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지난 1월 1일(현지시각) 독일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타계했다. 벡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위험과 그로 인한 불안이 증대된다는 ‘위험사회론’을 제시하면서 ‘위험’을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올려놓았다. 위험사회론으로 대표되는 벡의 시대진단적 사회학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20년,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년이 되는 2015년 한국은 이제 위험이 낯설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이번 기획에서는 벡의 위험사회론과 그것이 한국사회에 가지는 함의를 살펴본다.


사회는 왜 위험해지나
 

위험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위험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벡은 두 가지 위험 개념, 독일어로 Gefahr와 Risiko를 사용했다. Gefahr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위험을 의미하는 독일어로 우리가 사용하는 ‘위험’의 의미와 비슷하다. Risiko는 계산이나 예상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식된 위험을 뜻한다. 따라서 Gefahr가 실재하더라도 사회구성원의 인식 여부에 따라 Risiko는 없는 것이 가능하다. 이 때 전자를 객관적인 위험, 후자를 위험에 대한 감수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벡은 1986년『위험사회』를 통해 당시 사회가 이들 두 가지 위험이 증대되는 위험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위험사회의 도래 전에 사회 변화의 동력이 경제적 불평등이나 빈곤에 의한 ‘나는 배고프다’라는 생각이었다면 위험사회에는 이것 대신에 ‘나는 불안하다’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선성장 후안전’ 시대가 저문다

벡은 스스로가 예견한 위험사회가 도래하는 배경으로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본격화된 근대화의 역사를 들었다. 산업혁명 후 200여년 동안 인류는 유례없는 생산력을 보유하게 됐고 근대 산업사회는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벡은 산업화를 통해 부가 확대 재생산되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은 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우연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고 주장했다. 즉 이 기간에 진행된 근대화 기조는 ‘선성장 후안전’, 즉 부를 생산하는 논리가 사회의 중심이 돼 위험을 생산하는 논리를 지배한 것이었다. 벡은 이 시기를 제1근대 혹은 단순 근대라 명명했다.


이처럼 단순 근대에서 성장이 위험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 근대에서의 위험은 ‘무릅쓸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이 사고로 이어졌을 경우라도 그 영향은 국지적 시공간을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무릅쓸 수 있는 위험은 성공을 위한 일종의 관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식의 위험 개념은 근대 산업 문명의 발달과 함께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기후변화나 원전 폭발과 같은 ‘무릅쓸 수 없는 위험’들이 인간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파국적인 위험의 생산은 부의 생산과 충돌을 일으킨다.


위험사회는 이런 위험을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사회다. 위험사회론에 따르면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물질적인 풍요는 늘어났지만 정작 삶은 불안하고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전개된다. 객관적 위험과 위험 감수성이 증대해 단순 근대사회에서 위험사회로 전환된 배경으로 벡은 세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산업적 과잉생산이 사회를 희소성의 독재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포드주의(Fordism)라 불리는 대량생산체제는 노동자 계급도 자가용을 소지할 수 있을 정도의 풍요를 서구사회에 가져다줬다. 벡은 이로 인해 물질적 욕구가 감소해 사람들의 가치관이 더 안전한 삶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즉 ‘빵을 위한 투쟁은 긴박성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은 배고픔보단 비만의 위협을 느끼게 됐다.’ 이는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증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벡은 또 부의 생산을 위한 합리성의 극단적 추구가 오히려 부의 원천을 오염시키는 현실을 짚었다. 예컨대 작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개발한 농약과 비료는 농지의 황폐화를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다. 효율성을 추구했던 신자유주의의 합리성이 2008년 경제위기로 귀결된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즉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해도 기술의 위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었다.


위험의 계산 불가능성도 위험사회가 도래한 배경 중 하나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위험으로 인한 피해는 과학자들마다 그 예측하는 규모가 제각각이며, 사고가 터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측정될 수 있다. 단순 근대에서 피해 규모가 예측 가능했던 위험은 이에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 없이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반면 원전 폭발, 기후변화 등의 위험에 보험이 적용될 수 없음은 당연해 보인다.


이런 배경 하에 도래하는 위험사회에서 위험은 이전 산업사회의 위험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 사회가 전문화되는 과정에서 기능적으로 분화하며 복잡다단한 원인이 위험에 기여하게 됐고 산업화를 통해 기술도 정교해지며 위험의 원인을 특정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고, 예방할 수도 없는 위험이 만들어졌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해도 고도위험기술이 가진 사고가능성을 피할 수 없는 ‘정상적인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단순 근대화는 위험을 모두 극복하고 완전한 안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이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위험사회에서 합리성은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동시에 아무도 위험을 책임질 수 없을뿐더러 위험으로 인한 피해도 계산할 수 없다. 벡에게 이런 조직된 무책임성의 원인은 단순 근대화의 이성주의였다. 조직된 무책임성은 사회가 생산하는 위험을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해 ‘위험을 외재화’한다. 일례로 ‘산업화를 이루려면 유독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무책임성은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환경위기를 야기한다.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


결국 합리성의 증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순 근대화를 계속해서는 위험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벡의 주장이다. 이에 그는 새로운 방식의 근대화인 ‘성찰적 근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단순 근대화가 전근대사회를 산업사회로 만든 일방향적인 변화였다면 성찰적 근대화는 제도가 위험을 생산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제도에 대한 비판적 공론의 장을 형성한다는 다소 거시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벡은 그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 성찰적 과학발전과 하위정치를 제시했다.


성찰적 과학발전은 그간 과학이 외부의 대상에게만 적용했던 객관화를 과학 자체에 적용하는 것이다. 위험사회를 도래하게 한 원인으로서의 위험 생산이 ‘참을 만한 것’으로 과학자에 의해 허가됐기에 과학의 정당성에도 의심에 눈길이 향하기 때문이다. 성찰적 과학 발전의 시작은 그동안 과학자들에게만 맡겨졌던 일부 중요한 사회적 결정에 일반인이 참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위정치도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된 일반인들이 정치를 의회에만 맡겨두지 않고 직접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참여민주주의로 이뤄진다. 기존에 정치가 의회에만 국한된 것이었다면 이제는 비정치적이었던 영역까지도 확장된다. 하위정치에 의하면 사회 변혁이 기존 정치권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생활에서 느끼는 불안을 문제제기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생활정치’가 실현된다. 이렇게 하위정치가 활성화되는 데에는 70년대 이래 민주주의가 확립된 것과, 복지국가의 성립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반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위험사회인가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한국에서 벡의 위험사회론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부터였다. 한국이 이후 대구지하철 화재나 세월호 침몰 등 대규모 사고가 계속되고 ‘사고 공화국’이라 불릴 때마다 한국에 벡의 위험사회론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특성, 산업화의 속도가 다른 서구사회의 경험에서 나온 위험사회론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


이에 벡이 제시한 위험사회의 개념을 변용해 한국의 상황을 분석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노사정위원회 김대환 위원장(전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의 ‘이중 위험사회론’이다. 김 위원장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두 가지 성격, 합리성의 급진화로 인한 ‘위험사회 위험’의 성격과 합리성의 부족으로 인한 ‘위험사회 이전 위험’의 성격을 동시에 띤다고 설명한다.


위험사회 위험은 근대화를 성취한 이후의 서구사회의 맥락에서 논의되는 데 반해 한국사회는 근대화가 제대로 성취되지 못했다는 점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근대화란 산업화뿐 아니라 정치의 민주화, 사회의 합리화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인데, 한국은 특유의 돌진적 산업화로 인해 민주화, 합리화가 결여됐다고 평가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그의 논문 「돌진적 성장이 낳은 이중 위험사회」에서 ‘(돌진적 산업화는) 민주화와 합리화를 경제성장의 사치재로, 심지어는 그 장애물로 간주하기 쉽다’며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합리화는 한국 사회에 아직까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산업화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서구사회에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해, 고도기술이 생산하는 위험 즉 위험사회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민주화, 합리화의 영역에서 한국은 근대화가 덜 진행돼 아직도 위험사회 이전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장경섭 교수(사회학과)는 한국사회를 ‘복합위험사회’로 진단한다. 복합위험이란 선진국형, 후진국형 및 한국형 위험이 공존한다는 의미다. 복합위험사회에선 합리성의 급진화로 인한 선진국형 위험, 긴급 대피 및 복구 체계의 미비로 인한 후진국형 위험에 한국 특유의 속도 효율을 중시하는 날림형 위험이 공존한다.


위험사회 위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원전 문제가 서구와 한국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비교하면 위험의 성격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위험사회론이 대두될 당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위험사회 위험을 나타내는 대표적 예시다. 1986년 체르노빌에선 원전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도중 발생한 연구원의 작은 실수가 결국 원전 폭발까지 이어졌다. 이재열 교수(사회학과)는 그의 논문「이중적 위험사회형 재난의 구조」에서 서구의 원전 사고를 두고 ‘위험이 체계 자체에 내재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최첨단 기술이나 안전장치를 보유한 원전일수록 이런 사고의 전형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원전 또한 체르노빌처럼 예상치 못한 실수에 의해 사고가 발생한 수 있어 위험사회 위험의 측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2013년 적발된 원전 비리 사건은 한국 원전에 내재돼 있는 위험사회 이전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부품이 수년 동안 원전에 납품된 과정에는 제조업체부터 검증기관, 승인기관이 모두 조직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결을 위해 합리성의 증대가 요구되는 이런 위험은 합리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해도 예방할 수 없는 위험사회 위험이 아닌 위험사회 이전 위험에 속한다.


다만 ‘이중 위험사회’ 등 벡의 논리에 비춰 한국사회를 서구와 구분하는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노진철 교수(경북대 사회학과)는 그의 논문「위험사회학」에서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한국적 특수성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우리 학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낸다”며 비판했다. 홍찬숙 교수(여성연구소)는 서구사회와 한국사회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입장이며, “(한국과 달리) 서양은 100% 근대화된 사회라고 보는 인식에서 이중 위험사회 등의 해석이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원전 비리를 일으킨 연대주의 같은 요소는 지금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분명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홍 교수는 비합리적 요소들이 당시에는 ‘사회란 게 그런 거지’라는 나름의 한국적 합리성을 가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성공한 합리성에 배반당한다는 위험사회의 논리는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위험사회로 보든 이중 위험사회로 보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바는 위험사회의 성격을 한국이 가지고 있으며, 한국사회는 점차 위험사회로 나아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중 위험사회론에 비춰 한국을 해석했을 때도 합리성의 부족으로 야기되는 위험사회 이전 위험은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감소하고 벡이 설명한 위험사회의 양상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험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벡이 예상했던 것처럼 위험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에서 성찰적 근대화는 일어나는 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홍균 강사(덕성여대 사회학과)는 그의 논문「울리히 벡의 성찰적 근대화론 비판」에서 “성찰적 근대화는 현실에서 관찰되지 않고 있다”며 아직도 위험은 잠재적인 부수효과로 취급돼 정당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찰적 근대화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는 것은 독일의 탈핵 결정 과정 중 형성된 비판적 공론의 장이다. 위험을 규정하고 관리하는 일을 과학자와 의회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것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윤리위원회)를 소집해 탈핵 결정을 이끌어냈다. 윤리위원회는 원전 전문가뿐 아니라 사회학자로서 울리히 벡을 포함해 시민단체, 노조 관계자, 종교 지도자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택한 합의 도출 방식은 공개 TV 토론이었다. 윤리위원회 위원 17명뿐 아니라 30명의 외부 인사가 참여한 토론회는 장장 11시간에 걸쳐 독인 전역에 생중계됐다. TV를 본 시민들은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윤리위원회에 의견을 표출했다. 윤리위원회의 활동은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던 독일 정부가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퇴출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성찰적 근대화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밀실 추진’으로 원전 정책을 논의하는 한국과 대비된다. 실제로 “공개회의가 자유로운 논의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올해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여부를 심의·의결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비공개 간담회를 추진해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원전이 생산하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시민의 불안은 성찰적 근대화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벡이 제시한 시나리오에서는 기존의 제도가 새로운 위험을 완전히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서 성찰적 근대화로 나아가는 계기가 생긴다. 한국에 이 시나리오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왕휘 교수(아주대 정치외교학과)는 그의 논문「울리히 벡의 세계위험사회」에서 ‘국가가 모든 권력을 쥐고, 모든 중요한 것을 판단하며 모든 중요한 것을 행한다는 국가주의’를 지적했다. 독재를 거치며 형성된 국가주의가 위험에 대한 일반 시민의 역할과 기능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또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며 과학·기술적 진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형성됐고, 이들의 결정에 따른 위험은 공개적 논쟁의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도 성찰적 과학발전을 가로막았다.


이홍균 강사는 그의 논문에서 희소성의 독재에서 해방됐다는 것이 성찰적 근대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짚었다. 이 강사는 배고픔은 없어졌지만 “사회 구성원에게 가해지고 있는 성장의 사회압력이 잔여위험의 허용치를 선호하고 그 범위 내에서 위험이 외재화되도록 강제”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이 위험을 외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내재화한다면 그는 평균적인 생활수준에 도달할 수 없게 되고 사회적으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위험에 눈감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바는 ‘인식 변화’의 문제다. 객관적인 상황은 위험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위험의 관리는 전문가와 국가의 몫이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성찰적 근대화로의 변환에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위험사회가 생산하는 파국적 위험에서 성찰적 근대화의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할 수 없는 것인가. 변화의 희망은 세월호 참사 후 1년간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은 분노했고 기존 정치와 제도가 위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 후 벡은 방한해 “이러한 회의감이 정치제도에 위협을 제기하며 정당성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시 사안이 잠잠해지면 정치인들은 또다시 과거 관행을 답습하겠지만 우리가 겪은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라는 벡의 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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