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출판사 불새 안태민 대표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우주가 삶의 터전이 되고 로봇이 거리를 활보할 먼 미래가 실현되는 모습은 SF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전 세계 독자는 SF소설을 통해 고달픈 현실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위안을 얻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다양한 작품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1인 출판사 ‘불새’의 안태민 대표는 SF소설의 불모지 한국에서 꾸준히 외국 SF소설을 번역하는 노력을 해왔다.

평범한 직장인, 홀로 출판업계에 뛰어들다 

번듯한 공무원이었던 그가 출판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된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면서부터였다. 안 대표는 “출판사 일을 하기 전 사회생활을 할 때 업무강도도 너무 셌고 일 자체가 영혼이 없는 일이어서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갉아먹고 있다는 후회가 들었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판업을 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SF소설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안태민 대표는 외국 SF소설을 번역해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안 대표는 “SF를 읽고 싶은데 국내에 작품들이 너무 번역이 돼 있지 않아 답답했다”며 “게다가 번역된 책들도 태반이 절판이고 중고책은 엄청난 고가로 호가가 형성돼 있어 책 한 번 보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한국에서 SF소설팬을 자처하기란 쉽지 않다. 장르소설을 출판하는 중견 출판사가 찍어내는 초판 1-2천부는 5년이 지나도 다 팔리는 경우가 드물다. 공급 자체가 적다보니 독자가 접할 수 있는 SF소설도 부족한 실정이다. 안 대표는 “기본적으로 작품 자체가 많이 소개가 되지 않는다”며 “SF라는 문학장르의 본산인 영미권 외에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서유럽의 대륙국가, 동구권, 일본, 중국 모두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다”고 한국의 SF소설 시장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직접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안 대표는 본격적으로 출판강좌를 수강하고 출판업 카페에 들락날락하며 1인 출판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으며 2012년 12월 불새를 설립했다. 이후 불새는 현재까지 『캔자스의 유령』 『최후의 성』 등 안 대표가 독자로서 읽고 싶었던 11권의 책을 번역했다. 안 대표는 “SF라는 장르를 말할 때 늘 거론되는 작품이 있으니 그것부터 마스터하자는 의미로 고르고 있다”고 특히 고전SF소설을 번역하는 이유를 말했다.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불새가 다시 날아오르기까지

안 대표는 혼자서 판권계약부터 배포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며 SF소설을 번역한다. 번역본만을 출판하는 안 대표에게는 판권계약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강의를 들으며 출판사를 준비하던 중 아무도 (판권계약을) 안 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책 두 권을 먼저 번역을 다 끝냈다가 판권이 다른 회사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책을 못 낸 아픈 경험이 있다”고 판권계약의 중요성을 말했다. 판권계약이 완료되면 안 대표 혼자 번역, 제작, 납품 등 한 권의 번역본을 출판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주도한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그의 행보는 저조한 판매실적에 발목을 잡혀 오래갈 수 없었다. 안 대표는 “1기에 7권의 작품을 각각 1,000부씩 초판을 찍었는데, 악성재고가 절반 이상 남았다”며 “퇴직하며 받았던 퇴직금과 주변의 친구들이 열심히 해보라며 도와준 투자금을 홀랑 날려 먹었다”고 불새의 1기 번역본의 판매실적을 털어놨다.

낮은 판매실적으로 인해 출판 유지기반을 잃은 안 대표는 지난해 4월 『우주의 개척자』를 마지막으로 출판한 후 폐업을 결정했다. 그는 “모아둔 퇴직금과 투자금도 다 바닥 나 매달 나가는 창고비와 물류비도 처리 못할 정도가 돼서 폐업을 하기로 했다”며 “재고 소진 때까지는 계산서 발급을 해야 하므로 사업자등록은 유지했다”고 당시 상황을 토로했다.

이렇게 폐업한 불새는 신문기사와 SF소설 독자들의 도움으로 작년 12월 꺼졌던 사무실의 불을 다시 밝혔다. 「경향신문」과 「허핑턴 포스트」에서 폐업 관련 기사가 나가자 책 판매 사이트 알라딘에서 판매가 늘어났다. 또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가 와우북 행사에 불새의 부스를 마련해 금전적인 지원을 해줬다. 이러한 도움에 힘입어 불새는 악성 재고를 어느 정도 소진할 수 있었다. 안 대표는 “목돈을 먹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도와주신 분들의 뜻이 아닌 것 같아 찜찜했다”고 말했다.

다시 SF소설을 출판할 금전적 여유가 생기자 안 대표는 2기 소설에서는 독자들의 수요에 맞는 생산을 하기로 다짐했다. 그는 1기 때의 실패 경험을 거울삼아 주문생산방식(POD)으로 100부씩 인쇄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최후의 성』 『암흑을 저지하라』와 개정판 2편을 포함한 6권의 번역본이다.

다시 만난 SF소설을 내보내는 데까지

안 대표가 새로 출간한 2기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1기에 비해 좋은 편이다. 그는 “2기 작가들이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고, 작품 자체도 1기 때보다는 대중성이 있다”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반응이 더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의 100자평이나 블로그 리뷰에서 독자들의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1기 작품에 비해 2기 작품은 그동안 고생했던 안 대표의 노력에 보답하고 있었다.

안 대표는 앞으로도 SF소설 번역본을 계속 출간할 의지를 드러냈다. 불새의 새로운 운영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새로운 출판사 운영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것까지는 없고 그냥 내보는 데까지 내보기로 했다”며 “돈 생기면 좌판 벌렸다가 사라지는 떴다방 전략이랄까, 아니면 돈 없으면 돈을 모으는 식물이 됐다가 돈 생기면 책을 찍어내는 동충하초 전략이랄까 그런 식으로 운영될 것 같다”고 말했다.

SF소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독자의 마음으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출간한 불새는 이제 고전SF소설 독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시장성이 어두워 영원히 소개되지 못할 것 같은 작품을 골라 출간해 내는 불새는 한국의 SF소설시장을 다채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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