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희 책임연구원
언론정보연구소

지난 학기 언론정보학과의 ‘한국 미디어사’ 과목에 ‘할아버지, 할머니 6·25전쟁(한국전쟁) 체험 듣고 함께 이야기하기’라는 토론수업이 있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시작되어, 3일 만인 6월 28일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가 9월 28일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다시 탈환했다. 이 기간 전쟁 관련한 소식을 어떻게 접하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전쟁 소식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험을 인터뷰해, 4~5명의 토론팀원들이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고, 관련 요인들을 함께 생각해보는 수업이었다.

서울 주민은 라디오를 통해 전쟁 소식을 들은 사례들이 있었으나, 지방은 다른 사람들이 전해주는 얘기로 들은 경우가 많았다. 당시 미디어 보급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이 수업을 위해 학생들이 제출한 구술 자료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두 가지다. 처음에는 많은 학생들이 60여년 전의 6·25전쟁을 현재와는 그리고 자신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있었던 일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랬는데, 말씀을 듣고 정리하면서, 전쟁이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었음을 비로소 실감한 것이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전쟁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학생들 자신의 조부모님 경험으로 들으니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6·25전쟁이 역사 속의 한 사건일 뿐 아니라 나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까진 그냥 역사책에서 무미건조한 줄글로만 접할 수 있었던 한국전쟁이란 사건이,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 외할아버지께서도 겪으신 일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생생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한 학생의 할아버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2년 반 넘게 갇혀있다 석방되었고, 어떤 할아버지는 중공군 포로로 잡혔다가 인민군에 인계되어, 인민군복을 입고 전투에 편입됐는데, 다행이 전투 중 포탄이 떨어진 틈을 타 산 아래로 한참 굴러 죽은 척 있다가 국군에 투항해서 국군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인터뷰 경험이 조부모님 세대와 전쟁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인터뷰를 해본 학생들의 소감에서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사실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평소 할아버지나 할머니께 인사를 하는 일 이외에 다른 대화나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 학생은 “나이 25살이 되도록 할아버지 과거 경험에 대해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이 매우 놀라웠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사실 할아버지와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눠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 나는 외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또는 안녕히 가세요 이외의 말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죄송한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손주의 공부에 당신들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오히려 반가워하시고 기꺼이 질문에 대답해주셨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대화를 매우 보람 있고, 뜻 깊은 일로 느낀 것도 공통적이었다.

현대사는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재와 바로 관련이 있는 과거이다. 그 과거를 이해하는 손쉬운 방법, 할아버지, 할머니를 뵐 때, 그분의 삶에 대해 또는 6·25전쟁이나 4·19 혁명 같은 큰 사건이든 다른 어떤 주제라도 함께 얘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부모님에 대해 친근감이라는 소중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덤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