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대학원생, 밤에는 부모… ‘부모학생’의 짐을 덜어주려면?
낮에는 대학원생, 밤에는 부모… ‘부모학생’의 짐을 덜어주려면?
  • 김윤주 기자
  • 승인 2015.05.04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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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부모학생’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나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아이도 키우는 부모학생이다. 나의 하루는 7시에 시작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등교 준비를 하는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침이다. 식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4살배기 아들만 없다면 말이다. 양가 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는 형편이라 등교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아이가 3살이 되기 전에는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없어 돌보미를 불렀는데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도 오랜 대기 끝에 겨우 얻어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학교에 오면 10시. 오늘 저녁에는 교수님과 프로젝트 회의가 있지만, 어린이집이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불참할 수밖에 없다. “아이 때문에…”라는 말에 교수님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집에 돌아와 아이가 잠든 늦은 밤에서야 과제를 할 시간이 생긴다. 내일은 세미나가 있어서 늦게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아이는 누가 돌볼지 걱정이다.

 

넓디넓은 캠퍼스에 부모학생이 설 자리는 좁아

◇임신 때부터 마주하는 싸늘한 시선=일부 부모학생은 실험실이나 연구실에 임신 사실을 알리는 순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국내 대학은 부모학생의 복지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부모학생의 처우가 전적으로 교수의 재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출산휴가는 회사에만 적용돼 부모학생은 눈치껏 태교와 출산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현재 임신 중인 한 대학원생은 “다행히 교수님께서 이해를 해주셔서 교수님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지만, 임신에 대해 배려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배가 많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도교수님에게만 임신 사실을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실험․실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공의 경우 실험․실습에서 다루는 시료나 약품이 임신 중인 학생에게 해로울 수 있지만 엄마학생은 선뜻 실험실에 못 나온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수업과 연구를 위해 오랜 시간 실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석은 수업 진행이나 연구 실적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이공계 대학원생은 “임신은 축복받아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며 “출산을 앞두고 실험실에 나오지 못한다는 사정을 말했을 때도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혜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임신,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의 재량에 따라 배려를 받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 현실이 드러났다”며 “이는 교수 개인의 재량에 따라 결정할 일이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 정책을 내놓거나 개선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가야 하는데 아이 맡길 곳은 없어=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학생은 아이 맡아줄 곳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유아를 대상으로 해서 24개월 미만의 영아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은 찾기 어렵다. 실제 사회복지연구소가 진행한 ‘부모학생 학업-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영아 보육 어린이집이 학교 내에 필요하다고 응답한 부모학생은 53%에 달했지만 학교 내에 영아 보육 어린이집이 있다는 응답은 35%에 그쳤다. 서울대부모학생조합 맘인스누 서정원 회장(사회복지학과 석사수료)은 “서울대 어린이집도 아이를 보내려면 한국 나이로 3세 정도 돼야 해 출산 후 3년 가까이 학업에 복귀하기 어렵다”며 “영아 보육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더라도 어린이집을 이용하려면 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 국내 대학의 경우 학내에 부모학생을 위한 어린이집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있더라도 대기자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학생들은 맞벌이 부부에게 우선순위가 밀려 어린이집 이용 장벽이 더욱 높다. 부모가 둘 다 대학원생이라 하더라도 맞벌이 부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보육지원 정책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대학원생은 노동자로 보지 않아 빚어지는 문제다.

아이를 보낼 보육시설을 구하지 못하면 돌보미를 고용할 수도 있지만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돌보미를 고용한 대학원생은 “교수님의 일정 변경으로 인해 시간 변동이 생기기라도 하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라며 “박사 풀타임의 수입은 용돈 수준인데 돌보미에게 마냥 오래 봐달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부모학생도 이용할 수 있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부모학생들이 원하는 돌보미를 구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한 대학원생은 “돌보미의 연령대가 60대 이상이다 보니 아이와 놀아주기가 어렵고 젊은 돌보미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부와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도 육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모학생은 학업에만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업과 가정이 양립하기 위해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부모학생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부족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3년 대학(원)생의 임신출산육아 휴학제도 도입과 학교 내 직장어린이집 이용 확대를 권고했지만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 대학은 많지 않다. 애초에 학교 내에 부모학생의 복지를 담당하는 인력이 없거나 담당 직원이 누군지 모르는 대학이 다수다.

반면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시카고대,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등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에선 부모학생을 위한 지원 정책이 잘 마련돼 있다. 사회복지연구소가 각 대학을 방문해 조사한 결과 이들 대학은 근로 장학생이나 연구원 학생에게 출산휴가를 지급하거나 양육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또 학교에 영유아를 위한 학내보육센터와 가족 기숙사를 두고 학교 차원에서 학업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고 있었다. 우수 사례를 발표한 심예리 씨(국제대학원 석사수료)는 “부모학생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며 “학교마다 부모학생에 대한 지원의무를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원 회장 역시 “하버드대는 부모학생의 복지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 ‘잘 지내느냐’와 같은 안부는 물론 ‘스페인 답사에 갈 수 있느냐’와 같은 개인적인 일정까지 꾸준히 확인해준다”며 인상 깊었던 점을 밝혔다.

현재 서울대도 부모학생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어린이보육지원센터 운영세칙’에 직영어린이집인 백학어린이집과 느티나무어린이집의 정원 55%를 부모학생에게 배정하라고 규정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학생처 장학복지과 김은미 담당관은 “어린이집은 직장보육시설로 설립됐지만 학생에게도 지원하고 있다”며 “직장어린이집을 학생들한테 할당하는 곳은 서울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2013년엔 학칙을 개정해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휴학은 휴학 제한 기간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는 국내 대학 중 부모학생에 대한 지원이 잘 돼 있는 편이라고 평가받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부모학생의 복지를 담당하는 직원이 없어 부모학생을 위한 학내 지원책을 총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부모학생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와 함께하는 연구공간이 없다 보니 여건이 마땅치 않은 부모학생은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서정원 회장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없는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며 공부도 할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출산 직후 엄마학생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수유 공간과 유축 공간도 수요보다 부족하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에는 학교 차원에서 운영하는 보건소 수유실과 농생대, 수의대, 법대, 간호대 등 단과대별로 재량에 따라 운영하는 수유실이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수유실인 보건소의 수유실은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학생이 유축을 하는 공간에 가깝다는 것이 수유실을 이용하는 엄마학생들의 생각이다. 사범대, 자연대, 사회대, 인문대 등의 수유실은 여학생 휴게실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냉장고, 유축기, 소독기, 커튼 등이 없어 이곳에서 수유나 유축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딸을 둔 한 대학원생은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유축을 할 공간이 있으면 고생이 덜할 텐데 거의 보여주기 식으로 멀리 한 군데씩 있다”며 “왕복 시간과 유축을 위한 시간 등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학교 차원에서 부모학생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과)는 “50년, 100년 전에는 필요 없던 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여성학생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학업 역시 미래를 위한 투자 기간으로서 일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주도로 부모학생에 대한 지원이 정책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정인 교수(춘천교육대 사회과교육과)는 “부모학생 문제에 교육정책으로 접근해 교육부가 해결을 주도해야 한다”며 “이러한 정책이 수도권에만 집중되지 않고 지방의 연구중심대학까지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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