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인도 국립 교육기관 비스바 바라티

4년 전, 인도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도의 동부 샨티니케탄(Santiniketan)에는 비스바 바라티(Visva-Bharati)라는 학교가 있는데, 시 ‘기탄잘리’로 유명한 시성 타고르가 만들었다는 이 곳에서의 수업은 항상 자연과 함께 이뤄진다고 했다. 타고르의 철학에 따라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자라도록 장려하고, 나무 그늘을 교실삼아 수업을 진행한다고. 그곳의 자연 속에서 뛰어 놀고 있을 학생들을 상상하니 학원과 입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고된 모습이 겹쳤다. 그리하여 샨티니케탄은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유토피아와 같은 곳으로 마음속에 기억됐다. 그로부터 4년 후 그 꿈 같은 곳에 직접 가보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 여러 비행기를 갈아타고 18시간, 기차로 3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꿈에 그리던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 샨티니케탄에 도착했다.

▲ 나무 밑 그늘을 교실삼아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인 파타바반 전경

꿈에 그리는 교육마을, 샨티니케탄

 

벵갈어로 ‘평화의 땅’이라는 뜻의 샨티니케탄은 인도를 대표하는 교육마을이다.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탄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어렸을 적 받았던 획일적인 교육에 불만을 느끼고 기존의 학교들과는 다른 교육이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이곳에 작은 학교를 만들었다. 1901년 초기에 5명 남짓한 학생과 ‘우리 집 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학교는 20년 후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과정까지 모두 갖추며 인도 교육의 요람 역할을 하게 됐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는 인도 최대의 종합 교육기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현재 샨티니케탄에는 비스바 바라티라는 이름으로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파타바반, 미술대학인 깔라바반, 중국어 대학인 치나바반 등 마을 곳곳에 총 51개의 단과대학 및 교육기관이 분포해 있다.

▲ 산티니케탄 마을 어귀에 있는 타고르 동상

명실상부한 인도 최대의 국립 학교로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미르티아 센이 유년시절 수학했던 학교이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명문대와 같은, 밤새 불이 켜진 멋진 도서관을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여행자라면 소박하고 전원적인 풍경의 학교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이런 풍경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어떤 것일까? 우연히 한국인 유학생 정현우 씨를 만나 샨티니케탄의 하루를 엿볼 기회를 얻었다.

샨티니케탄의 아침은 일렀다. 새벽 6시가 조금 지나자 파타바반의 운동장에서 아침기도가 시작됐다. 매일 아침 이 시간에는 전교생이 모여 ‘라빈드라 상깃뜨’라고 하는 타고르의 노래를 부른다. 이 시간에 참석하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성적에 반영되거나 꾸지람을 듣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에 참여한다. 조회는 10분 이내로 끝났고, 아이들은 학년별로 모여 자신들의 교실인 나무그늘로 우르르 달려갔다. 노란 교복을 입고 초록 나무 밑 그늘에서 수업을 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그림의 한 장면같이 느껴졌다.

현우 씨는 이곳의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낙서를 하거나 딴청을 피우는 일들을 나무라지 않고, 단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훌륭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발현되도록 두면, 어느 정도 때가 됐을 때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스스로 재능을 찾게 된다고 한다. 나무 밑에 앉아 땅과 바로 맞닿아 흙을 느끼며 배우는 수업은 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도왔고, 획일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교육은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가도록 이끄는 듯 보였다. 비스바 바라티에서는 어린아이가 학교 안에서 자라면서 그들 고유의 본성이나 재능이 그대로 발현되도록 돕는다. 타고르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 나뭇가지를 장난감 삼아서 놀고 있는 파타바반의 학생들

파타바반에서 조금 들어간 샹기트바반(음악대학)의 한 교실에서는 인도 전통악기인 에스라지 수업이 한창이었다. 교수와 두 명의 학생이 작은 방 안에 앉아서 진지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참관이 가능한지 묻자 선생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수업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었다. 교실은 성인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작았는데, 그렇게 작은 교실 안에서 선생님은 마주앉은 학생이 목표하는 소리를 낼 때까지 끊임없이 지도한다. 이렇게 점심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수업하다가 결국 악기를 들고 선생님 댁으로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 수업을 계속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한다.

▲ 샹기트바반의 한 교실에서 인도 전통 악기 에스라지 수업이 진행 중이다.

비스바 바라티 내부에는 이곳의 교사들이 거주하는 구루뽈리라는 곳이 있는데, 학교의 선생님들이 이처럼 쉽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상주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원할 때마다 찾아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가족과도 같은 관계가 형성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비스바 바라티에선 선생님을 다다(오빠), 디디(언니)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가 지식의 전달만을 하는 것이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애정을 가지고 삶의 지혜에 대해 알려주기를 바라는 타고르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도 릭샤(인력거)꾼도 음식점 주인도 다다, 디디였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곧 이 사실이 재미있고 정겹게 느껴졌다. 이곳에선 신분과 직업이 달라도 모두가 똑같은 형이고 언니였다.

▲ 아말꾸띠 바틱 공방에서 수공예를 하는 아주머니

샨티니케탄에서 릭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타고르가 농촌사회의 재건을 위해 만들어 놓은 수공업 지역인 스리니케탄이 있다. 특히 공예품 생산마을 아말꾸띠에는 바틱(천에 물감으로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기법)과 천연염색이 유명한데, 타고르는 농사뿐 아니라 수공업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권장하며 부녀자들의 경제활동을 장려했다고 한다. 또한 비스바 바라티의 학생들이 농부, 상인, 수공업자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연으로부터 가공된 것들이 자신들에게 오기까지의 과정과 방법을 직접 깨닫고 습득하길 바랐다. 나무에 열린 열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게 한 그 토양과 뿌리부터 살피는 삶, 본질적인 부분과 과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는 타고르가 강조하는 교육이 책상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선 비스바 바라티

 

타고르가 학교를 세운 지도 100년이 지났고, 그 긴 시간 동안 초기엔 없었던 시험제도가 생기는 등 비스바 바라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적한 깔라바반(미술대학)의 교정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섬유디자인 박사과정 중에 있는 최민경 씨는 “최근에 비스바 바라티에서 대규모 파업이 있어서 학교 분위기가 좀 뒤숭숭해요” 라고 말했다. 의아해하던 나에게 그녀가 말한 이유인 즉, 원래 비스바 바라티의 대학들에서는 정원의 50%를 파타바반 출신의 학생들로 뽑는 쿼터제가 유지돼 왔었는데, 비스바 바라티의 대학 부총장인 스샨타 다타굽타가 세계화 시대의 경쟁력을 이유로 이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스바 바라티 학생들부터 교수까지 내부에서 격렬한 반발이 있었고, 부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파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결국 부총장이 쿼터제 폐지를 철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비스바 바라티에서도 다양한 층위의 시각과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듯 보였다.

파타바반에서 비스바 바라티의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들 중엔 외부의 학교에서 온 50%의 학생들과 학습에 있어 ‘경쟁’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고백한 학생도 있었고, 실제로 외부에서 입학한 학생들 중 일부는 비스바 바라티의 쿼터제가 부당하며, 세계화 흐름 속에서 정체돼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교수들이 쿼터제 폐지에 저항하는 이유 또한 결국 비스바 바라티에 진학할 자녀가 있는 이해관계자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이상적인 교육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방문한 비스바 바라티에서 마주한 갈등의 모습에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웠다. 경쟁을 떠나 꿈만 같은 교육을 실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곳 또한 결국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개방과 경쟁의 요구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직접적인 이해관계자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찾아간 파타바반의 영어 선생님 수로짓 씨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쿼터제 폐지는 샨티니케탄의 공동체 내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현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샨티니케탄이 타고르의 철학을 고수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쿼터제를 폐지하게 되면 파타바반의 학생들은 비스바 바라티 내 대학 진학을 위해 필연적으로 지금보다 더한 경쟁을 강요받게 되고, 그에 따르면 경쟁은 필연적으로 과잉교육을 유발하게 된다고 한다. 또 경쟁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서열화 방식의 교육은 학생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는데, 이는 이제껏 비스바 바라티가 고수해온 타고르의 교육 철학과 전면적으로 상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라, ‘공부’를 원하는 학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교육’이 있어야 한다며, 다시 한번 잊고 있었던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강조했다.

수로짓 선생님의 답변을 듣고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와 짧게나마 여기서 지켜본 비스바 바라티의 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왜 교육을 통해 남과 경쟁하는 것을 당연시했을까. 과연 경쟁 없는 교육이 가능할지 묻는다면, 샨티니케탄은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 남보다 잘하는 것 이전에 세상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도록 가르치는 학교. 세계화보다는 세계를, 경쟁보단 협력을, 지식보다는 지혜를 전달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은 쿼터제 폐지가 무산돼 샨티니케탄의 전통이 지켜질 수 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비스바 바라티가 세계화라는 격랑 속에 놓여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에 비스바 바라티가 어떻게 변화해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타고르의 가르침이 곳곳에 배어있는 지금의 비스바 바라티에 필요한 말은 ‘어리석은 자는 서두르고 영리한 자는 기다리고 현명한 자는 정원으로 간다’는 타고르의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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