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전수안 대법관에게 듣는다 “좋은 판결이란 무엇인가?”

‘독수리 5형제’ 전수안 전 대법관

획일적인 현행 대법관 구성 비판

“사회적 약자의 입장 반영 어려워”

 

2001년 한 노동자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레미콘 노동조합의 설립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펼쳤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그에게 “타인에게 불안감과 불쾌함을 주는 행동”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다수 시민은 붕대를 감은 노동자가 왜 불쾌함을 주는지 의아해하며 시민들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배치되는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2005년부터 시민의 시각에서 판결을 비평하는 ‘광장에 나온 판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2월 10년간의 결과물을 모아 판결비평 모음집 『공평한가?』를 출간했다.

참여연대는 『공평한가?』의 출판을 기념하며 지난달 28일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전수안 대법관에게 듣는다 “좋은 판결이란 무엇인가?”’ 강연회를 열었다. 2012년 법복을 벗은 전수안 전 대법관은 재직 당시 사형제도에 반대하거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등 소신 있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진보적인 판결을 내놓으며 소수자 권리보호에 앞장선 그는 김영란·김지형·박시환·이홍훈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퇴임 후엔 ‘공익사단법인 선’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호소하며 이날 강연을 시작했다. 사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특히 전관예우 관행은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하지만 전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는 법원 밖에서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전관예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굳어져 사실관계에 대해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사법부의 발전을 위한 쓴소리도 던졌다. 그는 좋은 판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꼽았다. 전 전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50대 남성’이 주를 이루는 현행 대법관 구성에선 사회적 약자의 입장이 반영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3년 동희오토 노동자들에게 내린 통상임금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임금을 지급하면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사용자가 그동안 미지급한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전 전 대법관은 “사용자 입장의 전문가에게 노동자 권익을 잘 보호해달라고 백 번 주장하는 것보다 노동법 전문가 한 사람을 대법원에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회에선 대법관의 업무 과중에 대한 전 전 대법관의 견해도 들을 수 있었다. 2013년 한 해 동안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처리한 사건은 3만7,652건에 이른다. 주 5일 동안 쉬지 않고 일해도 40분에 1건씩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양이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불필요한 상고라는 점이다.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가운데 95%가 원심 그대로 파기환송된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대법원으로 몰리는 사건의 상당수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는 점도 지적됐다. 실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상고하면 선고가 있기까지 매일 접견이 가능한 인근 구치소에 수감된다는 점을 고려해 무작정 상고부터 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단순히 시간 끌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건들 때문에 정작 충분한 심리와 논의가 필요한 사건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전 전 대법관은 “상고남용으로 인한 피해자는 세금을 낸 모든 국민이고 수혜자는 상고를 부추기는 담당 변호사뿐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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