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에게 해리 포터의 조앤 롤링이 있다면, 내 또래는 쥘 베른에 열광했다. 그의 작품들은 미지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모험이었다. 우리는 바다 속 잠수함을 타거나, 땅 밑 공룡의 세계로 가고, 무인도에 표류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우리들에게 세계 여행의 꿈을 꾸게 했다. 이국의 문화를 체험하며, 친구를 사귀고 미인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대학생이 될 쯤, 해외 여행이 ‘자유화’됐다. 당시엔 2주 남짓에 대여섯 개가 넘는 국가를 둘러보는 게 기본이었다. 에펠탑에서 사진 찍고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훓어 보고 바로 기차를 타는 일정. 여행이 점점 더 일상적인 것이 되면서 변화가 생겨났다. 느긋하게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시장처럼 그네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정. 사진기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단순히 국가 경계를 벗어나는 것에서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자신을 발견하는 모험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한 여행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부처님일지도 모르겠다. 왕자 싯다르타는 성 밖 여행을 계기로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좁고 불완전한 것인지 알게 된 석가모니는 울타리를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간다. 새로운 것과 접하면서 완전히 다른 내가 되는 것. 모터싸이클을 타고 남미를 여행했던 청년 의대생 체게바라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4월 16일, 대통령은 남미로 떠났다. 취임 3년차에 13번째 출국이었다. 페루의 K-팝 동호회를 만나는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귀국 후 와병을 얻어 국정 업무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순방은 우연하게도 두 일정과 겹쳤다. 하나는 4월 18일, 32개국 정상이 참여한 60주기 반둥회의다. 반둥회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제3세계’로 등장하여 반제국주의라는 새로운 길을 연 출발지로 평가받는다. 이번 회의에는 시진핑, 아베와 함께 한국 교육부 장관이 참석했다. 다른 하나는 1년 전 4월 16일, 304명이 탄 배가 기울어 있다 몇 시간 후 마침내 가라앉은 사건이다.

4월 16일, 1년 전 세상을 떠난 이들의 가족들은 종일 길거리에 서 있어야 했다. 그들의 주위는 경찰 버스가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이 차벽 울타리를 넘어서려 하자 큰 충돌이 벌어졌다. 최루액과 물대포가 쏟아졌고, 진압과 연행이 이루어졌으며, 경찰 책임자는 “시민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고 방송했다. 울타리를 친 것은 비단 물리력뿐만이 아니었다. 집권당 국회의원들과 유력 언론들은 그들을 교통사고를 빌미로 한 몫 챙기려는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 많은 노력 끝에, 그들과 국민들 사이에는 심리적 장벽이 세워졌다. 1년전 국가로부터 외면받았던 그들은 1년이 지난 지금 공격당하고 있다.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은 그 전과 후가 같을 수 없음을 단언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한국에서 싯다르타의 여행은 불가능하다. 놀이터 출입을 막기 위해 임대아파트와 연결된 길은 폐쇄되고, 등급화된 고등학교에서는 비슷한 배경의 학생들이 모인다. 직장의 노동자들은 두 계층으로 관리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기회는 봉쇄된다. 그렇게, 강자와 약자의 세계는 분리된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제로 떠나게 된 여행이었지만, 그들은 좌절을 딛고 스스로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울타리를 넘어서는 그들의 발걸음. 그 한걸음이 대한민국을 달라지게 하는 여행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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