의 노력이 있기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현대사회 모습과는 다른 행운동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지역주민까지 이끌어가는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면 다양한 색깔의 행운동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 주택가 곳곳에 그려진 벽화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고백해보자!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