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항구
  • 대학신문
  • 승인 2015.05.0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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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꿈에서 깨자 콧속으로 짠 내가 그득히 차올랐다. 계기판 옆 전자시계는 세시를 깜박이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늘어 선 몽골 텐트들은 표정 없는 헌병대 같았다. 잘도 잔다. 서울 빠져나오기도 전부터 잠들더니. 좌우로 꺾는 선배의 목에서 우득우득 소리가 났다. 인턴 생활은 어때. 하긴야, 한 달도 안 된 애를 땅 끝까지 보내는 거 보면 말 다했지. 선배가 엉킨 기자증 끈을 죽 늘였다가 튕기는 폼이 어딘가 명랑해보였다.

차에서 내리자 입에서 마른 흙부스러기의 텁텁한 맛이 났다. 함부로 숨을 들이쉴 수 없었다. 앞서 휘적휘적 걷던 선배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도착했습니다. 분위기요? 그렇죠 뭐. 카메라부터 설치하고 가족들 멘트 들어보려구요. 아침까지 백오십이요. 화면 몇 개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걱정마세요 선배. 우렁찬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길게 뻗은 길가를 따라 부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멀리 허름한 여관 건물 근처에는 중앙부스라고 표시된 것이 홀로 떨어져 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전광판이 달려 있었다. 새 것처럼 보이는 액정은 수없이 많은 점에서 빛을 뿜었다. 저 중에서 몇 개 스러져도 아무도 모르겠지. 각자 제 빛만을 뽐내는 점들이 야속했다. 액정은 눈부시도록 빛나고 있었다.

현장에는 어수선한 적막이 깔려 있었다. 사백 여 명의 사람들 중 절반은 봉사자, 가족은 칠십 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카메라를 움켜들고 눈 세 개를 번쩍이며 돌아다니는 기자들이었다. 선배가 부탁한 대로 빽빽한 카메라 사이에 틈을 찾아 몇 대를 더 설치했다. 렌즈들이 어망의 코처럼 촘촘한 눈빛으로 고기를 노리고 있었다. 현장은 처음이지? 분위기 익히고 있어봐. 올려 보낼 만한 거 있나 보면서. 언론사 부스에 짐을 풀자마자 선배는 밖으로 뛰어 나갔다. 

지원물품 도착했습니다. 부스 밖에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며 마주친 남자였을 것이다.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군청 로고가 박힌 봉사자 조끼를 입고 있었다. 도와야 하는지 고민하던 순간 같은 조끼를 입은 여자가 짐을 이어 받았다. 부스 밖 대화가 라디오 음량을 줄이듯 서서히 멀어져갔다. 뻣뻣한 기자증을 만지작거렸다. 살아있는 눈으로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자소서의 마지막 문장을 몇 번 되뇌고서야 이곳이 어딘지 실감이 났다.

한 달 전 면접장이 떠올랐다. 질문은 진부했다. 퓰리처상을 받아 유명해진 사진 하나가 제시됐다. 사진을 찍겠는가, 독수리를 쫓아 소녀를 구하겠는가. 부드러운 표현을 골랐는데도 면접관들은 여느 50대들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주황색 신호등처럼 규칙적으로 끔벅이는 눈 여섯 개를 향해 대답을 끝마쳤을 때 엄마 목소리가 울렸다. 니는 별 거 아닌 거에 그리 경기를 하냐 그래. 세상사는 게 다 그런 거다. 내 맘대로는 되는 거는 하나도 없는 거야. 

문득 달력을 보니 엄마를 못 본지도 세 달이 넘었다. 광주가 멀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엄마는 광주 사람이었다. 엄마가 세 살 적에 목포에 살던 할아버지는 광주로 자리를 옮겼고 그때부터 남동에서 유문동으로, 다시 유문동에서 수기동으로 옮겨 다니며 쭉 광주에 살았다. 대학 졸업반 때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엄마는 외삼촌 집에서 얹혀 사는 신세가 됐다. 졸업 후 서울로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외환은행 광주지점이 새로 문을 열었고 이모부 소개로 갑작스레 은행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엄마가 금자 이모를 만난 것도 은행에서 일할 때였다. 광주여고 2년 후배인 이모는 예민한 인상과 달리 사글사글하게 엄마를 잘 따랐다. 이모와 엄마는 돈을 모아 도청 바로 뒤 끌세방을 하나 얻었다. 크진 않았지만 집에서 은행까지 30분이면 넉넉했다. 일이 끝나면 엄마와 이모는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녔고, 보너스라도 받는 날이면 새 옷을 하나씩 장만했다. 외환은행이 입주한 전일빌딩 바로 앞에 분수대가 멋진 도청 광장이 있었고, 여기서 열리는 행사들을 구경 가는 것도 두 젊은 여자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뭐해. 돌아다니고 있으라니까. 허리를 숙여 부스 안으로 들어오며 부드럽게 꾸짖는 선배의 눈빛에 활기가 돌았다. 항구 제일 가까운 쪽에 시신 잠시 두는 텐트가 있어. 가족들은 그쪽에 많고. 중앙 부스는 아까 봤지? 시신들을 이쪽으로 들여오는 건 하루 두 번 정돈가 보더라. 가방을 뒤적이던 선배는 엉켜있는 옷가지 사이에서 지갑이며 수첩을 찾아냈다. 여기 계속 박혀있게? 선배는 끈이 채 풀리지 않은 기자증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서자 자욱한 향냄새가 눈 안쪽 어딘가를 자극했다. 다양한 종교 예식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성경 구절을 읽는 신부의 목소리와 경을 외는 승려의 목소리가 서글픈 화음을 이뤘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이는가 싶더니, 조끼 입은 여자가 군데군데 흰 종이를 붙이고 사라졌다. 키 160, 파란색 반팔 티, 진 청바지, 단발머리, 코 옆에 점. 강아지 모양 손목시계. 잠시의 정적 후 한 부부가 서로 잠시 마주보고는 황망히 짐을 추슬러 일어섰다.

항구 근처 텐트에는 신부님과 수녀님 한 분이 앉아있었다. 시신이 가지런히 놓이면 크지 않은 동작으로 정성스레 염을 했다. 신부님의 입에서 신의 음성이 들리고, 품에 안긴 아이가 물을 토해내며 부모를 찾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러나 굳게 다문 입은 사망을 선고하는 의사의 입 같았다. 의사가 굳이 사망시각을 곱씹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염을 하는 동안 흰 종이를 보고 찾아온 가족들이 옆에 서서 하얗게 뜬 눈가를 비볐다. 시신을 확인하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파랗게 부어오른 얼굴 앞에 무너지는 어머니와 쓰러지는 아내의 겨드랑이를 받쳐 들며 눈을 감는 아버지의 모습이 유리로 만든 수십 개의 눈에 담겼다.

총도 칼도 없는 곳에 매일같이 시체가 생겨났다. 심연의 바다로부터 시체를 캐내는 거대한 광산이었다. 해저 감옥에 수감된 아이들은 생을 놓음으로써 비로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땅 위의 사람들은 점점 흐릿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 외에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시름시름 앓아갔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증오와 이유 없는 자책이 세균처럼 뭉글뭉글 번식하는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

저녁 무렵이 되자 정찰병처럼 흩어져 있던 기자들이 어디론가 몰려갔다. 이미 한참 전에 가족 대표 사십 여명이 군청으로 갔고, 군청에 와있던 장관은 항구로 끌러오다시피 왔다고 했다. 중앙 부스 앞에는 기자와 가족들이 한 군데 모여 뒤엉켜있었다. 누군가 소리를 치고 누군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장관의 소매를 잡고 흔드는 나이든 여자의 손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기상 예보는 오늘까지만 물결이 잔잔하다고 했다. 가족들은 바다로 뛰어들 것처럼 불안하게 발을 굴렀다. 노을이 옆은 복숭아 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가족들의 모습에 지갑을 도둑맞은 일이 떠올랐다. 지갑이 사라지자마자 발견했으니 카페 안 CCTV를 돌려보면 금방 찾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주인은 이유도 해명도 없이 CCTV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정해진 방침이 있다고 했다. CCTV 열람에 동업자의 동의가 필요하단 핑계를 듣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아저씨, 시간 가잖아요. 지금 아니면 영영 못 찾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지갑이 아직 여기 있을 거라는 희망은 아저씨의 태연한 표정에 부딪혀 더 깊은 절망으로 변했다. CCTV가 설치만 된 채 작동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돈 주머니만 감시했을 거란 생각이 떠오른 것은 허망하게 지갑을 잃어버린 한참 뒤였다.  

가족들은 밤늦게까지 장관의 소매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의 귀에 아직 살아있는 자식들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을 것이다. 깊은 밤 동안 변한 것이 없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시간은 별 일 없다는 듯 무심히 흘렀다. 낯선 곳에 옮겨 온 전학생처럼 기자들 사이에 멀뚱히 끼어 있다가, 새벽 세 시쯤 되어서야 바닷가로 빠져나왔다. 

오후에 종교예식들이 이뤄졌던 곳에 하얀 꽃들이 염원처럼 간절하게 놓여있었다. 두꺼운 어둠을 밝히는 것은 가녀린 그믐달과 흰 국화가 머금은 희미한 달빛뿐이었다. 순결. 하얀 국화의 꽃말이 떠오르자 곧 직업병처럼 중얼거렸다. 마음에 더러운 것이 섞이지 않아 깨끗함. 교복 입은 아이들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뜨리는 투명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테이블 위에 흐트러져 있는 꽃들을 가지런히 모으며 또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유난히도 꽃을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집안 어딘가에는 항상 꽃이 풍성히 꽂혀있었다.

엄마는 일을 시작한 첫 해부터 취미로 꽃꽂이를 배웠다. 재료값이 비싼 만큼 수업을 마치고 한아름 꽃을 안고 돌아올 수 있는 게 좋았다. 엄마는 그 꽃들을 은행이나 자취방에 정성스레 꽂아두었다. 전남대생인 금자 이모네 오빠가 놀러오기로 한 날이면 굳이 꽃을 새로 솎았다. 오빠가 기껏 의대에 가놓고 무얼 한다고 유급까지 받느냐며 금자 이모는 늘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오빠가 피켓 같은 걸 부탁하면 바리바리 싸와서는 엄마와 밤새 만들곤 했다. 

그날도 꽃꽂이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은 매주 일요일 아침 일찍 있었는데, 셋째 주에는 항상 오아시스에 꽃을 꽂아 꽃바구니를 만들었다. 엄마가 화장을 하고 있을 때 오빠가 급히 들어와 만들어 둔 피켓을 들고 나갔다. 꽃꽂이 배우러 가는 거야? 예쁜 꽃 보러 금방 또 와야겠네. 금자 이모는 오빠 웃는 모습이 바보 같다고 킬킬거렸다. 봄바람이 부는 5월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와서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난 엄마가 심상치 않은 시내 분위기를 눈치 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자 이모는 연락이 닿지 않는 오빠에 대한 불안을 애써 숨기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틀이 지나 시내 방송국에 큰 불이 났다는 소문이 퍼졌다. 다음날 일찍 할아버지에게 연락하려 했으나 전화는 먹통이었다. 그날 저녁 시체 같은 얼굴로 돌아온 이모는 엄마 무릎에 고개를 묻고 탈진할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 옆에서 아직 봉오리만 맺힌 꽃들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너 담배 피우냐. 선배가 뒤에서 등을 툭 쳤다. 고개를 저으며 선배를 들여다봤다. 어디 구석에 가서 눈이라도 붙여.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선배는 내 옆에 서서 가만히 담배를 피웠다.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던진 선배가 습관대로 발을 들어올리던 찰나, 그의 휴대폰이 부르르 울렸다. 꽁초 불빛은 호흡을 그러모아 후후 뱉어내듯 발갛게 타오르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멀리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준비되지 않은 연극의 막이 오르듯 부끄러운 표정으로 또 한 번의 동이 트고 있었다. 밤새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인 장관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발표할 것이 있다고 한 모양이었다. 기자들이 대열을 정리해서 모인 지 한참이 지나서야 장관이 발표자 자리로 등장했다. 장관이 헛기침을 하자 묘한 긴장감마저 맴돌았다. 기자들은 스타팅 블록에 발을 올린 육상선수처럼 턱을 당긴 채 눈만 치켜떴다. 인턴 교육을 받던 이틀 전 오후가 떠올랐다. 교육을 맡은 선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적어야 한다고 몇 번씩 강조했다. 장례식장을 예시로 들었다. 건물의 높이, 오가는 조문객의 수, 위령 기도할 때 부르는 노래, 상주의 생김새와 인상까지 모두 적으라고 했다. 하지만 항구에서는 무얼 적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장관은 신년사만큼이나 다음이 예상되는 말을 5분 동안 늘어놓았다. 기자들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일본에서 보았던 고양이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인형은 빛만 쏘아주면 고개를 까딱였고 왠지 안도감을 주는 웃음까지 지어주었다. 그 사이 머리 위로 많이 올라온 해가 똑바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쪼록, 여기 계신 모든 언론사 기자 분들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말을 끝내려는 낌새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아니요, 도망치는 방법 말고 책임지는 방법 말입니다. 여기 오시면서 생각이나 해보셨습니까. 정신 차리고 보니 무슨 말을 했는지도 드문드문 기억이 났다.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게 나라는 걸 발견한 선배는 반대편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다가 뛰다시피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사실 고양이 인형을 움직이는 힘은 태양광이 아니라 고개에 붙은 관성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참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선배는 밤까지 체육관에 가서 취재를 하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직 공식적으로 인턴 기간이었다.

*

체육관은 넓고 천장이 높았다. 정돈되지 않은 구획 안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구 들여져 있어 체육관 내부는 얼핏 무질서해 보였다. 중앙통로 양 옆으로 깔린 이불들은 방향도 모양도 색깔도 제 각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 시선은 하나같이 앞쪽의 전광판을 향해 있었다. 마치 종교적 상징이라도 올려다보는 것처럼. 그 빛이 무슨 희망이라도 되는 듯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 속에서 소식을 전하는 스튜디오의 표정은 평화로워 보였다.

체육관 2층에 대충 짐을 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지원물품이 줄지어 들어오던 참이었다. 중년쯤으로 되어 보이는 남자가 큰 박스를 하나 들고 나르고 있었다. 어제 보았던 봉사자들의 조끼와는 다른 조끼를 입고 있었다. 말투나 행동이 모자라 보여서,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헤벌쭉 지어 올리는 웃음은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여기 와서 상자를 나르는 사람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수로를 타고 흐르는 빗물처럼 자연스럽게 다다른 생각에 흠칫 놀라서 고개를 탈탈 털었다.

체육관의 분위기는 항구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였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으레 느껴지는 부산한 소음은 없었다. 높은 천장을 가득 채운 공기가 사람들 어깨마다에 내려앉아 있었다. 공기의 무게를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상자를 함께 나르기 시작했다. 목에 건 카드에 새겨진 PRESS라는 빨간 글자가 심장을 눌렀다. 이곳 사람들은 이 빨간 글씨를 볼 때마다 냉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억울하지 않았다. 일거리는 끊길 듯 이어졌고 세 시간을 내리 일하고 나서 여유가 생겼다. 가족과 봉사자들이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생수 병을 내밀었다. 기자님이시죠. 도착하자마자 부스에서 봤던 청년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내려왔다는 그는 봉사를 시작한 지 5일이 되었다고 했다. 일정은 1박 2일이었는데, 차마 다시 올라갈 수 없었다고 했다. 낮에 전공시험이 있었을 거라고 말하며 웃는 눈에 맑은 빛이 돌았다. 그가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몇몇 지인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을 던졌다고 했다. 청년의 눈에 비치는 감정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기자님은 기자 같지 않아서 좋아요. 뜬금없는 고백에 물을 마시느라 젖혔던 고개를 똑바로 당겼다. 저 남자 보이죠. 기자에요, 저 사람. 손끝에는 아까 모자라 보인다 생각했던 봉사자가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어눌한 말투와 굼뜬 몸놀림은 그대로였지만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위장 취재에 대해 배웠던 내용이 한꺼번에 쏟아져 머리가 아찔했다. 벌떡 일어서는 나를 젊은 대학생의 손이 붙잡았다. 소용없어요. 저 사람만 탓할 수도 없잖아요. 순한 눈매에 어울리지 않는 단호한 표정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파란 조끼가 부러워졌다.

기사를 쓰려면 제일 먼저 누가, 언제, 어디서로 시작하는 육하원칙을 죽 적어내리는 습관이 있었다. 체육관 2층 의자 사이에 쭈그려 아직 가죽 냄새가 많이 나는 취재수첩에 누가, 라고 적었다. 누가 죽이나, 누가 죽였나, 누가 가두어두고 있나. 누가를 둘러싼 검은 동그라미가 쌓이고 쌓여서 얇은 종잇장은 찢어질 듯 위태로웠다. 어느 취재원이 물음에 답해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여기에 있긴 할까. 종착지가 없는 생각의 꼬리는 깊은 잠으로 젖어 들었다.

그해 여름, 엄마는 본사에 요청을 넣어 서울로 올라갔다. 다른 가족들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정이 참작되었고, 이모부의 입김도 제 역할을 했다. 엄마는 대흥각 빌딩에 있는 충무로 지점으로 갔다가 본사를 거쳐 남대문 지점으로 옮겨갔다. 결혼 전까지는 기억을 모두 잊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열심히 꽃꽂이를 했다. 꽃을 꽂으면 마음이 편해져.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피어나게 해주는 것 같아서. 엄마는 집에 오아시스가 다 떨어지면 왠지 불안해 보였다. 오아시스는 뿌리를 잃은 꽃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신비로운 도구였다.

새벽동안 열여섯 구 올라왔대. 전화 너머로 침착하게 울리는 선배 목소리에 잠이 달아났다. 선배가 전화를 걸어 깨우도록 만든 게 미안해 허둥지둥 항구로 갔다. 날은 한창 밝아 있었다. 항구의 풍경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시신이 올라오면 부모는 무너졌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내쉬는 숨결은 그들이 무릎을 일으키지 못하게 누르고 있었다. 풀죽은 양복 속의 사람들은 왜 자신이 책임자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력하게 자리만 지켰다. 그들 자신도 어디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는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기사의 육하원칙은 첫 시작부터 답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이곳의 소식은 최대의 화두였다. 사람들은 소식을 계속해서 업데이트 받고 싶어 했다. 마치 날씨 인사처럼, 이곳에 대한 언급을 한 마디 얹어야 대화는 대화다워지는 듯 했다. 그렇지만 매일 새롭게 알려줘야만 고통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참상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되짚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던 소녀는 셔터 소리를 들으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셔터를 누르는 순간 독수리가 커다란 날개를 쳐들고 소녀를 발톱으로 채가는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오금이 깊숙이 저려왔다.

선배는 내 인사를 듣고도 노트북에 시선을 둔 채 별 일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침에 한 아버지의 인터뷰를 딴 것 같았다. 아버지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빛을 떨구는 장면에서 재생 속도가 느려졌다. 정신 안 차리면 아무것도 못 써. 꺼리를 찾아야지. 취재 방향에 대한 지시는 드문드문 전화로 이뤄졌다. 유리 렌즈를 통해서만 이곳의 표정과 숨소리를 전해들은 사람들끼리 기사 방향을 결정했다. 두 손으로 눈을 비벼 나의 맨눈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부장님과 직접 통화한 것은 어제 새벽과 저녁 무렵 두 차례였다. 사무적인 목소리 톤이 짙은 부장은 스트레이트 기사나 현장 스케치를 쓴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선배가 문득 인터뷰 질문지 하나를 쓱 내밀었다. 도움이 될 테니 참고하라는 표정이었다. 질문지에는 Q로 시작되는 열댓 개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 사람 몫만 지운 것 같았다. 질문지 속 질문자는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하고 싶은 말만 쉴 틈 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데요. 생각은 입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왜 이런 걸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는 내 쪽으로 힐끗 시선을 돌렸다 다시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오른쪽 눈을 찡그리며 관자놀이 주변을 손톱으로 박박 긁어대던 선배는 피곤함이 짙게 묻은 한숨을 쉬었다. 선배는 3일 동안 다섯 시간도 채 눈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 차려. 지금 니가 정의의 수호사 같지. 그는 관자놀이를 몇 차례 더 긁적이더니 노트북을 덮고 벌떡 일어났다. 그래, 지금은 그게 맞지. 너라도 그래야지. 그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흔들어 보고는 점퍼를 여미고 밖으로 나갔다.

*

침묵 속에서 저녁을 다 먹은 다음이었다. 서울 올라가. 선배가 까만 검지 손톱으로 담뱃대를 툭툭 털어내면서 말했다. 죄책감처럼 붉게 타오르던 담뱃재가 흙바닥으로 까맣게 흩어졌다. 이 정도 현장 봤으면 됐다. 오래 해야지, 기자. 담배가 모두 타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체육관으로 돌아가서 옷가지와 수첩을 집어 들고 나왔다. 챙길 짐은 별로 없었다. 시계는 여섯시 오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배가 쥐어준 십만 원을 들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서울 가는 마지막 버스가 떠난 지 이미 네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해남이나 목포를 거쳐 광주로 가는 노선을 적은 시간표는 그 노선을 이용해온 사람들의 표정만큼이나 낡아 있었다. 해남으로 가는 막차가 마침 여덟시에 있었고, 해남을 거쳐 광주에 도착했을 때는 밤 열한시가 넘어 있었다. 두 시간을 달린 버스에서 내려 광주에 발을 내딛자 날개뼈 부근이 시리도록 짙은 추위가 밀려들었다. 

무작정 도착한 광주의 공기는 낯설었다. 광주를 찾은 건 처음이었다. 몇 번이나 엄마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 거리에 설 수 없다고 했다. 애지중지 추억을 눌러 담은 앨범도 챙기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난 엄마는 다시는 광주를 찾은 적 없었다. 워메, 작은 아부지 소식 들었냐. 구수하게 휘감기는 이모들과는 달리, 엄마의 말투에는 사투리의 흔적조차 묻어있지 않았다. 

터미널을 나서자 갈 곳이 없었다. 서울행 첫차는 새벽 다섯 시 사십분이었다. 구 도청 방면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도시는 적막하고 캄캄했다. 한 시간쯤 걷자, 금남로 끝으로 옛 도청 건물이 보였다. 공사를 위한 가림막이 흉물스럽게 올라간 모습을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왼쪽으로는 초라한 아버지의 양복처럼 구겨진 전일빌딩이 서 있었다. 긴 거리를 걸었던 탓인지 피곤함이 몰려왔다. 전일빌딩 주춧돌에 쭈그려 앉아 도청 쪽을 바라보았다. 정신은 말짱한데 눈이 자꾸만 감겼다. 

그때였다. 도시를 뒤흔드는 강한 진동이 몸을 흔들어 깨웠다. 금남로 끝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바퀴를 굴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천사의 음성처럼 희미한 여자 목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휘청거리는 음성을 바퀴로 누르며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는 커져갔다. 도청의 가림막 안에는 백오십 명쯤 되는 사람들이 어린 아이의 눈빛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요. 거기서 나오라구요. 당신들 다 죽는다구. 시계는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빛이 비추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바퀴 소리가 어느 순간 뚝 멈췄다. 군인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설마 다 죽이겠어, 도청 쪽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우리 다 죽도록 내버려두겠어. 어디선가 화약 냄새가 퍼졌다. 무의식중에 입술을 깨물었는지 진한 피비린내가 숨결 깊숙한 곳으로 스몄다. 믿지 말아요. 이 나라에 상식을 기대하지 말라구요. 목소리는 입 안에서만 회오리쳤다.

흠칫 정신이 들었다. 가방을 뒤져 카메라를 꺼내 시민들을 겨냥하는 총구를 찍었다. 이것만은 세상에 알리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군인들이 총구를 거두고 흐물거렸다. 군복에서 풀빛 얼룩이 서서히 빠지더니 어느새 군인들은 멀쑥한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점잖게 차려 입은 배불뚝이들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둔한 발걸음으로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런데도 도청 안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픽픽 쓰러져 갔다. 피를 흘리는 대신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손발이 퉁퉁 부었다. 피는 그들 몸속에 갇혀 한 방울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들의 살갗이 쪼글쪼글 말려들어갔다. 이십 년 전 파도풀장에 놀러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믿었던 구명조끼가 제 역할을 못 하는 바람에 물을 잔뜩 먹었던 불쾌한 포만감이 아래서부터 올라왔다. 조금 전까지 가쁘게 살아있었던 숨결들이 하나씩 아래로 가라앉았다.

도청의 참상이 무색할 만큼 도청 앞 광장은 평화로웠다. 분수에서 물이 솟아올랐고 쿵쿵대는 아이돌 노래와, 버스가 아스팔트를 밀어내는 소리들이 마구 엉켜들었다. 순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라 쨍한 햇빛을 마주봤을 때처럼 눈을 찡그렸다. 사진, 사진. 중얼거리며 한 달음에 기사를 써내려갔다. 잠시 퇴고할 틈도 없이 어딘가 멀리서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기름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갓 인쇄된 호외 신문 수백 장이 가을 낙엽처럼 흩날렸다. 이제 됐다. 심장에 바람이 차오르는 희열을 느끼며 종잇장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두려움이 생생한 물리적 감각으로 짓누르듯 휘몰아쳤다. 종이에는 군인 대신 양복쟁이들이 보드게임 말처럼 나란히 서서 찍은 기념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자랑스럽게 크레딧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기사는 쓸데없는 소리를 희희낙락 지껄이고 있었다.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거대하게 웅웅거리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리가 풀렸다. 주저앉아 두껍게 쌓여가는 신문지장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잔뜩 쌓이는 것을 보니 오래 묵혀둔 돈 뭉치 같아 보였다.

금남로 거리에 비릿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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