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 편]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 <너의 목소리가 들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 규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할 뿐이다.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1년을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허비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문제와 맞물린 사건의 진실 규명은 대단히 어렵다.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한 사건들이 국민 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라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을 설립·운영하였던 것도 그래서이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 이유로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수그러들지 않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위험하다. 한국 사회의 안전에 대한 징후는 이미 2010년대 전후 시기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시간이동이나 초자연적 현상 또는 초능력 등의 비과학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내용의 판타지 드라마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한국 사회의 불안 징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녀주인공의 영혼이 바뀐다는 초자연적 현상을 활용한 <시크릿 가든>(SBS, 2010)이나 40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속된 남녀주인공의 운명적인 만남과 인연을 강조한 <별에서 온 그대>(SBS, 2014)처럼 판타지 기법이 결합된 로맨스 장르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타지 드라마에서 비과학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장치는 은폐되거나 왜곡된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활용된다.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거나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시간이동을 하고, 내면의 생각을 듣거나 냄새를 맡는 등의 초능력을 활용한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tvN, 2013)과 <너의 목소리가 들려>(SBS, 2013) 그리고 <냄새를 맡는 소녀>(SBS, 2015) 등이 대표적이다.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판타지 장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심지어 로맨틱코미디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옥탑방 왕세자>(SBS, 2012)에서도 세자빈의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시간이동이라는 판타지 기법을 활용하여 극적 흥미를 유발할 정도였다.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는 현실 세계의 불안과 공포를 환유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들리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냄새가 보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판타지 장르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 규명이 어려운 현실에서 초능력으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냄새를 보는 소녀>를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두 편의 드라마에서 초능력을 단순히 극적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해결하기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활용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으로 기중기와 같은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갑자기 신이 공중에서 나타나 위급하고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살해 현장을 목격한 이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상황이나,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범인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부터 냄새를 볼 수 있게 된 상황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좀처럼 진실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적 현실이 초능력이라는 신적인 능력까지 동원한 모양새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속물 국선 전담 변호사 장혜성(이보영 분)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고등학생 박수하(이종석 분)를 만나 살인사건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초능력으로 살인범을 추적하는 이야기 같지만, 장기 이식 수술을 기다리던 아내가 순서를 날치기한 기자 때문에 끝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자 복수에 나선 사내의 억울한 사연이 곁들여져 있다. 원칙과 상식보다 특권이 남용되고 법질서가 왜곡된 현실을 환기시키는데, 문제는 정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으로 은폐된 진실 규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장혜성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됐지만,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삼류에 불과하다. 불의를 외면하고 억울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녀는 어머니의 성화 때문에 오로지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국선전담변호사 면접을 보러 갔다가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은 것을 알고 10년 전 자신의 법정 증언 경험을 이야기해서 합격한다. 하지만 “진실이 재판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재판에서 이기는 게 진실”인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승소율 1%도 되지 않는 변론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학창시절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친구이자 검사인 서도연(이다희 분)과의 법정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박수하에게 장혜성은 아버지를 죽인 범인 민준국(정웅인 분)을 잡을 수 있도록 법정에서 증언을 해준 영웅이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난 장혜성이 한심스러운 속물 변호사라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의협심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다가 만기 출소하여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민준국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박수하가 민준국의 계획을 알게 된 것은 10년 전 사건 이후 생긴, 상대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거짓말과 가식을 직접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거짓말이 참말을 이기는 게 세상 이치라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게 된 박수하는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 잡고 싶지만 고등학생 신분상으로는 어림없는 상황이다.

박수하와의 어린 시절 인연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혜성은 억울한 사람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활용하여 승소하는 개가를 거둔다. 하지만 그녀는 박수하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한 목격담을 법정에서 증언한 10년 전의 사건 때문에 민준국의 살해 위험에 처한다. 교도소에서 복역한 10년 동안 장혜성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던 민준국이 출소 이후, 봉사 활동 등을 하면서 선한 얼굴로 위장한 채 장혜성의 주변을 맴돌며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혜성을 죽이겠다는 민준국의 마음을 읽은 박수하가 경찰에 신고해도 혐의만으로는 검거할 수 없다는 경찰의 대답을 듣고 직접 그녀를 지키지만, 예상 외로 그녀의 어머니가 민준국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력한 용의자로 민준국이 검거되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 석방되면서 박수하와 장혜성 그리고 민준국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전개된다. 이처럼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활용하여 증거가 없으면 진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증거 제일주의’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변되는 법이 맹점을 환기시킨다.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의 초능력은 냄새를 맡지 못하고 보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감각기관의 교란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은 이를 기리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취’라는 필명의 작가가 쓰고 그린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바코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격하는 경찰과 냄새를 보는 초능력으로 수사에 도움을 주는 개그우먼 지망생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특이한 것은 여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잡는 것이 인생 목표인 남자 최무각(박유천 분)은 ‘통각상실증’(Analgesia)에 걸려 있고, 웃음을 좋아해서 개그우먼이 되는 것이 인생 목표인 여자 오초림(신세경 분)은 냄새를 맡지 못하고 보는 감각 기관 이상 증세를 겪는다는 점이다.

아쿠아리스트였던 최무각은 여동생의 죽음 이후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 채 20일을 버티다가 아쿠아리움의 상어 수조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된다. 6개월 동안 코마 상태에 빠져 있던 그는 가까스로 의식이 회복된 이후 후각과 미각을 잃고, 신경 이상으로 통증(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바코드 연쇄살인사건으로 부모님을 잃은 뒤 범인을 피해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18세 소녀 최은설 또한 코마 상태로 6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있다가 의식이 돌아와 살아난 후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된 대신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각으로 공기 중의 냄새 입자를 볼수 있는데, 매우 정교하게 무슨 냄새인지 알아낼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냄새 입자를 추적해서 사라진 사람의 행방을 찾아낼 수도 있다. 바코드 연쇄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지만 그녀는 18세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초림으로 살아간다. 기억하려 하면 머리가 아파서 애써 기억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권재희(남궁민 분)는 뛰어난 요리 실력과 글 솜씨 그리고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로 인기가 많지만, 그의 실상은 바코드 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 사이코패스다. 살인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권재희 역시 감각 기능에 문제가 있어 ‘안면인식장애’를 겪고 있다. 제주도에서 해녀 부부를 살해할 때 자신을 목격한 소녀가 교통사고로 실려 간 병원 응급실까지 잠입하여 소녀의 이름이 최은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동명이인인 최무각의 여동생 최은설을 살해하게 된 것도 그래서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감각 기능 장애를 겪는다는 설정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질환을 환기시킨다. 냄새를 보는가 하면, 맞고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보고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정상적인 감각 기능이다.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냄새를 볼 수 있는 오초림의 초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도덕과 양심 그리고 원칙과 상식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환유이자, 초능력을 작동시켜야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한 한국 사회의 질환에 대한 경고로 해석할 수 있는 드라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대립과 갈등 구도는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것을 정치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뒤섞여 있다.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 세상에서 인간의 본분을 지키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냄새를 보는 초능력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필요한 현실을 환기시키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다시 보고, <냄새를 보는 소녀>를 지켜보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질환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라는 결말보다 (연쇄)살인마를 추격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좀 더 다채로운 시청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침몰한 진실은 반드시 인양되어야 한다.”

▲ 윤석진 교수
충남대 국문과,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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