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저항ⓡ 주식회사』

예전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보다 많아지고 다채로워졌다. 중고 의류 등을 수거해 판매하는 아름다운가게나 중고 페트병으로 상품을 만드는 터치포굿 등과 같이 친환경분야에서 활약하는 사회적 기업이 꾸준히 늘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이마트와 손잡고 전라남도 진도군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의 소식도 간간히 들려온다. 국내에 지부를 둔 월드비전, 기아대책 등의 비정부기구(NGO)들도 경영능력을 갖춘 전문 경영인 출신을 영입해 규모가 커진 사회운동 조직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하지만 『저항® 주식회사』의 저자인 피터 도베르튜와 제네비브 르바론은 시장의 폐해를 지적해온 사회운동이 오히려 시장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다양한 주체가 사회운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정작 그들이 해결하려는 문제의 원인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책에서는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사회운동이 기업과 유착하면서 자본주의 구조에 침잠하는 양상을 짚어내려 한다.

 

사회운동과 기업의
미묘한 공생관계

 

사회운동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비정부기구는 기업과 동반자 관계를 맺으며 기업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들에 따르면 기업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던 예전 사회운동에 비해 현재 비정부기구는 기업을 사회운동의 재정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비정부기구는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재단, 포드 재단 등의 기업 관련 조직에게 후원금을 제공받고, 자신의 믿음직한 이미지를 고스란히 공유하곤 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고, 비정부기구는 기업의 이목을 끄는 브랜드 가치를 형성하기 위해 홍보 및 회원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문제는 비정부기구가 기업의 원조를 받는 공생관계로 인해 스스로 제기하려던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탄하는 사회문제에 연루된 기업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비정부기구는 문제의 근본 원인일 수 있는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기 보단 좋은 이미지를 덧씌우는 모순을 보이게 된다. 한 예로 코카콜라는 세계자연기금(WWF)과 연계해 북극곰의 멸종위기를 막는 환경 캠페인을 실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코카콜라는 자연보호에 힘쓰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갖게 됐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500년간 썩지 않아 토양오염의 원인이 되는 알루미늄을 가장 많이 매입하는 기업으로 환경오염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협업이 기업에 대한 비판을 희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일부 기업은 사회운동과 손을 맞잡는 데서 나아가 사회운동을 사업의 일환으로 여겨 직접 조직 운영에 개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칫 기업 관계자나 기업 출신 운영진이 중앙에 권한을 집중하는 하향식의 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라는 압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비정부기구들은 지속가능한 예산을 얻기 위해 경영진의 의견을 따르는 ‘무난한 형태’의 운동을 선보인다. 저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치운동과 같이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즉각적으로 가시적 결과를 내기 어려운 사회운동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비정부기구는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조직을 운영할 안정적인 자금을 얻고 기업의 운영방식을 따라 효율적인 조직 관리를 시도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바탕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 있지만 결국 비정부기구가 기업의 잘못 내지 자본주의의 근본적 폐단에 대해선 쉬이 주장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소비주의에 순응한 사회운동
자본주의 질서를 강화시킬 뿐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사회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비정부기구가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저자들은 정부가 온건한 비정부기구에게 세금 우대 등의 지원을 하는 반면 급진적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에겐 안보를 빌미로 탄압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동물권운동가, 환경운동가 등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정보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

위와 같이 위축된 상황을 타개하려면 사회운동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모여 튼튼한 하부구조를 만들어야 하지만 이전에 비해 사람들의 삶이 다양해지고 개인화되면서 사회운동에 뜻을 모으던 하부구조는 이미 흩어진 상태다. 사람들은 점차 개인의 힘으로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에 익숙해졌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모여서 문제를 제기하기보단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맡는 걸 선호하게 됐다. 이에 비정부기구의 자리에 여러 사회적 기업이 등장해 사회적 상품을 판매하는 형식으로 운동의 역할을 분담하게 됐다. 즉, 운동에 무관심한 소비자에게 사회에 도움이 될 ‘착한 소비’를 하도록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회운동이 이뤄지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시가 바로 공정무역 커피나 에코백과 같은 제품들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와 같은 운동방식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에 따르면 비정부기구는 ‘손쉬운 도덕률을 판매’하면서 현재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처치를 하지만 소비주의 체제에 순응해 그 이면에 깔린 자본주의의 폐단을 진단하진 못한다. 오히려 사회운동마저 도덕적 책임을 개인의 몫으로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제품 생산 과정에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한 기업이 도리어 ‘도로변의 재활용품 수거함을 해법으로 제시’할 때 대부분의 사회운동은 자신의 이득만 취한 기업을 비판하기보단 개인에게 분리수거를 독려하거나 친환경 제품을 사라고 권한다.

이처럼 자본을 통해 운동을 활용하는 기업과 이를 추동하는 국가의 틈바구니에서 사회운동 또한 기업적 운영방식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이들은 원자화된 개인을 결집하기보단 각자에게 책임을 부과한 소비주의를 수긍하고 장려한다. 책에서는 기업과 공생하고 서비스 제공자로 머무는 사회운동의 모습을 ‘비영리산업복합체’라고 정의한다. 비영리산업복합체 안에서 사회운동은 기업 마인드를 갖고 자본주의 논리를 내면화해 그 속에서 협소한 사안만을 처리하려 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행태가 ‘현행 자본주의 질서의 가치와 관행에 도전하기보다는 이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업화가 아닌
제3의 길로 향하려면

 

물론 사회운동의 기업화를 반대하는 현상도 도처에 존재한다. 2011년 월가를 점거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점거 농성은 의식적으로 중앙 집권적 경영방식이나 치밀한 구조 형성을 지양해 기업적 운영방식에 매몰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사회운동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듬해 점거운동의 열기가 금방 잦아들었고, 항간에선 공식적인 조직으로 개편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열기가 오래 가지 못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저자들은 역설적으로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자율적이고 느슨한 조직을 통해 집합행동을 취하려는 집념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사회운동의 힘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저자들은 책의 전반을 통해 기업화된 사회운동을 비영리산업복합체에 속한다고 비판하면서 급진적인 풀뿌리 정치운동에겐 새로운 조직화를 시도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활동하려면 조직이 필요한데, 이렇게 막강한 세계질서 속에서 조직을 꾸릴 경우 급진성을 급격하게 유실하기 때문’에 모든 사회운동은 딜레마를 가진다고 여겼다. 즉, 처음 활발하게 이뤄지던 저항도 개인화된 기반으론 오래 갈 수 없고 중앙 관리를 통해 돌아가는 조직이 되면 성과에 매이는 경영방식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사회 각 주체를 엮어낸 논리에 비해 신자유주의의 세계질서에서 각자 모자란 부분을 채워보라는 당부로 그칠 수 있다.

저자들은 기업화돼가는 사회운동을 다시금 되돌리기 위해선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급진주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그 자체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비정부기구가 나아갈 실천방안이 없는 결말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책의 전반을 통해 경각심을 고취하려던 ‘기업화된 세계질서’에 대해선 일견 동의할 수 있더라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변질된 사회운동이란 현상을 비판할 뿐 그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조직화의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경각심만 가진 채 원래 삶의 방식을 이어가게 된다. 이 책의 주장이 한풀 꺾이는 것도 현재에 대한 폭넓은 관찰에 비해 비정부기구가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도를 제시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다만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와 문제를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진 상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문제를 인지하지 못할 경우 자신들이 다루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파고들지 못하며 이런 상황에서 현재 나타나는 현상만을 해결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저항® 주식회사』는 자본의 논리에 침잠해있던 사회운동가들에게 스스로 공회전을 멈추라는 화두를 던지는 한편 ‘착한 소비자’들 덕분에 자본주의만 무사했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자신이 안주해있던 체제를 한번쯤 고민해보거나 급진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없는 환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계기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물음에서 비로소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개선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시장의 논리의 민낯을 볼 수 있을지, 그로부터 문제의 뿌리를 건드릴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저항 주식회사
피터 도베르튜, 제네비브 르바론 저
|황성원 역|동녘
|276쪽|1만 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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